[Opinion] 부서지기 위한 건물 [사람]

갈등에 관하여
글 입력 2023.03.01 00:3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크기변환]000003.jpg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게 바로 사람 간의 갈등이다. 갈등의 종류나 갈등이 발생하는 이유는 너무 많다. 저녁 메뉴를 정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작은 갈등에서부터 거대한 이데올로기적 갈등까지 말이다. 하지만 크기와 상관없이 갈등의 근원은 모두 똑같다.

 

보통 갈등이 '차이'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성별, 세대, 계층 등 갈등을 만드는 요소들이 정말 많다. 하지만 갈등은 차이에서 오는 게 아니다. 성별 때문에, 나이 때문에, 빈부격차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게 아니다. 그러한 요소들은 갈등을 내포하고 있지 않다.

 

차이가 갈등의 전제인 건 맞지만, 그것에서 비롯하는 건 아니다. 갈등은 강요에서 시작하는데, 꼭 직접적이고 강압적인 강요뿐만이 아니라 간접적이고 음습한 강요들도 많다. 오히려 많은 사람이 엮이고 갈등이 거대할수록 강요는 간접적이고 그 근원을 찾아가기 어려워진다.

 

수많은 차이들이 갈등을 내포하고 있지는 않듯이, 갈등 또한 악을 내포하고 있지 않다. 갈등 자체로는 악한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건강하고 발전하는 사회일수록 갈등을 발판 삼을 줄 안다. 하지만 인간은 감정이 있고 모든 걸 생각할 수도 없다. 한번 어긋나기 시작하면 되돌아와 반성하기란 너무 어렵다.

 

강요라는 것도 범위가 굉장히 넓다. '나'를 넘어서는 규정은 누군가에게 반드시 강요가 된다. 한편으로는 강요와 갈등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나를 넘어서는 규정은 필연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쉬운 예로 '나는 짜장면이 맛있다'는 나를 넘어서는 규정이 아니며 강요가 아니다. '짜장면은 맛있는 음식이다'라는 말은 나를 넘어서는 규정이다.

 

중학교 때 타인과의 갈등 해결 방법으로 '나 표현법'이란걸 배운 적이 있다. 갈등을 해결하고 싶을 때는 말의 시작을 꼭 '나는~'로 시작하라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다. 간단하지만 효과는 놀랄 만큼 강력하다. 한창 싸우다가도 '나 표현법'을 사용하면 갈등이 순식간에 잦아든다. 갈등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는 해결 방법이다.

 

'나 표현법'은 효과가 굉장히 좋지만 그만큼 한계도 명확하다. 먼저 내가 나를 넘어서는 규정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기가 매우 어렵다. 나 표현법을 알고있어도 언제 써야 할지 알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나를 넘어서는 규정은 반드시 하게 된다. 또한, 해야 한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고 인류가 지금까지 발전해온 역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를 넘어서는 규정'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 두려운 일이다. 갈등을 방지하거나 해결하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며 보통은 나도 모르게 이미 갈등의 소용돌이에 있게 된다.

 

반면 '나를 넘어서는 규정'을 의식적으로 한다는 것은 살짝 다른 이야기다. 갈등이 될걸 알면서도 그곳에 뛰어드는 것이다. 파괴가 있어야만 창조를 할 수 있으며 나의 의미와 가치는 의지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정면으로 부딪쳐 상대를 깨부수고 내가 깨부숴져야만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위한 건물을 짓다 보면 결국에는 부서지지 않는 건물을 짓게 된다. 두려움에 부실한 건물을 끌어안고 있는다면 처음에는 비슷해 보일지라도 마지막은 크게 다를 것이다. 능동성을 갖은 사람은 부서지지 않는 건물을 짓게 될 것이고, 두려움에 진 사람은 계속 부실한 건물만을 끌어안고 있게 될 것이다.

 

나는 나를 넘어서 규정하기가 두렵다. 하지만 가짜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그 이상으로 두렵다.

 

 

[김윤수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