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끝나지 않는 방황 속에서 – 연극 ‘라이더’

글 입력 2023.01.18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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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크 위의 불안한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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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는 많은 이야기에서 청춘의 상징이다. 도로를 위태롭게 질주하는 오토바이, 그 위에 올라타 도시를 가로지르는 일은 청춘에게만 허락된 자유와 불안이다. 청춘이 그토록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그 시기가 지극히 짧은 데다가 그때의 방황이 머지않아 끝난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2023년의 청춘도 그런 모습일까?


극단 비밀기지의 연극 <라이더>는 방황하는 청춘과, 방황할 나이가 지났지만 여전히 길을 헤매는 어른들의 이야기다. 친구에게서 덜컥 식당을 인수해버린 호영 아빠와 호영은 처음 해보는 자영업에 적응하기 바쁘다. 게다가 전 사장이 있을 때부터 직원으로 일하며 식당에서 숙식까지 해결하던 미등록 이주민 밀리네 모녀 때문에 곤란을 겪는다. 한편, 이 식당에서 배달원으로 일하는 세훈은 배달을 갔다가 우연히 곤경에 빠진 10년 전 담임 선생님과 마주친다.


현실에서 그러했듯이 연극 속에서도 팬데믹 상황이 덮쳐 오고,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경영난으로 호영 아빠가 친구에게 가게 잔금 치르는 일을 계속 미루자 그에게 가게를 넘겼던 친구는 바로 맞은편에 비슷한 메뉴를 파는 배달 전문 식당을 차린다. 그리고 호영 아빠의 가게에서 일하던 직원들을 모두 채 가기까지 한다. 세훈과 선생님 사이에서도 갈등이 싹트기 시작한다.


요란한 오토바이 배기음으로 시작하는 연극이지만 이 극에서 오토바이는 우리가 막연히 갖고 있는 청춘에 대한 낭만이나 환상을 재현하지 않는다. 오토바이의 주인인 세훈이 오토바이를 타고 주로 하는 것은 배달 일이다. 호영이 그의 오토바이에 잠깐 올라보지만 사고가 날까 두려워 얼마 가지 못한다. 밀리는 세훈에게 그 오토바이 타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느냐고 묻지만 호영은 원하는 곳이면 아무 데나 갈 수 있다는 식의 낭만적인 대답을 쉽게 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오토바이는 어디든 데려다주는 탈것이라기보다 생계의 수단이고, 2023년의 불안정하고 열악한 청춘을 보여주는 도구다.

 

 

 

부재하는 어른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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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것 위에 올라탄 사람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라이더’는 ‘드라이버’와 비슷하지만 둘이 주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드라이버가 자동차와 같은 안정적인 자리에서 자신이 가고자 하는 확고한 목적지를 갖고 있다면, 라이더는 방심하면 언제든 떨어질 수 있는 불안정한 자리에서 이곳저곳을 헤맨다.


<라이더>에 나오는 인물은 모두 드라이버보다 라이더에 가깝다. 세훈과 호영, 밀리는 말할 것도 없고 드라이버 자리가 더 어울릴 법한 세 명의 어른도 여전히 흔들리고 방황한다. 호영의 아빠, 밀리의 엄마, 식당의 전 사장, 그리고 선생님. 어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이들이 오히려 청소년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 이 극의 재미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서류 작업과 기계를 다루는 데 서툰 호영의 아빠는 매번 아들 호영의 도움을 받는다. 밀리는 늘 엄마에게 명령하고, 엄마가 직접 소통해야 하는 문제에까지 자신이 나서 대리인을 자처한다. 이들 외에 다른 두 명의 어른도 어른답지 못하기는 매한가지다. 세훈의 선생님은 주식으로 자신의 재산까지 탕진한 남편과의 이혼을 앞두고 방황한다. 삶의 재미를 잃어버린 그에게 잠시나마 즐거움을 주는 것은 우습게도 제대로 된 직장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10년 전 제자고, 그가 일하는 식당에서 사 먹는 한 끼 식사다.


호영 아빠의 친구이자 전 식당 주인은 처음에는 등장인물 중 가장 어른다운 어른인 것처럼 등장한다. 밀리 모녀가 계속 일할 수 있도록 돕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도 빠삭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이 진행됨에 따라 상도덕을 어기고 친구네 직원을 빼돌리는 모습, 화해하러 찾아온 호영 아빠에게 세상 물정을 몰라서 도태될 거라는 악담을 퍼붓고 폭행 혐의로 고소까지 해버리는 모습을 보인다. 그의 존재는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것이 살아남기에 유리한 조건은 될 수 있어도 어른의 조건이 될 수는 없음을 말해준다.

 

 

 

가야 할 곳을 꼭 정할 필요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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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훈은 어른과 청소년의 경계에 서서 계속 주변으로부터 ‘어른이 될 것’을 요구받는 인물이다. 20대 후반인 그는 선생님에게도, 사장님에게도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냐’는 말을 듣는다. 이제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걸 그만두고, 무언가 목표와 야망을 품고 정해진 길을 쭉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관객 입장에서는 그다지 어른스럽지 않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어른답게 살라는 말 속에서 ‘어른’이란 무엇인지 실체가 보이지 않는다.


혼란스러운 청소년기와 청춘을 통과하면 어른이라는 안정적인 자리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2023년에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듯하다. 보통의 삶조차 손에 잘 잡히지 않는 현실 속에서 주식과 코인에 몰두하는 세훈은 기약 없이 방황하는 오늘날의 청춘을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점점 청춘이라 부르기에 어색한 나이가 되어 가지만 여전히 그는 ‘드라이버’가 아닌 ‘라이더’로, 불안정한 자신의 자리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고군분투한다.


그에게 어른이 되라고 말하는 이들조차 자신의 자리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애쓰는 건 마찬가지다. 어른이라는 것, 어른스러움이 허상처럼 느껴지는 세상에서 방황은 청춘의 전유물이 아니다. 청춘이라 불리는 시기가 끝나도 사람들은 어른이라는 것에 안착하지 못하고 계속 헤맨다.

 

적어도 이 연극에서 길을 안내해주는 ‘어른’은 없다. 믿음직하지 못한 어른들 사이에서 세훈과 밀리, 호영은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까. 연극은 명확한 결말 대신 앞으로도 이 세상을 자신의 방식대로 계속 살아나갈 이들의 모습을 조명하며 마무리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어디론가 떠나는 밀리가 호영에게 다시 묻는다. 그 오토바이를 타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느냐고. 호영은 잠깐 고민하다가 그런 걸 꼭 정해 놓고 가야 하냐고 반문한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어른다운 어른이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른의 의미를 계속 고민하고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지 궁리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살겠다고 섣불리 결심하기보다 어떻게 살 것인지 불안한 오토바이에 매달린 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극이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또다시 오토바이가 어디론가 달려나가기 시작한다.

 

 

*사진: 극단 비밀기지 제공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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