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돌고 돌아, 베토벤 - 클래식 디깅 클럽 베토벤

글 입력 2023.02.12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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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연말연시면 꼭 엄마 손에 이끌려 클래식 공연을 보러가곤 했다. 지루한 음악이 울려퍼지면 늘 2악장 중간 즈음부터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늘 고개를 떨구고 잠들어버리는 딸을 꿋꿋이 공연장에 데리고 다녔다.


그렇게 클래식 공연장에 끌려 다닌지 어언 20년, 클래식은 아직도 어렵지만 더 이상 생소하지는 않고, 언젠가부터는 흥미롭고 설레는 무언가가 되어 내 일상 속으로 스며들었다. 아무리 들어도 다 엇비슷하게만 들리던 클래식 곡들로부터 조금씩 나의 취향을 발굴해가기 시작했고, 그 취향의 넓이와 깊이를 더하는 데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요즘이다.


그러나 듣고 또 들어도 유난히 정을 붙이기 힘든 작곡가가 있었는데, 다름 아닌 베토벤이었다. 클래식 소양이 아직 턱없이 부족한 탓이겠지만, 극적이고 감정적인 곡을 좋아하는 내게 베토벤은 어쩐지 무뚝뚝하고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지난 주말, 이번엔 내가 먼저 엄마 손을 이끌고 <클래식 디깅 클럽 - 베토벤> 공연에 다녀왔다. 음악 칼럼리스트 김문경의 쉽고 재미있는 베토벤 해설이 함께하는 공연이라는 말을 듣고 내게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감상과 향유에 목적이 있을 필요는 없겠지만, 이번 관람만큼은 '돌고 돌아 베토벤'을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엄마의 말을 비로소 이해해보는 것을 목표로 삼아봤다.

 

 

 

베토벤을 '디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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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깅(Digging)'이란 '발굴하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로, 디제이가 자신의 공연 리스트를 채우기 위해 음악을 찾는 행위를 지칭하기도 한다. 요즘은 그 의미가 확대되어 나만의 특색있는 플레이리스트를 짜는 행위를 일컫는 단어로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클래식 디깅 공연>은 최근 떠오르는 '디깅 문화'에 발맞추어 나만 알고싶은, 나만 좋아하는 음악을 작곡가별로 접해볼 수 있는 공연으로 기획되었다.

 

그 중 지난 2월 4일 공연된 <클래식 디깅 클럽 - 베토벤>은 클래식 음악의 거장으로 불리우는 베토벤의 음악과 삶을 유연한 스토리텔링의 방식으로 만나볼 수 있도록 꾸며졌다.


P R O G R A M


Theme 1. 악성 베토벤의 탄생

Beethoven - Piano Sonata No.8

베토벤 – 피아노 소나타 8번

Beethoven - Violin Sonata No.8 (mov.1)

베토벤 – 바이올린 소나타 8번 1악장


Theme 2. 모차르트를 디깅한 베토벤

Beethoven - 7 Variations from Mozart's Magic Flute

베토벤 -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테마에 의한 7가지 변주곡

Beethoven - Piano Quartet in C Major WoO 36 No. 3

베토벤 – 피아노 4중주 제 3번

 

 

 

악성樂聖 베토벤의 탄생


공연은 크게 두 가지 테마로 나뉘어 진행되었는데, 흥미롭게도 베토벤의 생애를 시간의 역순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전반부는 '악성 베토벤의 탄생'이라는 부제 아래 진행되었다.


음악가로서 그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았을 청력을 서서히 잃어가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악보와 음표를 벗삼아가며 위대한 작품을 남긴 음악의 성인, '악성樂聖 베토벤'의 음악인생을 되짚어보고, 뒤이어 베토벤하면 누구나 가장 먼저 떠올릴 그의 대표작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과 '바이올린 소나타 8번' 1악장이 연주되었다.

 

베토벤과 청력 손상, 그리고 그 절망과 고뇌 속에 탄생한 비창 소나타를 엮어내는 스토리텔링의 방식 자체는 클래식 문외한일지라도 새롭지 않을 만큼 이미 널리 알려진 내용이라, 사실 크게 새로울 것은 없다고 평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고난과 투지가 어지럽게 얽혀있던 베토벤의 생애와 그 삶이 짙게 묻어난 음악 연주가 눈 앞에서 펼쳐지자 기대 이상의 감동이 느껴졌다. 베토벤의 삶이 담긴 이야기와 음악이 한 무대 위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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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를 디깅한 베토벤

 

2부는 '모차르트를 디깅한 베토벤'을 테마로 꾸며졌다. 동시대를 살았던 또다른 위대한 작곡가 모차르트를 동경한 젊은 시절 베토벤의 이야기가 전개되며, 베토벤이 존경의 마음을 담아 작곡한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테마에 의한 7가지 변주곡'과 '피아노 4중주 3번'이 연주되었다.


앞선 무대를 통해 만나보았던 첼로, 바이올린, 피아노에 비올라가 더해져, 비로소 마지막 무대에서 다함께 아름다운 앙상블 하모니를 꽃피우며 공연이 막을 내렸다. 젊은 연주자들이 입가에 미소를 띠고 유년 시절 베토벤의 밝고 가벼운 곡을 연주하는 모습이 싱그럽고 아름다웠다.


2시간 동안 베토벤의 삶과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서일까, 이전까지는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어린 베토벤의 모습이 연주자들에게 겹쳐 보이는 듯 했다. 곱슬머리와 험상궂은 표정을 한 사내의 모습으로 굳어져있던 베토벤이 음악에 대한 애정과 집념의 형태를 띠고 내 안에 꽉 들어차 약동하기 시작했다.

 

 

 

돌고 돌아, 베토벤


공연이 끝난 뒤 일주일 만에 다시 베토벤 교향곡 5번을 감상하러 예술의전당으로 향했다. 이번에도 역시 엄마와 함께였다.

 

공연장 3층과 합창석까지 빼곡하게 들어찬 그 수많은 관객들이 동시에 숨죽이고, 손모아 박수치고, 다함께 환호하는 광경 속에서 무언가 형용하기 힘든 감정을 느꼈다.

 

베토벤의 시간이 끝난 지 오래인 오늘날까지도 청중들은 여전히 베토벤의 음악 곁을 맴돈다. 베토벤의 생애는 슬픔과 고뇌로 군데군데 그늘졌을지만, 그 고통을 승화시킨 음악이 남아 여전히 소리 속에 공명한다.

 

돌고 돌아, 베토벤이다.

 

 

[최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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