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더 배트맨> 속으로 [영화]

DC만의 길에 내딛는 또 하나의 발걸음
글 입력 2023.02.19 21:5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배트맨 시리즈가 2012년 <다크 나이트 라이즈> 이후 10년 만에 단독 영화로 돌아왔다. 2010년대 중후반 DCEU에 등장한 벤 애플렉의 배트맨은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 리그> 같은 작품들에 얼굴을 드러냈으며, 애플렉이 감독과 주연을 맡은 <배트맨>이 제작될 예정이었지만, 결국 빛을 보지 못하고 취소되었다. 애플렉의 하차 이후 감독의 자리는 <혹성탈출> 시리즈의 맷 리브스가, 새로운 배트맨 역은 <굿 타임> <라이트하우스> 의 로버트 패틴슨이 가져갔다. 본작 역시 DCEU에 속하지 않은, 고유한 세계관의 영화로 노선이 변경되었다.

 

개봉 전 인터뷰에서 맷 리브스 감독이 반복해서 강조했던 것처럼, <더 배트맨>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는 탐정 느와르물이다. 부패한 고담시의 공권력과 정치인들, 그리고 마피아들의 등장, 데이빗 핀처의 <세븐>을 연상시키는 장면들을 보고 있자면 범죄 드라마로 본작을 감상할 수도 있겠다. 그러한 분위기에 걸맞는, 맷 리브스 감독이 창조해낸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고담 시의 음침한 모습은 환상적이다. 전체적으로 본작에 참여한 <로그 원> <듄>의 촬영감독 그레이그 프레이저의 능력 덕에 영상미가 보통 슈퍼히어로 영화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20230222215645_olyxqpss.jpg

 

 

리브스 감독과 피터 크레이그 작가가 집필한 각본도 칭찬할 만하다.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본작의 주요 줄거리를 깔아주는 사건으로 관객들을 맞이한다. 176분이라는, 장장 세 시간에 가까운 런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쓸데 없는 장면 하나 없다. 배트맨의 기원은 과감히 생략하고, 이제껏 보지 못한, 활동한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젊은 배트맨을 선보인다.

 

이전 배트맨과의 차이점은 그 뿐만이 아니다. 이전 잭 스나이더 감독의 배트맨은 탐정적인 면모를 잘 살리지 못했다는 점, 배트맨의 불살 및 총기 사용 금지 원칙을 무시했다는 점 등으로 혹평을 받은 바 있다. <더 배트맨>은 그러한 비판들에 대한 리브스 감독의 답변으로도 느껴진다. 영화 내내 '탐정' 이라는 배트맨의 정체성을 최대한 강조하며, 배트맨의 살인 및 총기 사용 금지 철칙을 대사 그리고 행동을 통해서 관객들에게 각인시킨다.

 

너무 많은 서사를 꾸역꾸역 집어넣지도 않고, 후속작을 예고하는데 급급하지도 않다. 여기서도 역시 전작 <배트맨 대 슈퍼맨>이 남긴 '오답 노트'를 분석하고 참고한 흔적이 보인다. 맷 리브스 감독은 시사회 현장에서 속편의 제작을 예고하는 한편, <더 배트맨>이 먼저 하나의 작품으로서 온전한 완성도를 갖추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런 리브스 감독의 작품인 <더 배트맨>은 배트맨의 성장, 새로운 인물들과의 관계, 그리고 리들러의 살인 게임이라는 이야기들로 하나의 인상적인 완성도를 가진 작품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20230222215747_hufvgteg.jpg

 

 

<저스티스 리그> <수어사이드 스쿼드> 같은 작품들의 제작 과정에서 과도한 간섭으로 인해 비평적으로 또는 상업적으로 쓴맛을 봐야 했던 워너 브라더스는, 창작가들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한다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 덕에 결과적으로 맷 리브스 감독이 가진 야심찬 비전이 드러나는 수작이 탄생했다고 볼 수 있겠다.

 

기존 영화들과 연관되지 않은 '새로운 시작' 답게, 배트맨 외에도 새로운 얼굴들이 보인다. 배트맨을 제외하고서 최고의 <더 배트맨> 캐릭터를 고른다면, 바로 조이 크래비츠의 캣우먼. 배트맨과의 로맨스 등 상대적으로 빈약했던 부분도 있지만, 본작을 보고 나면 캣우먼의 단독 영화나 HBO 시리즈를 원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자경단원인 배트맨을 불신하는 경찰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그를 믿고 협력하는 고든은 아직은 국장이 되지 못한 인물로, 배트맨과 함께 사건 현장에서 수사를 하는 파트너 관계가 인상적이다. 팔코네의 2인자로 등장하는 펭귄에서는 콜린 패럴의 대변신을 볼 수 있다. 셋 모두 속편에서 더욱 매력적인, 혹은 무시무시한 인물로 성장할 것이 기대된다.

 

 

20230222215813_nllyyulm.png

 

 

본작의 메인 빌런, 리들러는 예상만큼 큰 비중을 가져가지는 않았다. 살인을 저지르고, 수수께끼를 남긴 채 사라지는 인물로 대부분 영상으로 등장한다. 그 과정에서 <다크 나이트>의 조커가 연상되는 장면들이 있지만, 조커의 '짝퉁'은 아니다. <더 배트맨>이 주인공 배트맨에 가장 큰 포커스를 맞춘 작품인 만큼, 이전 <배트맨> 시리즈의 빌런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인상이 약할 수는 있지만 폴 다노가 상당한 연기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실망스럽지 않았다. 물론 히스 레저의 조커 등 역대급의 빌런을 기대하지는 말 것. 작품 자체도 핀처의 <조디악>이 연상되는데, 리들러는 조디악 킬러로부터 영감을 받은 캐릭터라는 감독의 말이 더 의미있게 다가온다.

 

3시간이나 되는 런닝타임에 강렬한 분위기와 이야기를 자랑하는, 해외 평단의 대호평이 이상하지 않은 작품이다. 다만 그 3시간이라는 런닝타임은 몇몇 관객들에게는 확실히 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영화 전체적으로 쓸데없는 장면이 없는 탄탄한 각본을 가진 영화이며, 지루하다고 느끼는 장면은 없지만, 그 기다란 런닝타임이 확실히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다.

 

때문에 중후반부에 돌입하면 감정적인 몰입이 약간 약해졌던 것 같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도 '악당과의 최종전' 이라는 느낌이 상대적으로 약해서 다른 슈퍼히어로 영화들의 클라이맥스, 그리고 <더 배트맨>의 초, 중반부에 비교해서 빈약했던 것 역시 사실이다. 이런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잘 만들어졌다는 인상에는 변함이 없다.

 

 

20230222215859_bssfpldd.jpg

 

 

지난 몇 년 간, DC는 아쉬운 모습을 많이 보였으며, 팬들이 꿈꾸었던, 마블과 동등한 위치로 올라가 경쟁하는 모습을 보기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조커>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등 마블과는 다른, DC만의 개성과 창작가의 비전을 살린 수작들이 등장하였고, <더 배트맨>도 그 옆에 당당히 서는 데 문제 없을 것 같다.

 

이 시리즈는 중간에 끊기거나 배우들이 하차하는 일 없이, 맷 리브스 감독이 무사히 자신의 비전을 살린 3부작을 완성할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이제 DC도 마블을 단순히 따라하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길을 찾았다. 그리고 <더 배트맨>은 그 길에 내딛는 또 하나의 발걸음이다.

 

 

[하지석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