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의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

슬픔 속에서 만들어진 작품만이 사람들을 가장 즐겁게 할 수 있다
글 입력 2023.02.19 21:3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20230221214140_rucwyaqk.jpg

 

 

가곡의 왕 슈베르트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는 오스트리아 작곡가로, 시대상 바흐 - 모차르트 - 베토벤에 이어지는 천재음악가로서 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한 인물이다. 18세가 독일 리트의 창시자이자 '가곡의 왕'이라 불릴 정도로 수많은 가곡을 작곡했는데, 생전에 무려 600여 편의 가곡과 13편의 교향곡, 소나타, 오페라를 작곡했다. 1797년 오스트리아 빈 교외의 리히텐탈에서 16남매 중 13번째로 태어난 슈베르트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즐겨 하던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음악을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1828년 31세의 짧은 생을 마쳤지만 그가 남긴 음악들은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울림과 깨달음을 주고 있다.

 

 

20230221215054_shrvwibb.jpg

 


<마왕> 작품번호 1, D.328

- 17살의 슈베르트

 

슈베르트의 곡 중 가장 유명한 곡은 아마 <마왕>이 아닐까 한다. 1815년 그가 17살에 작곡한 이 곡은 현재까지 독일 가곡 최고의 명장으로 꼽히곤 한다. 괴테의 동명의 시 '마왕'에 피아노곡을 붙여 작곡한 것으로 영감을 받아 하루만에 작곡한 이후 4번의 수정을 거쳐 1821년에 발표하였다.

 

4분의 4박자, 사단조이고 변형된 론도 형식의 이 곡은 아버지, 아들, 마왕, 해설자 네 등장인물들의 상황과 비극적이고 음산한 전체적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교활한 마왕이 말하는 장면, 그 목소리 처음 부분은 나란한 조 내림 나장조(B flat 장조), 두 번째는 다장조(C장조), 세 번째는 다 단조(C단조)의 나폴리조(나폴리의 6화음)인 내림 라장조로 부르다가, 서서히 음이 올라가며 긴장감을 높인다. 또한 공포에 떠는 아들의 목소리 부분에서 피아노와 목소리 부분이 라 단조로 되어있는 것과 같이 혁신적인 부분도 찾압졸 수 있다. 이 가곡은 노래 선율 못지 않게 반주가 돋보이는데, 인트로에서 지속적인 G옥타브 트레몰로 주법으로 말발굽 소리를 나타낸 것이 큰 특징 중 하나이며 이 말발굽 모티브가 지속적으로 반복되면서 곡 전체의 긴장감과 극적인 효과를 배가시키고 있다.


- 가사

 

아들

아버지, 아버지, 보이지 않으세요?

저 음침한 곳에 서 있는 마왕의 딸들이?

 

아버지

아들아, 아들아 진정하거라

저건 단지 낡은 버드나무 가지일 뿐이란다.

 

아들

아버지, 아버지 절 꼭 안아 주세요!

마왕이 제 팔을 잡고 저를 끌고 가요!

 

해설자

아버지는 공포에 질려 급하게 말을 달렸네

신음하는 아이를 팔에 안고서

두려움에 떨면서 집에 도착했더니

아들은 품 속에서 죽어 있었다네


괴테의 시 '마왕'은 음산하고 비극적인 내용으로 당시 여러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음악 분야에서도 여러 작곡가들이 이 가사를 바탕으로 곡을 남겼다. 오늘날까지 재창조되고 새롭게 작곡되고 있는 주제 중 하나였다. 슈베르트가 평생 존경했던 작곡가 베토벤도 괴테의 마왕에 나름 감명을 받고 작곡을 시도한 바 있다.


17세의 슈베르트에게 크나큰 감명을 주었던 작품 '마왕' 속에는 비극적인 삶과 죽음에 대한 두렵고 어두운 분위기가 가득하다. 빠른 템포의 슈베르트 버전 <마왕>의 반주는 그 긴장감을 극대화시킨다. 하지만 그 긴장감과 두려움 속에서 사람들을 애상감과 더 나아가 예술적 아름다움을 느낀다. 슈베르트의 가곡에는 꿈과 현실의 이중구조가 두드러지는데, '안락한 꿈에서 깨어보니 현실은 혹독할 정도로 고통스럽다'의 근본적 주제가 드러나곤 한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마왕(사신)이 내게 속삭인다'라며 겁에 질려 하는 말을 아버지는 애써 '버드나무가지 소리일 것이다'라며 안심시키려 하지만, 결국 집에 도착해 품 속에 죽어있는 아이를 발견해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비극은 향유층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고, 그것이 이런 비극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오늘날까지도 그 예술적 '아름다움'의 가치를 인정받고 오래도록 재생산 될 수 있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한다.

 

 

20230221215156_lpavvion.jpg

 


(2) <아르페지오 소나타> (Arpeggione Sonata, D.821)

- '슬픔 속에서 만들어진 작품만이 사람들을 가장 즐겁게 할 수 있다'

'나의 음악을 듣는 당신은 행복했으면 좋겠다'


'아르페지오 소나타'의 작곡 연도는 1824년, 그보다 한해 전 빈의 악기 제작자인 게오르크 슈타우퍼가 고안해낸 '아르페지오네'(Arpeggione)라는 악기를 위해 작곡된 곡이다. 여기서 아르페지오네는 첼로와 비슷한 악기로 기타처럼 6개의 현을 가졌고 활로 켜서 연주하는 악기이다.


