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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글자에 관한 글자들 [사람]

by 박예진 에디터
2023.02.17 13:32

 

 

아직도 그는 스물과 스물한 살 어딘가의 겨울을 놓지 못했다.

 

오래 질퍽거렸던 진창엔 더 이상 빠질 수 없겠지만 얼어붙은 글자엔 얼마든 손 뻗을 수 있으니까, 자꾸만 돌아간다.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기록은 그게 그가 좋아하는 ‘그’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때의 ‘그’와 지금의 그는 여전히 그인가?

 

그는 과거의 '그'가 직조해 낸 글자들을 쓸다 자꾸만 멈칫한다. 사이사이 공격적인 삐침에 손을 베인다. 그 날카로움을 고요히 응시하던 그는 그것이 틈에서 자라난 가시임을 깨닫는다. 거만한 손이 그때의 그보다 큰 글자를 꺼냈음을 눈치챈다. 마음이 산란하고 배가 아파 온다. 먼지를 털어내기 위한 나름의 자구책이었지만 또 한숨만 일었다.

 

글자는 분명 갈피요, 창구이자 과거의 '그'와 현재의 그를 이어줄 매개체이다. 그러나 그 통로는 시간의 무심한 한숨에 얼어붙어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막힌 글자를 앞에 두고, 그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얼어붙은 글자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새로운 기억을 꾸리든가, 아니면 완강히 거부하고 다른 것을 붙잡거나. 그는 불행히도 자기 속임에 서툰 사람이다. 즉 그대로 수용하기에 그는 덜 뻔뻔하며 그렇다고 내치기엔 그에겐 그것밖에 없다.

 

그러자 그는 그가 발견한 유일한 것, 그 삐침을 붙잡고는 울기를 선택해 버린다. 아니, 선택당한다. 실은 강요받은 것이다. 자기 속임에 미숙한, 덜 뻔뻔한 그에게 허락된 선택지란 애초부터 없었으니까. 하여 그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틈 사이에 빠져, 엉엉 울기만을 영영 강요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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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참 오래도록 글자를 무서워해왔다.

 

유랑하는 상념을 틀에 고정시키고 나면, 순간이었던 시절(정동, 순간의 상념)과 반복되며 머무르는 계절(각진 틀 혹은 그 틀을 응시하는 나날들) 사이에 간극이 발생한다. (다만 이 간극이 필연적인 것인지, 내가 글자를 다룰 줄 모르기 때문에 혹은 자꾸 큰 글자를 꺼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이 현상을 어떻게 하면 더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가령 과거의 친구를 다시 만날 때 어색함이 그득한 것을 예로 들면 될까. 그것과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데... 여하튼 그 간극에는 휘발된 것들과 남아있는 것들의 격차로 인한 민망함 면구함 그리고 머쓱함만이 그들먹하다.

 

그것을 본 나는 심지어 좀 슬퍼지기까지 하는데, 이는 단지 시간의 흐름을 체감함으로써 발생하는 슬픔이 아니오, 종종, 아니 사실 대부분의 글자들은 정말 '글자'로만 남아버리기 때문이다. 헨젤이 돌멩이를 떨어트려 집을 찾게 했던 것처럼, '그'는 글자를 조합해 시절의 성에 가는 표지를 만들었다. 허나 돌멩이가 빵 부스러기가 되어 엉뚱한 과자집으로 인도했던 것과 같이 글자 부스러기는 그를 매번 다른 곳으로 이끈다. 결국 그는 몇몇 글자들에 의존해 제사날로 가짜 성을 짓고는 다시 돌아간다.

 

여기서 끝났다면 울 필요까진 없었을 텐데. 그가 운 이유는 슬프기 때문이 아니라, 아팠기 때문이다. 그가 찾은 유일한 삐침이 너무 매서웠기 때문에. 그의 못난 점을 무시로 부각시켰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 때문인지, 그의 허영 때문인지, 아니면 이유 없는 우연인 건지, 그가 발견할 수 있는 건 오직 그 틈. 응고된 가시. 찬란했던 기억이 휘발되고 남은 허영의 자국뿐이다. (허나 ‘허영’ 그 한 단어로 정리될 수 없는.) 이제 그 삐침을 그는 책임져야만 한다.

 

몸을 잔뜩 웅크러뜨린 그는 칼끝처럼 첨예한 가시에 그만, 무딘 울음으로 대응하기 시작한다. 놀랍게도 그것이 최선의 대응책이다. 그는 사력을 다해 무책임하게 울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것이 그의 책임이지만, 그러므로 그는 책임져야 마땅하지만, 그가 감히 책임질 수 없기에.

 

그는 말에 관하여, 글자에 관하여 아는 바가 별로 없다. 그의 무시무시한 무지가 허영을 두르고 균열을 내어 가시를 키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항상 말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이 얼마나 비참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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