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소희] 명명되어서는 안 될, 다음 소희

글 입력 2023.02.19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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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막히는 수치에 압살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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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라는 고유명사로 대변되는 어린 이름들은 그동안 얼마나 있어왔고, 있으며, 있을 것인가? ‘다음 소희’는 제목에서 주인공 소희가 단발적인 사례가 아니었음을 꼬집는다. 언제든 ‘소희’ 자리에 대입될 수 있는 수많은 이름. 소희 또한 첫 번째는 아니었을 테다. 호흡을 한 번 가다듬어 ‘다음, 소희’로 읽으면 소희 또한 누군가의 다음이니까 말이다. ‘다음 소희’는 나태한 어른들의 무책임한 숫자 계산에 깔려 존엄성을 넘어 생명까지 박탈당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담하면서도 강렬하게 그려낸다.

 

영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는 소희 개인이 죽음에 이르게 된 과정, 그리고 2부는 유진이 소희의 죽음을 수사하며 소희들이 죽음에 이르게 된 구조를 되짚어가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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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을 좋아하는 열여덟 고등학생 소희. 쉽사리 성공하지 못하는 춤을 연습하는 모습이 롱테이크로 한참이어진다. 소희는 참 씩씩한 학생이다. BJ인 친구를 조롱하는 남자들에게 항의하며 맞서고, 담임 선생님도 매사에 열심이 하는 소희를 당찬 아이로 믿어준다. 졸업을 앞둔 소희는 담임 선생님이 대기업이라고 칭하는 콜센터에 현장실습을 나가게 된다. 고객의 인터넷 해지 요청을 막으면서 다른 상품 가입을 권유하는 곳. 고객의 인터넷 해지 요청을 막는 이른바 ‘방어율’이 높을수록 실적이 높아졌고, 그 과정에서 실습생들은 ‘사랑하는 고객님’들의 인격모독에 시달려야만 했다. 숨 막히는 수치가 실습생들을 압박했지만 수치에 따른 인센티브는 실습생이라는 이유로 지급되지 않는다. 어느 날, 소희를 조금이나마 챙겨주던 팀장은 차에서 죽은 채 발견된다. 그의 유서에는 회사 내부 문제를 고발한 내용이 담겨 있었지만, 회사와 경찰은 눈처럼 이를 덮어버린다. 

 

해당 사건에 대해 함구하라는 각서에 마지막까지 사인을 하지 않으며 버티던 소희는 어느새 센터의 에이스가 된다. 동료들에게 허세를 부리며 자신이 터득한 고객 응대 방법을 떠벌리는 모습, 자식이 죽어 인터넷을 해지하겠다는 고객에게 새로운 상품을 권유하는 모습에서 소희의 메말라가는 인간성을 엿볼 수 있다. 상실한 인간성의 대가인 인센티브를 ‘실습생’이라는 이유로 한두 달 뒤에 주겠다는 말을 들은 소희는 급작스럽게 낮은 성과를 보여주고, 새 팀장과의 싸움 후 무급휴가 징계를 받는다. 소희는 자해를 시도하나 실패하고,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그녀의 말을 부모님은 흘려보낸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른 채 책임만 묻는 담임 선생님의 모습에서 절망을 느낀 채 휴가 마지막 날, 소희는 저수지로 걸어 내려가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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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직한 형사 유진은 소희의 죽음을 파헤친다. 단순 자살로 사건을 종료하려 했으나 이전 팀장 사망 사건 등 여러 정황을 통해 소희의 죽음은 산재라는 데 결론이 기운다. 이에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은 콜센터에 조사를 나가지만 본사 담당자부터 팀장까지 모두 책임을 회피하기 바쁘다. 심지어 소희의 성격과 가정형편에 문제가 있었다고 논점을 흐리기까지 한다. 산재는 비단 콜센터만이 원인은 아니었다.

 

“여기가 학교입니까 인력 파견소입니까?”

 

소희처럼 현장실습을 나간 아이들의 이야기 속엔 오직 취업률만을 위해 아이들을 아무 일자리에나 내몰고 그들을 지켜주지도 않는 학교가 있었다. 그리고 학교가 취업률에 목맬 수밖에 없도록 취업률로 평가하는 교육청, 나아가 각 시도교육청의 실적으로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교육청까지. 유진이 학생들의 현장실습 현장의 실태를 지적하고자 교육청을 방문했을 때, 현장실습 담당자는 근무 환경 감시는 학교 자율에 맡기며 근무 관련은 노동부 소관이 아니냐며 책임을 돌린다. 아이가 죽었는데 그 누구도 책임을 지려는 사람이 없다. 무력한 상황, 그러나 소희에게 끝까지 손 내밀고 있는 유진이 있다. 유진이 소희를 언뜻 춤 동아리에서 스쳤듯, 우리도 수많은 소희들을 일상에서 스쳐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겐 유진과 같은 어른이 필요했다. “막을 수 있었잖아. 근데 왜 보고만 있었냐고” 따져줄 수 있는 그런 사람.