이 곡을 작곡할 무렵 슈베르트는 매우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고 있었다. 1823년 매독에 감염된데다 우울증까지 겹쳐, 몇 달간 병원에 입원하기까지 했다. 매독 치료로 머리카락마저 빠져버린 슈베르트는 1824년 3월 친구인 레오폴드 쿠펠비저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인간이라네. 건강이 영원히 정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인간, 그로 인해 절망하고 있는 한 인간을 상상해보게나.' 라고 쓰기도 했다. 또 같은 해 일기에서 '매일 잠에 들 때마다 나는 다시 눈을 뜨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아침이 되면 전날의 슬픔이 또 엄습한다. 기쁨도 편안함도 없이 하루가 흘러간다.' 하지만 그 뒤에 이렇게 덧붙인다.

 

'슬픔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만이 사람들을 가장 즐겁게 할 수 있다. 슬픔은 정신을 강하게 한다.'


<아르페지오 소나타>는 이런 시기에 작곡된다. 1악장 도입부에서 피아노가 연주하는 주제 선율을 이어서 첼로가 느릿하고 슬프게 이어받는다. 감미롭고 아름다운 선율로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곡에서 느낄 수 있는 격정과 비극의 냄새가 거의 없는 대신, 성찰적이고 빼어난 우아함을 담고 있다. 이 곡은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 1악장은 고전주의 소나타 형식, 제 2악장은 복합 2부 형식, 제 3악장은 론도 소나타 형식의 구조로 되어 있다. 고전주의 형식을 기초로 하여 특유의 서정적인 선율, 다양한 화성, 자유로운 전조를 사용한 작곡가의 특징을 보여주는 곡이라고 할 수 있다.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

우리가 음악을 작곡하고, 노래하고, 듣는 이유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아름다운 노래'란 무엇일까?


인간은 때론 너무 기쁜 것에도 슬픈 것에도 아름다움을 느낀다.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양가적 감정은 논리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앞선 <마왕>과 같이 비극과 슬픔, 허무와 비애로 가득 찬 작품에서 우린 아름다움을 느낀다. 슈베르트의 고통과 슬픔이 아름답게 승화되어 만들어진 작품 <아르페지오 소나타>에서도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낀다. 전혀 다른 장르와 분위기의 클래식 같지만, 달빛 아래 잔잔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몽환적이고 서정적인 선율로 그대로 표현해낸 것만 같은 드뷔시의 <달빛>을 들으면서도 우린 아름다움을 느낀다.


때론 가장 밑바닥에 가야 비로소 보게 되는 경치가 있고, 깨닫게 되는 진리가 있다. 잃고나서야 알게 되는 소중함이 있다. 슬픔과 고통 안에서 피어나는 인간에 대한 통찰은 때론 그 무엇보다 아름답다. 가장 밑바닥, 우리의 근원을 꿰뚫는 통찰은 그 다음 세대, 또 그 다음 세대에 걸쳐서도 일히고 소비되며 그렇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며 때론 영원한 생명력을 가진다. 그것이 고전의 가치이고 예술의 가치이며 더 나아가 우리 한명한명의 삶의 가치일 것이다.


우리의 세상은 수많은 찰나의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사진을 찍고, 글을 쓰고, 음악을 작곡하고... 사실은 우리의 그 모든 과정이 우리의 시간을, 반짝이는 그 찰나의 순간을 붙잡으려는 행위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무한히 흐르고 흘러 사실은 붙잡을 수 없는 그 시간을 붙잡으려는 행위 말이다.


한 순간의 기억으로 평생을 산다는 말이 있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지나가는 숱한 행복하고, 슬프고, 때론 고통스럽고 또 찬란한 순간들, 그 시간들은 누구는 글로 붙잡고, 누군가는 노래로 붙잡고, 또 다른 누군가는 사진으로 붙잡아서 그렇게 두고두고 우리에게까지 그 순간의 감동과 깨달음을 전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음악은 때로 글로는 다 표현하지 못한 더 많은 것들을 담아내는 메모리폼 같다. 어떤 음악은 듣는 것 만으로 그 음악을 들었던 시절의 추억을 떠오르게 하고, 또 어떤 음악은 구구절절한 가사 하나 없이도 우리에게 커다란 위로를 준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신나고 희망차게 하고, 슬픔에 빠져들게도 하는 선율, 가사, 때론 그 모두가 음악안에는 있다. 음악을 통해 느끼는 감상, 그 풍부한 감격을 애써 글로 표현하려 노력한다 해도 사실 그것은 음악이 주는 복합적인 감동의 아주 부분에 지나지는 않을까 싶다.


슈베르트는 '슬픔 속에서 만들어진 작품만이 사람들을 가장 즐겁게 할 수 있다'라고 한 바 있다. 슈베르트가 극심한 고통 아래에서 작곡한 <아르페지오 소나타>도, 드뷔시가 이탈리아 유학 당시 아름다운 풍경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했던 <달빛>에서도 아름다움은 느껴진다. 괴테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했던 <마왕>에서도 비극적 애상감, 역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슈베르트의 음악들은 작곡된지 이미 20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커다란 울림과 아름다운 감동을 선사한다. 

 

 

[박주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