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모든 결심이 실패하는, 헤어질 결심 [영화]

글 입력 2023.02.05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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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심(決心). 일을 이루고자 굳게 마음을 먹은 것이다. 하고자 하는 일을 해내고야 말겠다는 굳은 다짐. 그러나 우리는 왜 결심만 하면, 도리어 그 결심의 실패부터 떠올리게 될까? 어릴 때부터 숱하게 들어오고 행해온 작심삼일(作心三日)의 효과일까? 강한 결심을 하는 순간, 오히려 상황이 더 위태롭게 느껴진다. 지키고자 하는 것이 클수록 불안함과 위험함이 높아지는 건 당연하니 그럴 수도 있다.

헤어질 결심. 헤어짐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물건이든. 우리는 아무것에나 ‘안녕’을 고하는 것에 헤어짐이라고 이름 붙이지 않는다. 관계와 정을 맺었던 것, 그런 것에 작별을 고할 때 헤어진다는 표현을 한다. 관계를 맺었던 것과 이별한다는 것은 구에게나 마음 쓰라린 일이다. 그럼에도 그 이별을 먼저 다짐하게 되는 그 마음은 무엇일까.
 
아무리 싫은 것이라도, 하나의 관계를 끊는다는 것은 본인 안에서도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는 일이기에 쉽지 않은데, 이를 파괴했다는 그 결심.
 
그 <헤어질 결심>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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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나오는 모든 결심은 재가 된다

 

제목에서부터 ‘결심’이 들어간 만큼, 이 영화에서는 숱한 결심들이 나온다. 해준과 해준의 아내 정안은 주말부부다. 그들은 사랑이 식지 않기 위해 매주 주말마다 함께 밥을 먹고, 부부 관계를 하기로 약속한다.
 
해준은 자신의 직업적 전문성에 대해 굉장한 애정과 자부심이 있는 사람이며, 그 품위를 잃지 않으려 결심한다. 서래는 한국에 오기 전에 아픈 엄마를 전문적으로 간호하겠다는 결심으로 간호사가 되었고, 초반부 질곡동 살인사건의 범인 산오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 가인을 지켜주고자 결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 나오는 결심은 모두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준과 해준의 아내 정안은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고자 하지만, 사랑은 그런 결심으로 지킬 수 없는 것이었다. 사랑은 깨졌다. 해준은 서래에게 속수무책으로 함락당한다. 결국, 서래에게 속아 기도수 실족사 사건을 자살로 종결하며, 자신의 직업적 자부심과 품위 모두 잃은 것을 깨닫고 무너진다. 서래는 고통스러워하는 엄마를 위해 간호가 아닌 죽음을 주고, 산오는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으며 가인과의 끈 역시 놓아버린다.

이 영화에서 성공하는 결심은 단 하나밖에 없다. 서래의 ‘헤어질 결심’. 그러나 이것도 쉽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이포에서 남편의 사망 사건으로 또다시 재회하게 된 해준과 서래의 취조실 안에서, 서래의 두 번째 남편의 설명을 듣던 해준은 그런 남자와 왜 결혼했느냐고 묻는다. 이에 서래는 대답한다.

 
“다른 남자하고 헤어질 결심을 하려고 했습니다.”
 

서래는 해준과 헤어질 결심을 하려고 새 남편까지 만들었다. 그러나 그 결심을 이룰 수는 없었다. 해준과 가까워지기 위해 이포로 이사 하고, 피 냄새가 싫다던 해준을 위해 살인 사건 현장에서 피의 흔적을 지우고, 해준이 보고 싶어 해준이 일하는 경찰서에 화재경보기를 울려 대피한 해준의 얼굴을 잠시나마 바라본다. 쉽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결심. 그래서 서래는 이 결심을 이루기 위해, 영영 바다에 자신을 묻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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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말없이 ‘사랑’

 

서래는 자신을 바다에 묻기 전, 해준과의 전화에서 말한다.

 
“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
 

그러나 정작 해준은 자신이 언제 사랑했다고 했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안다. 해준이 서래를 사랑했음을. 그리고 해준이 서래에게 사랑한다고 표현했음을.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해준이 서래와, 서울을 떠날 때 증거가 될 수 있는 휴대폰을 서래에게 건네며 하는 말이다. 붕괴라는 단어를 모르는 서래가 찾은 붕괴의 뜻은, ‘무너지고 깨어짐’. 직업적으로도, 인격적으로도 그 누구보다 고결하고 꼿꼿하던 해준을 무너뜨리고, 또 스스로 무너짐을 인정하게 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일까. 사랑이란 말없이 사랑을 말하는 것.

사랑의 은유는 예로부터 많았다. 나쓰메 소세키가 “I love you”를 “달이 아름답네요.”라고 번역한 것은 길이 회자하는 사랑의 은유다. 이병률 시인의 산문집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에서 “삿포로에 갈까요. 이 말은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입니다.”의 구절도 유명하다.
 
작년 tvN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남자 주인공은 자신의 사랑을 표현할 때 “난 무지개가 좋네.”라고 말했으며,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날 추앙해요.” 대사는 ‘추앙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직설적인 ‘사랑’이라는 말을 오히려 관념적이고 은유적인 말로 돌려 표현하는 것은 ‘사랑해’라는 말이 만연한 사회에서 오히려 사랑의 본질을 극대화한다.

