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제인 오스틴, 편지로 봄의 태풍을 일으키다 [도서]

제인 오스틴, 19세기 영국에서 보낸 편지
글 입력 2023.01.25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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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긴 시간이 흐르고 그 시간의 회오리 속에서 세상이 변화의 바람으로 물들어도 불변의 진리로 존재하는 것이 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폭풍우 같은 속도로 변화한 세상이지만, 그러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도 한결같음을 유지하는 존재. 물론 수수께끼와 같은 이 물음에 대한 각자의 대답은 다를 것이지만 적어도 내 답은 ‘진심’으로 적어내려고 한다.

 

세상도, 자연도, 사람과 사람의 마음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지만 ‘진심’은 시간의 위력 속에서도 꿋꿋하게 생존한다. 진실된 마음은 시간의 경계에 영향을 받지 않으며 그 순간의 가치로 경계를 부수는 순수한 파괴력을 가졌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진심’을 떠올리면 잠시 얼어붙었던 마음 속의 겨울도 봄의 생기로 환해지는게 아닐까.

 

학창시절 나는 편지를 즐겨 썼다. 초등학생 시절 학년을 거듭할 때마다 방학이 되면 담임 선생님께 꼭 편지를 부쳐 안부를 묻곤 했다. 편지쓰기가 방학과제도 아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어떤 과제보다 열정있게, 재미있게 편지를 쓴 것 같다.

 

어린 시절의 나는 배움과 추억으로 꽉 찼던 수업이 잠시 휴식기간을 가지는 동안 담임 선생님을 뵈지 못해 아쉬움이 들었다. 내 소식을 전하며 선생님의 안부를 묻는것도 설레는 일이었는데, 정성들여 쓴 예쁜 글씨에 마음 한올 한올 담고 편지봉투에 넣어 우표를 붙이는 일은 한편의 창작과정과도 같았다.

 

그렇게 작은 봉투 하나를 우체통에 집어넣고 마침내 상대방이 편지를 받은 소식을 내게 오는 답장으로 확인하는 기쁨. 편지에는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 그 마음을 글이라는 도구로 표현하는 용기, 답장을 기다리는 설렘이 담겨있다.

 

도입부에 말한 진심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포장지는 편지라고 늘 생각해왔기에 지금도 나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편지 쓰는 것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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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제인 오스틴, 19세기 영국에서 보낸 편지>를 보자마자 꼭 읽고 싶었던 이유도 편지가 내게 주는 몽글몽글한 감성이 크게 한몫을 했다. <오만과 편견>, <에마>, <이성과 감성> 등 200년이 지난 지금도 전 세계를 매료시키는 소설의 저자가 그녀의 생애 동안 직접 쓴 편지라니 흥미롭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은 많이 들어봤지만 정작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궁금증은 해소되지 않은 상태였던 와중, 이 책을 통해 72통의 편지를 읽으며 당대의 영국과 그녀의 삶을 여행할 수 있었던 것은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 책은 제인 오스틴 일생의 궤적에 따라 연대기순으로 총 여섯부분으로 나뉘어져있고, 대부분의 편지는 그녀와 가장 돈독했던 유일한 자매인 커샌드라 언니에게 보낸 것이었다.

 

그녀는 언니에게 자신의 일상과 생각을 공유하고 편지를 통해 언니의 이야기를 전해들었는데 한 통의 편지 속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제 난 편지 쓰기의 진정한 묘미가 뭔지 알게 됐어. 그건 늘 상대에게 말로 하던 걸 고스란히 종이에 옮기는 거야. 그러니까 난 이 편지에서 최대한 빨리 언니에게 이야기하는 중인 거지…

 

- 72p

 

 

편지쓰기의 진정한 묘미. 편지를 통해 언니에게 최대한 빨리 이야기한다는 제인 오스틴의 재치있는 표현 속에서 그녀의 언니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어서 내 마음도 따뜻해졌다. 매일 붙어있던 소중한 사람이 환경의 변화로 멀어지게 되면 우리의 마음을 가장 먼저 채우게 되는 것이 공허함일 것이다.