 

‘다음 소희’는 관객들이 표면적인 감정에 동요하도록 자극하지 않는다. 오히려 담백하고 담담한 연출로 그들의 심연에 파동을 일으킨다. 1부에서는 투박한 핸드헬드 촬영으로 소희의 감정선을 따라가고, 2부에서는 정제된 화면으로 관객을 대신해 문제를 파헤치는 유진의 모습을 보여준다. 화면 연출 방식은 ‘현실적으로 보여주기’를 극대화한다. 길게 느껴지는 샷의 길이와 적고 단순한 구도는 사실성을 더해주며, 대화하는 인물 둘의 정면을 각각 정중앙에 둔 샷들은 관객이 각 인물의 대사를 직접 듣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도록 한다. 화면은 현실을 보여줄 뿐 그 이상의 자극을 만들지 않고, 따라서 관객은 화면 너머 전해지는 인물의 감정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소희가 담임 선생님에게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아요?’라며 되묻는 처절함, 그리고 유진의 “누구에게든 말해”라는 말에 어린아이처럼 우는 태준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을 테다. 이 담담한 연출은 가장 감정적인 장면에서 빛난다. ‘다음 소희’는 가장 감정적인 장면을 가장 정적으로 보여준다. 소희가 콜센터 팀장님의 장례식장에서 절을 하는 뒷모습, 그리고 저수지로 걸어 내려가는 소희의 뒷모습을 카메라는 따라가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보여줄 뿐이다.

 

틈새로 비추는 햇살과 하얀 눈은 긍정적인 메시지로 보인다. 그러나 ‘다음 소희’에서 두 소재는 소희를 죽음으로 이끈다. 슈퍼마켓에서 홀로 맥주를 마실 때 슬리퍼를 신은 소희의 발에 한 줄기 빛이 얹어진다. 어둑한 슈퍼마켓의 문틈 새로 새어 들어온 빛이다. 소희는 그 빛을 바라보고, 관객은 소희의 시점이 아니라 외부의 시선으로 빛을 함께 바라본다. 이 담백하고 멀찍한 거리는 그 빛이 희망일까, 착각하게 만든다. 실은 어둠과 대비돼 소희가 지독한 고독에 몸서리치도록 한 매개였을 텐데 말이다. 소희가 저수지로 걸어 들어가기 전 올려다본 하늘에선 진눈깨비가 흩날린다. 어쩐지 차에서 죽은 팀장님을 액자처럼 덮고 있던 눈 같다. 그리고 눈은 팀장님 사건 때도 그랬듯, 고결한 흰색으로 소희를 덮으려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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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들의 현장 실습 구조를 비판하는 영화일까? 물론 그것이 골자다. 이 영화는 2017년 전주 대기업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간 고등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당시 현장실습에 대한 비판이 일었지만, 작년에도 화훼농가로 현장실습을 나간 대학생이 숨졌다. 유사한 사고들이 반복되는 이상, 이를 더 이상 개인의 부주의와 책임으로 일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다. 팀장의 죽음에 따라붙은 불명예스러운 소문들, 소희의 욱하는 성격과 가정형편을 탓하는 말들. 사회는 피해자에게 완전무결함을 요구한다. 성격이 드세서도 안 되고, 꼬투리잡힐 만한 가정형편이 있어서도 안 되며, 피해자가 관리자였다면 피해자로서의 자격을 박탈한다. 그러나 그들의 기준에서 피해자가 ‘무결’하더라도 그 누구도 책임지고 싶어 하지 않으니 명확한 책임자를 두지는 않는다. 교묘하게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는 사회의 모습을, 영화는 책임자들이 서로에게 차례로 시선을 돌리는 원테이크 샷으로 비춰낸다. 규율하는 책임자 없이 개인에게 실적과 책임을 무는 긍정성의 폭력이 도사린 사회를 비판한다. 나아가 어른의 책임은 다하지 못하면서 어른이라는 이유로 소희에게 책임을 묻는 담임의 모습은 노골적이라 불편하기까지 하다.

 

소희는 막히던 동작에 끝내 성공하고 환하게 웃는다. 소희의 핸드폰에 남은 유일한 영상이다. 영화는 막히는 춤동작에 고군분투하던 실제 소희의 모습으로 시작해서 동작을 성공한 화면 속 소희로 끝난다. 끝내 성공한 소희. 그러나 소희는 영상으로만 남아있다.

 

힘든 일을 하면 감사하지 않고 무시하는 사회, 구조의 문제를 책임지지 않기 위해 개인의 문제로 일축하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사회, 성과에 매몰돼 인간성을 기꺼이 저버리는 사회, 그 과정에서 숨 막히는 수치에 압살되는 사람들.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건 떡볶이 코트에 백팩을 맨 채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연습실에서 춤을 추는, 너무나 보통의 학생들, 그리고 사람들이다. 다음 소희는 없어야만 한다.

 

 

[정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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