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어른이 된다는 것

feat. 취업, 이사, 입원
글 입력 2023.02.10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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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내가 생각하는 어른 중의 어른, 아빠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이 어른 같으냐고. 아빠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어른 같다고 답했다. 앞서 내린 정의에 따라 고등학생 때의 나도 어른으로 생각하고, 대했다고 한다.


최근 큰 변화를 세 가지 겪으면서 내가 과연 어른이 맞는지, 내가 생각하는 어른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금 곱씹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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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변화는 역시 일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내가 일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는 즐거움, 그리고 사람이다. 좋아하고 즐거운 일을 하더라도 함께하는 사람이 맞지 않으면 그만둘 수밖에 없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금 함께하게 된 회사는 두 가지 요소를 모두 충족한다.


“서로 대면하여 만남”이라는 뜻을 가진 면접은 취업을 하려면 필수적이다. 이 회사를 통해 겪은 면접은 일방적으로 자신을 어필하는 만남이 아닌, 정말로 서로 대면하는 만남이었다. 나의 경험을 세세하게 묻는 동시에 현재 회사의 운영 방식과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하며 함께 맞춰나가고 싶다는 모습을 보였다. 


내 가치를 알아주는 회사, 나를 존중하는 동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다. 이런 체계와 사람들 속에서 일하며 하루하루 성장하고 있다. 맡은 업무가 늘어나면서 잘 적응하고 있음을 느끼고, 동시에 내 책임이 늘어나고 있음 또한 느낀다. 아빠가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을 왜 어른으로 꼽았는지 알 수 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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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에는 이사를 했다. 함께 살던 동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본가로 돌아갔다. 3년간 함께하며 희로애락을 겪고 전보다 훨씬 더 끈끈한 사이가 되었지만, 나는 혼자 살아야만 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느꼈다.


전 집은 관리가 잘되지 않은 집이었다. 화장실 문, 전기, 수도 등등 전 주인이 방치했나 싶을 정도로 고쳐야 하는 곳이 많았다. 방을 다 들어내고 공사를 하는 바람에 잠시 다른 방에 있기도 했다. 고친 난방은 작동을 하지 않았지만, 더 이상 연락하거나 집을 나가 있고 싶지 않아 난로로 두 번의 겨울을 보냈다. 방음이 잘 되고 채광이 좋은 것만 빼면 이 집에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다고 판단해 이사를 결정했다. 


어려울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지금 시기에 방 구하기는 정말 힘들었다. 매물은 연락과 동시에 보러 가지 않으면 모조리 다 나가고, 신입생들은 부모님과 함께 계속해서 몰려와 나보다 더 높은 가격을 이야기한다. 직장인이라고 하면 더 높은 가격의 방을 구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그전까지는 부모님의 돈이던 월세가, 내가 지불해야 하는 돈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갈피를 잃고 헤매다가 결국 약간의 언덕을 올라야 하는 집과 계약을 했다. 전 집이 3.5 층의 계단을 올라야 하는 곳이었기에 조금 더 올라가는 정도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이 집도 장단점이 있지만, 집주인이 위층에 거주하고 있어 관리가 잘 된다는 점이 계약에 크게 작용했다. 어른이 되면 타협하게 된다는 말을 몸소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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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병원 입원 날짜를 잡았다. 12월 30일이던가 31일이던가 막차의 막차를 타고 한 건강검진에서 비결핵성 질환이 의심된다는 결과지를 받았다. 결핵과 연관되지 않은 질병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는데, 심장 우측에 음영이 보인다고 CT를 찍어보라는 내용이었다.


동네 병원에는 찍을 수 있는 곳이 한 군데도 없어서 그나마 가까운 병원을 찾아 X-ray를 찍고, 다음날에는 금식을 하고 약물까지 투여해 몸을 밝혀 CT를 찍었다. 폐 쪽에 물혹이 보인다는 진단을 받아 흉부외과가 있는 병원으로 연결되어 예약이 잡혔다.


대학병원을 처음 가본 소감은 ‘공항 같다’였다. 안에 카페, 음식점, 라운지 등이 들어서 있고, 몇 층에 걸쳐 에스컬레이터가 운영되며 긴 복도와 각자의 목적지를 가지고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까지 너무나도 공항의 느낌과 비슷했다. 나도 흉부외과를 향해 열심히 걸어가서 진료를 봤다. 그리고는… 폐암 센터로 보내졌다.


담당 교수님은 CT 영상을 보시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수술하자고 하셨다. 동그란 모양의 물혹 또는 종양으로 추측되는 4.2cm의 무언가는 위치가 너무 애매해서 조직검사보다는 수술을 통해 제거한 후, 조직검사를 하는 게 나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그 이후로는 정신없이 수술 가격에 대한 안내, 입원 대기 절차, 다양한 검사를 거치고 병원에서 쫓겨나다시피 밖으로 나왔다. 


모양을 보아서 악성 종양, 즉 암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하셨지만, 난생처음 겪는 수술을 앞에 두고 태연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필 병원 진료 시간과 동생의 졸업식이 겹쳐 이후에 식사만 같이 했는데 아빠와 동생 앞에서는 태연한 척했지만, 집에 돌아와 새벽까지 수술에 대한 정보를 찾고 또 찾았다.


찾아볼 만큼 본 후에는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 어차피 해야 하는 수술이고 미리 걱정해서 해결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차분해진 후에야 자각했다. 일주일이 지나자 전담 간호사분께서 연락을 주셨고, 수술 날짜를 잡을 수 있었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내가 정의한 어른은 “적절한 때에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다. 프리랜서라고 해도 일할 때는 분명히 연결된 곳이 있고 함께 일하는 사람이 생긴다. 지금 내가 하는 일도 혼자라면 절대 해낼 수 없다. 동료들의 도움은 필수적이고, 나 또한 동료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거리낌 없이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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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날, 적을 거로 생각했던 짐은 생각보다 많았고 눈이 계속해서 오고 있어 차가 언덕을 올라가기가 힘들었다.  우선 옮길 수 있는 짐은 들고 언덕을 올라 집에 가져다 놓기를 반복했다. 아빠는 주변 집 문을 두드려 빗자루를 얻어 길을 쓸고, 동사무소에 가서 염화칼슘을 받아왔다. 


얼추 도로를 정리하고 아빠와 동생이 전 집에 가서 정리를 마치는 동안 짐과 함께 남겨졌다. 나는 머릿속에서 배치를 먼저 다 끝내야 정리가 가능한 타입이다. 수많은 짐 덩어리와 남겨지자 머리가 새하얗게 되면서 어떤 것도 정리할 수 없었다. 거의 울기 직전의 상태로 동생에게 언제 오냐며 전화를 건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아빠와 동생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삿짐은 일주일이 넘도록 방치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병원을 다녀온 후에도 불안한 상태를 토로하고 함께 정보를 찾아달라고 했으면 뜬 눈으로 밤을 새워가며 걱정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사실 상태가 괜찮아진 것도 친구를 붙잡고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으며 얼굴을 보며 이야기해야겠다며 집으로 부른 게 큰 역할을 했다. 


아무 도움도 받지 않는 사람보다 오히려 적절하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 어른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시기를 놓치지 않고 도움을 요청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다가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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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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