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정된 이별, 확실한 사랑의 이야기 - 영화 '안녕, 소중한 사람'

너와 내가 선택하는, 사랑과 헤어짐의 이야기
글 입력 2023.02.03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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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내가 삶의 마지막을 어디서 바라볼지 궁금해졌어"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며 귓속말로 속삭였다. 이 작품을 통해 삶과 죽음, 그리고 이별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궁금해졌다. 훗날 엘렌처럼 생의 마지막 순간에 다다르는 과정을 직접 선택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의 방식까지도 정할 수 있을까. 사랑과 헤어짐의 타이밍을 온전히 선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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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안녕, 소중한 사람> 시놉시스

 

엘렌과 마티유는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커플이다.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지만, 엘렌이 희귀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이후 두 사람의 마음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함께하고 있지만 서로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감정들이 각자의 마음에 켜켜이 쌓여가던 중, 엘렌은 자신처럼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미스터’라는 남자의 블로그를 발견한다. 죽음을 앞두고 있지만 스스로를 연민하지 않는 태도, 그리고 그가 살고 있는 노르웨이의 풍광에 매료된 엘렌은 난생처음,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고요하고 장엄한 자연 속에서 온전한 자신을 되찾게 된 엘렌은 마침내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마티유에게 전한다. 하지만 차마 이 사랑을 놓을 수 없는 마티유는 마지막으로 엘렌을 설득하기 위해 노르웨이로 향한다.

 

 

영화 <안녕, 소중한 사람>은 자신이 선택한 방식으로 삶의 끝을 준비하는 엘렌(비키 크립스), 그녀를 사랑하는 마티유(가스파르 울리엘)의 이별의 과정을 그린 드라마다.

 

그들의 이야기를 향유하고 난 후 죽음과 이별을 바라보는 렌즈의 해상도가 높아지는 것을 느꼈다. 막연하고 두려웠던 생의 끝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보았나니. 그것은 마티유를 연기한 가스파르 울리엘이 22년 1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다. 영화에서는 죽음을 앞둔 엘렌을 위해 그녀의 연인인 마티유가 온 힘을 다해 마지막을 함께하기 위해 애썼는데, 현실에서는 마티유를 연기한 가스파르 울리엘이 세상을 떠났다.

 

2시간 넘게 영화에 온전히 푹 빠져 그들의 연기에 감탄하고 감동한 관객으로서, 갑작스럽게 알게 된 1년 전의 비보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안타까웠다. 그의 생전 어느 때보다 활기차게 살아있는 모습을 마주할 수 있던 관객으로서, 더더욱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침잠하는 계기를 갖게 된다.

 

리뷰를 시작하기 전, 가스파르 울리엘의 명복을 빌며 글을 시작한다.

 

 

 

세상에서 가장 주체적인 이별의 드라마 - 영화 <안녕, 소중한 사람>


 

*

본 리뷰는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여기, 자신의 죽음이 코 앞에 다가온 엘렌이 있다. 그녀에게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남편, 마티유가 있다. 남편과 함께 오랜만에 친구들과의 파티에 참석한 그녀는 다른 이들과 다르게 와인 한 잔도 마시지 않고 물만 마시겠다고 한다. 누가 보아도 힘이 축 쳐져 있는 엘렌은, 불편한 공기가 감도는 친구들과의 자리를 서둘러 마무리하고 남편과 밖으로 나온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산소호흡기를 끼고 힘겹게 입을 떼는 엘렌.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는 마티유는 가만히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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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유는 아내의 건강이 심히 악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사랑을 하는 남자다. 그렇기에 그녀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있고 싶어하고, 자신의 개인적인 시간까지 줄여가는 노력을 한다. 반면, 엘렌은 그러한 남편의 노력에 회의감을 느낀다. 자신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의 삶이 변하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엘렌은 그때부터 어쩌면 '선택'의 기로에 다가갔을지 모른다. 죽음 앞에서 자신과의 이별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그리고 사랑하는 자와의 헤어짐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를 말이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선택, 낯선 땅 '노르웨이'로 향하는 여정


 

"나는 꼭 그곳에 가야겠어"

 

그녀는 떠나기로 다짐한다. 남편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떠난다. 자신과 같이 시한부의 인생을 살고 있는 남자 '미스터' 씨의 블로그를 보게 되고 나서 결심한 것이다. 그가 업로드한 노르웨이의 풍경 사진을 통해 그곳에 가고 싶다는 열망이 일었고, 그 열망을 포기하지 않고 실현한다. 

