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런웨이와 이 시대 예술의 상관관계 [패션]

글 입력 2023.01.22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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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적 모델에 관한 쇼를 많이 봤다. 'America's Next Top Model'이라던지 '도전슈퍼모델코리아'(도수코)라던지. 이런 어렸을적 기억때문인지 언제부턴가 나는 런웨이를 감상하는 비밀스러운 취향이 생겼다. 사람의 취향이란게, 꽤나 일관성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얼마전에 친구와 이야기하는 도중, 초딩때 교회차를 기다리며 섹스앤더시티를 봤던 것이 기억났다 -써 놓고 보니 정말 재밌는 문장이다. 하여간에 요즘 초딩들이 이상한 웹드라마를 보고 뭐가될까 가벼운 걱정을 하던 내가 섹스앤더시티 졸업생이였다니-. 섹스앤더시티를 떠올리자면 생각나는 장면도 이를테면 그런것이다. 금발의 주인공이 또각또각 스스로를 '보여지는' 무언가로 상정한채,-머리는 맵시 있게 휘날리고-그 사실을 최대한 즐기며 거리를 걷는 모습. 뭐 런웨이와 비슷한것 같기도.

 

길쭉길쭉한 모델들, 눈을 즐겁게하는 옷들-특히 몇 의상들은 잠깐 혀를 내두를만큼 이국적으로 아름답거나 우아하면서 정교하다-, 런웨이가 진행되는 장소, 음악 같은 요소들이 다 어우러져서 런웨이는 부정할 수 없이 하나의 유희가 된다. 나비가 꽃에 홀리듯 인간이 예쁘고 아름다운 것에 끌이는 건 특히나 현대사회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니. 아래에서는 개인적으로 좋아라하는 모델들의 워킹을 가져와봤다.

 

 

[Sora Choi, 최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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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sace S/S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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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nchy S/S 2022]

 

 

[Yasmin Wijnaldum]


Yasmin Wijnaldum Moschino FW 2020.jpg

[Moschino FW 2020]

 

 

Yasmin wijnaldum brandon maxwell 2020 spring.jpg

[Brandon Maxwell S/S 2020]

 

 

[Leon D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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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ison Margiela S/S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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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lentino F/W 2020]

 


욕망이 오르막길처럼 산을 오른다면 런웨이는 그 정상 꼭대기같이 보인다. 모든것이 스스로를 완벽하다며 드러낸다. 옷도, 머리도, 메이크업도 그 장소도. 아, 현대사회의 나비같은 존재! 런웨이는 욕망을 최대로 고취시키는 공간이다. 이 욕망은 참여욕망이기도 하고 소비욕망이기도 하지만 더 큰 차원에서, 매끄럽게 아름답고, 요상하게 새로워서 셔터를 누르게 하는, 그 자체로 끝이 없는 미학, 그 미학을 추구하는 욕망이다. 이 욕망은 온 정신을 앗아가는 시각적, 청각적 자극과 리듬을 같이 같이 한다. 모델의 워킹과 비트가 하나가 되는 것처럼. 

 

그런데 런웨이 자체를 하나의 예술행위로 볼 수도 있을까. 아름다움, 놀라움, 새로움, 의미창출의 향연인 런웨이를 예술로 보지 않는 것이 직관적으로 더 힘든 일일수 있겠다만, 그 자체를 예술로 치환하고 싶지는 않은 마음도 한켠 있다. 예술이 숭고할 필요는 없지만 예술에 거는 또 다른 기대가 커서, 또 런웨이는 런웨이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배후의 거대한 패션산업 앞에 서있는 좁은 길이라서. 런웨이는 감각의 제국 중 그 심장, 또 다른한편으로는 아주 고급스러운, 그래서 더이상 "저급한" '홍보' 따위로 보이지 않는 브랜드 홍보의 현장. 

 

얼마전 여성 아티스트들을 인터뷰한 인터뷰집에서 미우치아 프라다 부분을 읽었다. 새삼 패션 디자이너가 예술가와 디자이너 사이 모호한 경계에 위치해 있음을 알게되었다. 창의적이고 본인을 표현하는 방편이되 궁극적으로는 팔기 위함이라니, 모든 패션 디자이너가 이렇게 생각한다고 단정지을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별안간 놀람으로 다가왔다. 명품 브랜드들의 '거리두기'에 세뇌가 됐었었나, 브랜드나 디자이너는 마치 판매의 목적은 신경쓰지도 않고, 아름다움 같은 것에 대한 광기적인 추구나 숭고함을 가지고 있을거라는 생각을 무의식에 품고 있었던것 같다. 명품 브랜드들은 너무나도 매끄럽게 '거리두기'에 성공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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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예술가의 초상']

 

 

날이 갈수록 시각예술에 대한 수요는 확실히 증가하는 것 같은데 그 수요중에 관람적 혹은 예술적 수요보다 소비적 수요가 차지하는 비중이 극적으로 커지는 것처럼 보여 슬픈 마음이다. 경매되고 재태크로 사용되는 미술품이나 포토존으로 설치되는 전시들이나 다 상품에 가까워 보인다. 발터 벤야민은 예술이 주술의 기능을 넘어 전시의 기능으로 옮겨왔다고 했는데 최소한 예술품은 요즘 사회에서 조금의 전시, 그리고 보관과 결합한 (안전하고 본새나는) 자본 축적의 기능으로 다시 한번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는건 아닌지. 이런 말을 하며 나는 달과 6펜스에서 서머싯 몸이 말하는, 시시각각 변하는 미래를 품어안지 못하고 과거만을 유희하는 사람이 된것일까..조금 돌아보지만. 그래도 나는 내 재미를 위해 (인기없는) 2행 압운의 교훈시를 적으리라! 


