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술 하자,

글 입력 2023.02.1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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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곳에서 튀지 않고 존재하며 언제나 뒷받침해야 한다는 것


 

언젠가 그림자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항상 존재하지만 잘 주목받지 못한다. 그나마 어두컴컴한 저녁이 되어 그림자의 존재감이 커지는 가로등 밑에서라면 잠시 쳐다봐 지거나 플래시 터뜨려지는 게 전부이다. 전에 행사장 알바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알바란 그림자가 되는 것과 비슷함을 느꼈다. 일단 검은 옷을 입고 와야 한다. 튀지 않아야 하며 깔끔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때 그 행사장에 오랫동안 동경해 왔었던 지체들이 왔었는데, 아는 척도 인사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알바라는 이유만으로. 할 일이 없을 때마저도 가만히 내 자리에 있어야 함을 깨달았을 때, 이 자리가 답답한 검은색에 갇혀 있어야 하는 그림자와 다름없다는 것을 느꼈다. 

 

 

 

노동의 예찬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아르바이트, 즉 노동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가끔 머릿속에 생각이 너무 많으면 백일몽을 꾸는 기분일 때가 있다. 정리가 안되고 잡다하게 흐트러진 채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모습이 스크린처럼 상연된다. 이건 노동, 즉 움직임으로 생각들을 정리해야 한다는 신호이다.

 

어릴 때 ‘집안일 돕는 아이가 공부도 잘한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때 집안일을 전혀 돕지 않았던 나는 공부와 집안일이 대체 어떠한 관계성이 있다는 건지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다. 당연했다. 집안일을 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성인이 되어 집안일의 일부분을 맡고 아르바이트도 많이 하는 나는 이제 노동의 가치를 잘 안다. 삶에서 노동은 필요하다.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할 만한 노동들은 청소, 요리, 운동 정도가 되겠다. 이 노동들은 정신에 환기를 시켜주고 다른 것을 할 새로운 활력을 만든다. 노동은 단순하다. 단순하기 때문에 집중하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노동은 복잡한 일을 할 힘을 길러준다. 음식을 만지고 썰고 다듬는 요리의 과정을 무언가에 집요하게 몰입하는 하나의 명상이라고 보기도 한다. 따라서 난 노동을 마다하지 않는다. 노동의 시간은 다른 것도 노동처럼 몰두할 집중력을 키워준다.

 

 

 

노동과 예술은 한 끗 차이?


 

노동과 예술을 헷갈렸던 스무 살 여름을 잠깐 꺼내보겠다. 그전에 내가 이 글에서 쓰는 모든 노동의 뜻은 네이버 사전에 ‘노동’을 검색하면 첫 번째로 나오는 ‘몸을 움직여 일을 함.’임을 명시한다. 그때 무리한 일정으로 여름방학 학교 공연 워크숍의 무대팀을 맡았었다. (참고로 필자는 연극과로 대학을 재학 중이다.) 1학년이어서 할 줄 아는 것도 없었고, 막내란 이름으로 온갖 잡일이란 잡일은 다 도맡아 했다. 땡볕 앞에서 페인트 바르기, 무대 쓸고 닦기 이 두 가지를 방학 내내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살, 예술이란 바다에서 파도를 목격하고 나도 한번 타보겠다고 몸부림치며 들어간 학교였다. 파도타기를 가장 잘할 수 있는 계절인 여름에, 내 바닷속에는 잔물결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이게 예술일까 노동일까 헷갈리지도 않았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생각 하나 하기에도 지쳤다. 그저 울며 겨자 먹기로 생각이란 것을 멈추고 매일을 살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일주일이 없어지는데, 시간이 정지한 느낌이었다. 내 생애 이토록 제자리걸음을 하는 기분을 느낀 적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정말 버티며 살아가고 있었다. 하루는 학교에서 일을 일찍 끝내고 복도에서 잠깐 동기들과 스몰 토크를 하고 있었다. 매일 아침 학교에 들어갈 때마다 습관처럼 고개 숙여 인사했던 경비 반장님이 얼굴을 내밀었다.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무슨 공연을 하고 어떤 역할을 맡았냐고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보셨다. 정신 차려 보니 옆에 있던 동기 언니가 대답을 하고 있었고, 난 멍하니 망한 것 같은 이 공연에 대한 반장님의 뜻밖의 관심을 의아해하고 있었다. 무대팀을 하고 있다는 말에 반장님은 놀라시며 대답하셨다.

 

 
"학생들 근사한 일을 하고 있구나.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칠한 페인트칠이 무대 위에 올라가면 조명을 받아 반짝이고 그것이 곧 공연이 된다는 것. 생각만 해도 가슴 떨리네."
 

 

 

우리 예술하자


 

순간 너무 놀라 이 반장님의 표정을 몇 초 동안 충격적으로 쳐다보았던 것 같다. 난 무엇에 충격을 느낀 걸까. 경비 반장님이 이런 말을 내뱉은 사실에? 아니면 여태껏 난 해보지도 못한 생각을 경비 반장님이 꺼내셨음에? 내 생각의 흐름은 전자에서 후자로 흘러갔다. 머릿속에서 폭풍이 일어났다. 힘들고 지치는 시간들이긴 했지만, 왜 아무 생각 없이 버티자고만 다짐했을까. 아니 꼭 버텨야 했을까? 힘든 건 말해 보기도 하고 개혁의 의지를 가져야 하지 않았을까? 의미 부여조차 버거운 날들 이였지만 이렇게까지 초심을 잃게 된 원인이 무엇일까? 아무 생각 없이 임한지 너무 오래되어서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 생각을 들추어 내보려고 할 때마다, 빈 종이를 지우개로 계속 지우는 느낌 이였다. 그러고는 깨달았다. 노동과 예술의 차이는 ‘생각을 하느냐 마느냐’ 이구나. 이 여름은 노동이었구나. 이 뜻은 어떤 노동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상을 예술처럼’, ‘예술적이다’, ‘뭐야 예술인데~?’ 우리는 일상에서 예술을 자주 언급한다. 여기에서 예술이 뜻하는 것은 심미적인 것도 있지만, 분명히 어떠한 의도와 뜻이 담긴 생각의 유무가 있을 것이다. 그니까 우리 예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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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와 빛이 만들어내는 광경은 황홀하도록 아름답다. 세상도 우리도 분명히 그림자와 빛 둘 다 필요로 한다. 황홀해지기 위해서 말이다.

 

 

[신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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