 

기차를 타고 창 밖 풍경을 바라보는 엘렌. 그녀는 그 기찻길에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위한 여행을 떠나본 적이 없음을 자각한다. 엘렌은 살아오는 동안 언제나 외부의 상황을 이유로 혹은 타인을 위한 변명으로 홀로 떠나는 것을 도전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그녀가 생의 마지막을 앞두고 노르웨이로 떠나는 모습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을 연상케 한다. 아픈 몸을 이끌고 남편도 없이 혼자 여정을 떠나는 것이 염려스럽지만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이 선택을 어찌 말릴 수 있으랴. 그녀의 첫 번째 선택에 열렬한 박수갈채를 보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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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길을 지나 엘렌이 도착한 곳은 바로 미스터 씨의 집. 울창한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아름다운 곳이다. 산 앞에는 잔잔한 강이 흐르는 모습이 보인다. 흡사 그림같은 풍경을 자랑한다.

 

그곳에서는 지금까지 생각할 수도, 꿈꿀 수도 없던 일들이 벌어진다. 그녀가 간 노르웨이의 지역은 백야의 땅이다. 밤이 오지 않는, 영원히 해가 떠 있는 곳이다. 엘렌은 그러한 낯선 땅에서 끝을 바라보는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처음 가본 곳에서 마주하는 역경과 고난은 상당했다. 절대 해가 지지 않는 곳에서 깊은 잠을 청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고, 미스터 씨의 집에는 그 흔한 와이파이도 없어 먼 곳의 산까지 올라가 와이파이 존으로 향해야 했다. 폐 질환이 있는 탓에 가까운 산책에 가는 것마저도 크나큰 고통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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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놀라운 사실이 있다. 그녀는 자신의 몸으로 인해 고통스러웠지만, 동시에 스스로의 몸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된다. 그녀는 살아있는 '지금, 여기'의 자신의 몸에 대해 깊은 사랑을 깨닫는다.

 

이후 그녀는 노르웨이에 가는 주체적인 선택에 이어, 또 한번의 선택을 내린다. 남편이 한줄기 희망이라 여겼던 폐 이식 수술을 받지 않고, 엘렌은 온전히 자신의 몸으로 살다가 바람과 햇빛, 강물이 있는 이곳 노르웨이에서 삶을 마무리하기로 결심한다. 타인에게 받은 폐로 삶의 마지막을 보내지 않고 고통스럽더라도 단 하나뿐인 자신의 몸으로 이 생을 떠나겠다고 다짐한다.

 

엘렌이 낯선 땅에서 마주하였던 극심한 몸의 고통과 생의 조각을 감당할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어두컴컴한 병실이 아닌 백야의 땅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살아있음'을 느끼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백야의 땅은 인간의 삶과는 거리가 있는 곳이다. 해가 지지 않기에 밤이 되어도 어두워지지 않는다. 어쩌면 엘렌은 오히려 낮과 밤이 없는 이곳에서 자신의 죽음에 초연해졌을 것이다. 이곳에서 생이 끝나더라도 영원히 지지 않는 해처럼 그녀의 존재 이유도 영원을 기약하기에 충분하다고 깨달았을 것이다.

 

 

 

우리가 선택하는 이별의 방식 - 엘렌과 마티유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사랑


 

그 후 마티유는 엘렌과 함께하기 위해 노르웨이로 왔다. 엘렌의 지병이 더 악화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온 것이다.


마티유와 엘렌은 이 낯선 땅에서 온전히 교감했다. 엘렌은 남편이 오자 지금까지 쉽게 드러내지 않았던 두려움을 내비쳤다. 참고 참았던 울분을 터뜨렸다. 가까이 다가와서 모든 순간을 함께하려는 남편과 달리 그녀의 태도는 달랐다. 자신이 이 세상에 없어지면 마티유가 곧 다른 사람과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을 거라며, 아픈 자신으로 인해 그런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너무도 싫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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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들의 다툼은 서로를 지극히 사랑해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언제 싸웠냐는 듯 다시 부둥켜 안기 마련이다. 두 남녀는 아무런 옷가지도 걸치지 않은 채 강물로 뛰어들어 수영을 했다. 마치 삶의 염증을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아이들처럼 말이다. 수건으로 몸을 두른 채 가까이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그들이 사랑스러웠다. 그 순간에는 죽음도, 이별도, 헤어짐도 그들의 머릿속에는 새하얗게 지워진 것만 같았다. 오로지 서로의 얼굴, 온기, 호흡만이 온 감각의 파도로 다가올 뿐이다.

