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진 모든 것을 잃으러 떠나는 운전 길 [영화]

영화 <로크>(LOCKE, 2013)
글 입력 2023.01.27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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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가 담는 영화의 등장인물은 단 한 명이다. 나머지 인물은 주인공의 전화 너머에서 목소리로만 등장할 뿐, 얼굴은 나오지 않는다.

 

공간적 배경 또한 주인공의 자동차 내부와 그 주변을 벗어나지 않고 타임라인도 거의 편집하지 않았다. 주연 배우 톰 하디가 처음부터 끝까지 극을 끌고 나가는 독특한 연출을 가진 영화 <로크>를 소개한다.

 

 

 

영화 <로크>(LOCKE,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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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정의 든든한 가장이자 부하와 상사의 신임을 동시에 받는 유능한 건설 현장 감독 ‘로크’. 그는 오늘 밤에는 가족들과 같이 축구 경기를 봐야 하고, 내일 아침에는 회사의 명예가 달렸다고 할 정도로 거대한 규모의 공사가 있다.

 

그러나 그는 두 가지를 모두 내팽개치고 먼 병원을 향한다. 몇 달 전 출장지에서 술김에 하룻밤을 보낸 여자가 임신해버렸고, 그 아이가 오늘 밤 갑작스레 태어나기 때문이다. 로크는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잃을 운전 길을 떠난다.

 

 

 

오른 방향? 옳은 방향?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 로크는 왼쪽 방향 지시등을 켠 채로 신호를 대기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신호가 바뀌었을 때, 그는 오른쪽을 선택한다. 그러고는 아기를 가진 여자에게 전화를 걸어 병원으로 가겠다고 말한다. 집으로 가려다가 마지막 순간에 아기에게 가기로 마음을 바꿔 먹은 것일 테다.


오른쪽이 옳은 쪽을 뜻하는 것은 흔한 상징이다. 영어로는 둘 다 아예 ‘right’라는 같은 단어이기도 하다. 로크는 자기가 옳은 선택을 했다고 믿으며 곧 태어날 아기에게로 향한다. 자신의 가정과 직장은 버려두고. 


그의 행동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가진 것을 다 포기하고 스스로 구렁텅이로 차를 몰아가는데 그는 자기 행동을 망설이거나 후회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그저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지 않는 것’이 유일한 기준인 양 움직인다.

 

로크가 그렇게 생각하고 그런 결정을 내리는 이유는 그의 어린 시절과 그의 아버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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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묘사되지는 않지만, 로크의 아버지는 아버지 노릇을 한 번도 하지 않았고 그 사실은 로크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준 듯하다. 아버지처럼 무책임한 인간이 되기 싫은 그는 책임지는 것에 극도로 집착한다.

 

그와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 모든 이들이 그를 극찬하며, 이미 해고되었음에도 내일 있을 공사를 정상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런 로크를 보고 있자면 그 유능함에 감탄이 나오면서도, 안쓰러움과 약간의 한심함에서 기인하는 탄식이 섞여 든다.


로크의 상태를 단순히 책임감이 강한 사람으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숫자를 정확하게 말하는 데 집착하는 습관에서도 그의 강박적인 면이 드러난다. 하지만 그보다 심각한 문제는 그가 아버지의 환영을 본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동차 뒷좌석을 룸미러로 돌아보며 아버지의 환영에게 반복해 선언한다. 나는 당신과 다른 사람이라고. 당신과는 다른 길을 간다고. 


곧 태어날 자신의 아기에게 아버지로서 사랑을 주러 간다기보다는 그저 자기 자신에게 본인은 아버지와 다르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어 의무적으로 움직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 두 행동이 겉으로 보기에는 차이가 없을지라도 본인이 그 차이를 깨닫는다면 걷잡을 수 없는 허무함에 빠질지도 모르겠다.

 

 

 

로크의 3순위: 가족



당연히 외도하지 않는 게 정답이지만 그것은 영화 속 시점에서 이미 일어난 일이니 제쳐두고 이야기한다. 


로크가 영화에서 책임져야 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새로 태어나는 아기, 지금의 가정, 그리고 직장. 보편적인 기준이라면 가정이 가장 우선시되어야 할 텐데 어쩐 일인지 그는 가정을 제일 뒷순위에 둔다. 처음에는 새로 태어나는 아기와 자신의 처지가 겹쳐 보여 시야가 좁아진 것으로 생각했으나, 직장의 일은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걸 보면 애초에 가정이 가진 경쟁력이 그리 크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최소한 그에게는 말이다.


그의 아내 또한 이 점에서 또 한 번 분노한다. 정신없고 절망적인 와중에도 그가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내는 그에게 질렸다는 듯이 전화를 끊어버린다. 새로 태어날 아기보다도, 그리고 직장보다도 가정이 뒤로 밀려난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로크는 집안 바닥에 콘크리트를 흘리고 다녀 아내가 청소하기 힘들게 했다고 한다. 강박과 결벽은 다른 것이고, 장소에 따라 태도가 변하는 것도 흔한 일이라지만, 직장에서는 그렇게 강박적이고 완벽했던 로크가 집에서는 다른 모습을 취한다는 사실은 꽤 흥미롭다. 로크는 자신의 가정만큼은 책임질 존재보다도 편안한 존재로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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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상황에서도 차분함을 유지하던 로크를 끝내 눈물 흘리게 하는 것은 이불 속에서 엄마 몰래 전화를 걸어온 아들의 목소리다. 로크가 함께 보지 못한 축구 경기 내용을 알려주며 평소에는 실력이 별로였던 선수가 오늘따라 기가 막힌 골을 만들어냈다고 전해준다. 


영화 내내 로크는 부하 직원에게서, 상사에게서, 그리고 아내에게서 ‘오늘 당신은 전혀 당신답지 않다’는 말을 듣는다. 로크는 평소답지 않게 무작정 새로 태어날 아기에게로 향한다. 아들이 지켜본 경기의 축구 선수도 평소답지 않은 모습으로 무작정 골대를 향해 공을 몰아갔다.

 

그러나 둘은 전혀 다른 결과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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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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