그렇기에 서래는 그것이 사랑을 말한 것이라는 걸 느꼈다. 사랑을 돌려 말하는 은유의 말일 수도, 늘 곧게 서 있는 해준에게는 무너지고 깨어진다는 것 자체가 사랑을 의미해서 직유의 말일수도 있는 그 ‘붕괴’를 오롯이 이해한 것이다. 그래서 그 음성녹음을 계속해서 듣고 또 듣고. 되새김질하며, 이제는 듣지 못하는 사랑에 눈물 흘린다. 그러나 해준은 끝까지 사랑을 모르는 듯하다. 해준은 끝까지 서래를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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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래를 보지 못하는 해준, 해준을 바라보는 서래


 
눈이 멀었다
어느 순간 
햇빛이 강렬히 눈에 들어오는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된다 
잠시 눈이 멀게 되는 것이다

내 사랑도 그렇게 왔다 
그대가 처음 내 눈에 들어온 순간 
저만치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나는 세상이 갑자기 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로 인해 
내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될 줄 
까맣게 몰랐다 

이정하, 눈이 멀었다
 
 
극 중 해준은 계속 눈에 안약을 넣는다. 안개같이 뿌연 인생 속에서도 그 실마리를 명확히 바라보아야 할 때, 꾸준히 안약을 넣는다. 그러나 결국 해준은 아무것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아무리 서래의 집 앞에 잠복하고 서래를 감시해도 서래의 진짜 의중을 바라보지 못했고, 그래서 정확한 사건의 경위를 보지 못했고, 그래서 이포에 이사 온 후 서래의 남편이 죽었을 때도 사건을 이성적으로 보지 못한다. 경찰에서 화재경보기가 울렸을 때도 건물 내부의 서래를 보지 못했고, 호미산에서 헤드라이트를 쓴 서래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결국 삶이 송두리째 흔들린다.

그러나 서래는 해준과 관련한 모든 것을, 명확히 바라본다. 실제 해준이 쫓는 질곡동 살인사건의 범인 홍산오에 대한 마음도 서래가 정확히 읽어낸다.
 
 
“죽음보다 감옥을 더 무서워하는데? 죽을 만큼 좋아한 여자네.
한국에서는, 좋아하는 사람이 결혼했다고, 좋아하기를 중단합니까?“
 
 
서래의 말에서 실마리를 얻어, 해준은 코빼기도 볼 수 없었던 산오를 결국 눈앞에서 마주한다. 그리고 실제로 서래의 말이 맞았다. 산오는 가위로 스스로 목을 찌르기 전, 사랑했던 가인에게 마지막 말을 남긴다.

 
“나 너 때문에 고생 깨나 했지만, 사실 너 아니었으면 내 인생 공허했다.”
 

어쩌면 서래는 자신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산오에게 자신을 투영했던 것이 아닐까? 결말을 알고 영화를 다시 보면, 산오가 서래의 복선처럼 느껴진다. 산오가 마지막에 남긴 말은, 서래가 해준에게 가진 마음과도 다를 바가 없어서.

1부 서울에서는 서래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하고, 2부 이포에서는 서래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해준과 달리, 서래는 언제나 명확하게 해준을 본다. 자신을 미행하는 해준을 잘 알고 있고, 해준의 집 안에 들어가 직접 눈을 감겨주고 잠도 재워준다. 화재경보기를 울린 후에도 해준만을 바라보며, 호미산에서도 어둠 속에서 헤드라이트를 통해 사랑의 정체인 해준만은 또렷이 바라본다.

서래로 인해 눈이 멀어 서래를 볼 수 없게 된 해준. 그리고 해준을 바라보며, 해준을 향한 자신의 감정도, 해준에게 받은 자신의 감정도 모두 명확히 바라보는 서래. 그래서 서래는 자신을 볼 수 없는 해준의 삶을 또다시 송두리째 흔들기 위해 ‘헤어질 결심’을 어떻게 해서든 이루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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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높은 곳에서 시작해 가장 낮은 곳에서 끝나는


 
낮은 곳에 있고 싶었다
낮은 곳이라면 지상의
그 어디라도 좋다

찰랑찰랑 물처럼 고여들 네 사랑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한 방울도 헛되이 
새어나가지 않게 할 수만 있다면

그래, 내가 낮은 곳에 있겠다는 건 
너를 위해 나는 
온전히 비우겠다는 뜻이다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이정하, 낮은 곳으로
 
 
작년 여름, <헤어질 결심>이 개봉되었을 때 본 이후로 수많은 해석 글들이 쏟아졌다. 산과 바다, 안개, 안약, 번역기 등. 일각에서는 해준과 서래가 같은 결의 사람이라는 글들이 많았지만, 나는 아직도 이 둘은 오히려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산오가 서래의 복선이라고 앞서 말했듯이, 서래는 산오와 같은 의미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해준은 서래가 아니었다면 산오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고, 서래의 도움으로 이해한 후에도 눈앞에서 그의 자결을 막지 못해 놓친다. 이는 서래 역시 마찬가지다. 차이가 있다면 서래는 영원한 미결 사건으로 남는다는 것.

서래는 헤어질 결심을 이룰 수 없었다. 결심했지만, 본인 안에서 해준이라는 세계를 파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파괴했다. 그렇게라도 이룬 결심이다. 보통 목숨을 바친다는 수식어는 ‘사랑’에 줄곧 쓰이곤 한다. 그러나 이 목숨을 바치는 사랑이 목숨을 바치는 ‘헤어짐’으로 연결되다니. 서래는 가장 높은 산의 산봉우리에서 사랑을 끊었고, 가장 낮은 바다의 모래 아래에서 사랑을 박제했다.
 
그렇게 박제한 사랑의 결말이 헤어짐이라니, 이런 이야기를 보고 어떻게 마음에서 보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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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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