 

엘렌은 마티유에게 자신의 선택을 담담히 전한다. 자신의 몸으로 살다가 이곳에서 떠나고 싶다고. 마티유는 고민 끝에 그녀의 결정을 존중해 주었다. 마티유는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지만, 엘렌과 마치 다음에 또 만날 것처럼 작별했다. 몇 번을 끌어안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다 품에서 떨어지는 그들. 배를 타고 떠나는 마티유. 그 모습을 글썽이며 바라보는 엘렌이 있다. 영화 <안녕, 소중한 사람>은 그렇게 마무리된다.

 

그들은 이별의 방식을 함께 선택했다. 엘렌의 용기가 주체적인 이별의 과정을 시작했고, 마티유의 존중이 그 과정을 더 빛나게 했다.

 

예정된 이별은 그들에게 확실히 더 사랑하는 순간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머물러 있는 순간을 놀랍도록 더 아름답게 향유하는 계기가 되었다. 엘렌이 홀로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을 때부터 모든 것이 바뀌어 있었다. 하나뿐인 삶을 대하는 주인 됨의 태도가 비로소 시작됐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자신의 몸을 느끼고, 자연을 음미하고, 생과 이별의 과정을 만들어 나갔다. 이에 이끌려 마티유도 하나뿐인 엘렌의 존재를 더 깊이, 온전히 사랑할 수 있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사랑을 온 마음과 몸으로 함께 나누었다.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사람 : '미스터'씨의 존재 이유


 

엘렌은 죽음 앞에서 자신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내렸다. 그녀가 용기 있는 선택을 한 배경에는 미스터 씨가 있었다.

 

대부분은 자신만을 위한 선택을 이기적인 것으로 판단한다. 하지만 미스터 씨는 엘렌에게 그것이 진정 옳은 것인지에 대한 물음표를 선물했다. 죽을 때마저도 남을 위한 선택으로 삶을 마감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질문의 싹을 제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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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영화에서 '미스터' 씨가 꼭 필요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엘렌에게는 죽음에 대해 담대한 사람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래전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온몸으로 목격한 미스터 씨는 이 작품에서 필연적인 존재였다.

 

그는 시한부 인생을 살지만 죽음 그 자체를 인정하고 생의 이유를 긍정할 수 있는 사람이다. 죽음 앞에 두려움과 무력감 사이를 오가는 엘렌에게 미스터 씨는 강물처럼 깊고 넓은 사람이 되었다.

 

미스터 씨와 함께하며 엘렌은 다른 삶의 태도를 누릴 수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노르웨이의 자연에서, 끝을 바라보고 있는 담대한 노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삶의 지평을 넓혔다.

 

 

 

삶에 대해 놀랄만큼 긍정적인 메세지 :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프랑스 철학자 샤르트르는 말했다. "인간은 세상에 던져진 존재다.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며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흔히 대중영화라 불리는 작품들과 달리 <안녕, 소중한 사람>은 '순간'의 미학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인물들의 표정과 몸짓은 모든 것이 놀라울 만큼 잔잔했고 느리게 보였다. 머리칼을 쓸어 넘기는 손길, 강물에 둥둥 떠있는 엘린의 몸, 서로의 존재를 온 힘을 다해 끌어안는 두 사람의 몸짓. 역동적인 사랑 또는 갈등의 순간마저도 그들이 표현하는 감정과 호흡에 이끌려 모든 것이 '순간의 슬로모션'처럼 보였다. 존재하는 인간, 실존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영화 <안녕, 소중한 사람>을 통해 엘렌의 모습에서 진정한 실존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의 시작은 선택할 수 없었으나 끝을 향한 이야기만은 주체적으로 만들어간 그녀. 자신의 삶을 끝맺을 때에도 사랑하는 자와 이별하는 순간에도 '선택'할 수 있는 그 용기를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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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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