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일상 속 도피처가 필요하다면 [공간]

꽤 괜찮은 현실 도피처, 남양주 아유 스페이스
글 입력 2023.01.29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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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론가 도망치고 싶다. 만남이 버거워진다. 반복되는 하루 일과에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며, 그것들이 몽땅 숙제같이 느껴진다. 명확한 이유도 없이 체한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 한숨을 내쉬어본다.

 

나의 느긋한 삶의 속도를 기다려주지 않는 현대사회의 조급한 시계를 부수는 상상을 한다. 뿅 하고 사라져버리면 어떨까 생각한다. 의무와 부담감에서 보다 더 자유로워지고 싶다. (물론 현재 백수인데 대체 여기서 어떻게 더 자유로워지고 싶은 건지는 나도 의문이다)

 

백수도 번아웃이 오나.

 

이런 증상이 쌓이고 쌓여, 내 상태가 똥이란 것을 인지하게 될 즈음 든 의문이었다.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뭐 대단한 거 했다고 번아웃이 오니. 싶었지만 이건 필히 번아웃 증상이다. 그냥 빠르게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개복치가 맞고, 요즘 질 좋은 휴식이 간절하다는 사실을.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천국은 없다지만, 역시 현대사회를 사는 개복치는 간헐적인 현실 도피가 필요한 법이다. 바쁜 세상 속 반복되는 일상은 사색할 틈을 (정확히 말하면 멍 때릴 틈을) 잘 내주지 않으니 별 수 있나. 비일상의 공간을 찾아 잠시라도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수밖에.

 

번아웃을 겪는 나와 비슷한 개복치들을 위해 이번에 다녀온 꽤 괜찮은 현실 도피처, 남양주의 아유 스페이스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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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유 스페이스 인스타그램

 

 

건축과 조경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 내가 봐도 이곳은 심상치 않았다.

 

한가로운 남양주에 새롭게 자리한 아유 스페이스(AYU SPACE)는 2022년 11월 개관한 3500평에 달하는 따끈한 신상 핫플레이스다. 지난 40년간 개인의 별장이었던 공간이 조병수 건축가의 손을 거쳐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라고.

 

물관, 흙관, 불관, 바람관으로 구성되어 있는 다채로운 아유 스페이스에서 나는 이번, 베이커리 카페를 운영 중인 ‘바람관’을 들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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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유 스페이스 인스타그램


 

바람관은 쉽게 말해 도넛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실내에 들어서 자리를 잡으려고 빙 돌다 보면 결국 왔던 자리로 이어지는 구조다. 원형 공간의 연결성이 부드럽고 편안한 심상을 선사했다.


대개 카페에 들어서면 안정감을 주는 ‘명당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손님들은 눈치 싸움을 한다. 한데 이곳은 그럴 필요가 없다. 구석이 존재하지도 않을뿐더러, 대부분의 자리가 안정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모든 고객이 평등하게 콘크리트 건물 한가운데 놓인 중정을 바라보는 구조라 그런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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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정은 ‘중앙의 정원’을 의미한다. 개인적으로 중정이 이 공간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중정에 자리 잡은 바위의 정체는 오랜 세월의 화강석. 화강석의 차가운 온도감과 잔잔하게 거친 표면이 아유 스페이스의 절제되고 묵직한 분위기를 힘 있게 조성하는 데 일조하더라. 조경석으로써 바위의 아름다움을 처음 체감한 순간이었다.

 

내가 들른 날은 중정과 화강석에 눈이 쌓여 있었다. 굳건한 바위와 금세 녹아버리는 눈의 대조적인 특성의 조화가 묘하게 어우러지는 겨울의 중정을 보고 있자니, 사계절 중정의 경관이 어떨지도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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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밖으로 나오면 탁 트인 북한강 전경이 펼쳐진다. 어수선한 나의 마음과는 달리 태평하게 찰랑거리는 강을 따라 여유를 품어보았다. 천천히 산책을 하다 멈춰 서 눈을 꼭 감고 가슴이 부풀어 오를 때까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잡다한 생각과 닥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은 모두 공중으로 흩어 날려버리고, 현재를 감각하는 것에 충실하려 했다.

 

물은 평화롭고, 햇빛은 해사하며, 신발 아래 누런빛의 잔디는 폭신하기만 한 자연의 무해함을 몽롱하게 몸 안 가득 머금으며 살그머니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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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발견한 곳, 아유 스페이스. 미니멀하면서 독특한 건축물과 고요하고 묵묵한 자연의 느슨한 만남은 얽히고설킨 내 머릿속을 비워주기에 충분했다. 

 

밀린 일들이 산더미라 멀리 여행을 가기는 상황이 여의치 않고, 그렇다고 일상의 공간에 계속 머무르기에는 숨통이 막히는 이들에게 서울 근교에 자리한 이 복합문화공간은 꽤 괜찮은 도피처가 되어줄 것 같다. 

 

햇볕이 따뜻한 낮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카페의 벽면이 통유리로 감싸져 중정뿐 아니라 북한강 등 주변 자연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며 사색을 즐기기엔 차분하지만 밝은 낮이 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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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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