 

소중한 사람의 부재. 익숙함이 사라진 낯선 환경. 그 공허함을 달래주는 것은 아마도 그리움일 것이다. 사람의 감정은 변화와 성장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항상 느끼는데, 영원할 것 같은 그리움도 차곡차곡 쌓이면 단단해져 더 큰 사랑이 될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물리적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더욱 긴밀한 유대와 신뢰를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그리움은 어느새 사랑으로 피어나게 된다. 어떤 것도 흔들 수 없는 마음의 고결함은 생각보다 강인한 힘을 지녔다. 제인 오스틴이 그녀의 언니에게 보내는 편지들을 읽는 동안 내 마음속엔 나의 귀여운 동생이 찾아왔다.

 

아직도 나는 우리동생을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보물이라고 장난칠 때가 많은데, 시간이 지나 동생과 내가 결혼을 하고 서로의 가정을 이루게 되면 지금의 물리적 거리는 많이 멀어질 것을 생각하니 슬펐다. 그리움도 사랑이라고 믿는 나지만 정작 동생과 나의 이야기에 비추어보면 그리움이란 한동안의 슬픔과 떠나 보내기 어려운 추억 같은 것이다. 한없이 내마음속 고요를 감정의 파동으로 일렁이게 하는.

 

제인이 여덟 남매 중 여섯째 프랭크 오빠한테 보낸 편지도 인상깊었다. 편지를 적을 당시에는 그녀의 작품들이 그녀의 일상이었고 저작권의 가치에 대해 질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현시대에 그녀의 작품들이 세계에서 사랑받고 있는 것을 떠올리면 한순간에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이 든다.

 

그런 이유에서 한 편의 소설은 예술의 혼이 가득한 역사서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성과 감성>이 다 팔렸다는 소리를 들으면 기쁘겠지. 덕분에 난 저작권 외에 140파운드를 벌었어. 저작권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모르지만. 그래서 지금 250파운드를 위해 글을 쓰고 더 많은 돈을 벌고 싶다고 생각해. <오만과 편견>의 명성으로 지금 쓰고 있는 책 역시 잘 팔리기를 바라지만 재미는 그 작품에 비해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아. 

 

그건 그렇고 글 속에 코끼리를 언급할 건데 반대할거야? 오빠가 예전에 타던 배 두세 척에 대해서는? 이미 썼지만 오빠가 화를 낼 정도만큼 많은 분량은 아니야. 그냥 언급만 했어.

 

- 178p

 

 

제인이 셋째 오빠의 딸, 그녀의 조카 패니 나이트에게 쓴 편지에서는 단순한 마음의 전달을 넘어 인생에서 중요한 교훈이 담겨있어서 놀라기도 했다. 조카의 결혼에 대해 조언을 해주는 부분인데 진심을 이렇게 강력하게 피력할 수 있다는 사실과 삶의 중요한 결정에 대한 우리의 역할, 과거와 왜곡되지 않은 자아의 공존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던 부분이었다.

 

 

네 사랑이 나에게 가장 큰 기쁨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내 의견에 좌우되도록 결코 내버려 둘 수는 없거든. 그런 중요한 부분에 있어서는 네 감정, 누구도 아닌 너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해.

 

과거의 감정을 되살릴 수 있고 왜곡되지 않은 자아가 앞으로도 계속해 나갈 수 있다면 기쁘겠지만 난 그럴 거라 기대하지 않고 그런 마음이 없는 상태로 네가 속박되길 바라지 않아.

 

변덕이 생기는 건 확실히 불쾌한 일이야. 과거에 착각한 것에 대한 벌을 받고 싶으면 이게 그거야. 사랑 없이 한 사람에게 속박되고 다른 이를 좋아하는 것만큼 절망적인 일은 어디에도 없어. 그건 네가 받아야 할 벌이 아니야…


- 217p

 


위대한 작가, 제인 오스틴의 수많은 편지가 한권의 책으로 탄생했다. <제인 오스틴, 19세기 영국에서 보낸 편지>는 19세기 영국, 그녀의 삶과 가치관이 살아 숨쉬고 있으며 그 속에 담긴 많은 이야기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간의 가치를 거스른 한 통의 소중한 편지로 작용한다.

 

그녀의 진심은 나비의 날갯짓처럼 모여 따스한 봄의 태풍을 일으키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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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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