자본주의사회에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새로움(newness)'을 만들고 거리두기등을 통하여 이런 새로움을 영영 낯선것으로 유지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인것이나 판매와 고가치 부과라는 노골적인 의도가 어딘가 모든것을 우스꽝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런웨이나 옷, 패션소비주의만을 탐욕스럽게 몰고갈수는 없다. 우리가 소비하는 모든 것이 동일한 선상에서 문제가 된다. 소비주의의 기저에는 현대인의 돈에 대한 사랑과 세계관이 있기에 삶의 많은 것들이 동일한 도마위에 오를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이 돈을 점점 더 좋아하게 되는 것 같다. 이는 그만큼 돈의 유용성, 즉 돈으로 할수 있고 살 수 있는것들이 증가했다는 소리다. 자본주의가 적극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합리화되는것은 많은 기술발전과 상품 생산을 통해서인듯하다. 결국 돈이 좋은건 소비가 좋아서니까. 기술, 시각적 유희와 접목하여 소비할 거리가 더 더 많아지는 이상 돈도 더더 좋아질 수 밖에 없다.존 버거는 광고의 문제는 소비가 행복을 약속하는 것처럼 우리를 기만하는 점이라고 한다-요즘 세대는 이 사실 조차 그대로 긍정하는 것 같지만-. 명백히 우리의 하위구조는 경제, 경제, 그리고 또 경제다).

 

패션계에 새로운 바람도 분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위의 책에서 각 나라의 '정치적 옳음' (Political Correctness)을 고려하며 옷을 만드는 것이 큰 재미라고 했는데, 스스로가 정치적 옳음을 자처하는 브랜드도 생겨났다. 발렌시아가는 작년 우크라이나 난민을 지지하는 런웨이를 기획했다. 발렌시아가의 디자이너는 조지아 출신으로 난민의 경험이 있는 뎀나. 그는 일정금액 이상을 기부하면 우크라이나 난민을 지지하는 표시가 있는 티셔츠를 판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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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enciaga, winter, 2022]

  

 

그런데 패션계가 넘어야할 궁극적 산이 있다. 그건 다름 아닌 우리의 터전이자 영영 넘어서는 안될 지구. 최근 한 다큐멘터리를 잠깐 보았는데 이 다큐멘터리는 소위 말하는 선진국에서 소비된 옷들이 어디로 가게되는지, 그 경로를 다루었다. 기억을 더듬자면 끝은 아프리카같은 개발도상국들. 아프리카에서도 폐기시설과 기술의 부족으로 어쩔 줄 모르는 양의 옷들은 그냥 무더기로 쌓아두는데 그 위를 올라탄 소들이 질겅질겅 옷에서 나오는 합성섬유로 배를 때운다. 다시 말해본다. 소가-우리의 옷을-먹고 있다. 한국은 인구대비 버려지는 옷들이 아주 많은 편이다. 흔히 잠깐 입고 버려지고, 또 다시 입히는 것을 목표로 하는 브랜드들을 패스트 패션 브랜드라고 부르는데, 한국에서는 패스트 패션 브랜드가 따로 있는게 아니라, 부풀려말하자면 나라 전체가 패스트 패션 문화 그 자체를 소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 또한 반성하게 된 부분이 상당하고.

 

모든 것이 그렇듯 패션업계가 가지는 다층적인 요소가 있다. 말그대로 산업적 측면도 있고, 시각적 문화와 예술로서의 측면도 있고, 정치도 있고, 정신심리도 있고, 단순한 유희도 있을 것이고. 그리고 아무리 정치적으로도 좋아보여도 이 모든 좋음을 무화시키는 환경문제. 모순이 첨예하게 대립하는데 뭣보다 환경도 고려해야 하고, 소비는 계속하고 싶은 현대사회의 가치 대립이 근본적이겠다. 이 대립 사이에 끼고서 모순적이지 않은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백남준은 예술품은 결국에는 쓰레기통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한다. 기꺼이 공들여 만들어 놓은 것을 부서트리기까지가 정말 끝이라면, 오늘날의 준예술은 버려져도 버려질 수 없는 셈이다.
 
예쁘고 신기한 옷들과 런웨이를 보는 것은 여전히, 부정할 수 없이 내 유희 중 하나이다. 그래도 진짜 멋이 런웨이 자체에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켄드릭 라마는 루이비통 패션쇼에서 'Take all that designer bullshit off"라고 랩한다. 런웨이나 브랜드 같은 것, 보여주기식의 소비가 모든 것이 되는 순간 멋은 유령처럼 사라진다. 지구에서의 자취는 고약해지기 마련이고. 의식주 각각이 너무나도 비대해진 이 시대, 덜어내기의 미학과 날것의 예술이 보고싶다.
 
 
  
 
[남영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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