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미래와 현재가 공존하는 미지의 세계에서 - 마리아 스바르보바 : 어제의 미래

글 입력 2023.01.18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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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어딘가에서 슬프지 않은 사람은 없다,라는 문장을 보았다.

 

밝은 사람의 이면과 반짝이는 것들의 모서리. 나는 그런 것들을 바라보게 되었고, 그래서 천진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을 덜 미워하게 되기도 했다. 뭐가 저렇게 깔끔해, 뭐가 저렇게 단순하고, 완벽해. 뭐가 저렇게 예뻐, 그런 사람들에게도 서로 다른 내면의 얼굴이 있을테니까.

 

그리고 어느날에는 완벽하게 아름다운 것들이 알 수 없이 슬퍼 보이기도 했다.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작품은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슬프게 다가왔다. 관객을 매혹시키는 시각적 아름다움, 그 안에 담긴 차가움과 소외, 불안이 느껴져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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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스바르보바(34)는 국제적으로 뜨거운 주목을 받는 젊은 사진작가다. 슬로바키아 출신의 스바르보바는 국제 무대에 혜성처럼 등장해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대중적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그런 그녀의 작품을 모은 전시가 열린다니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전시는 다섯 개의 챕터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작품이 무척이나 많아서 공간을 다 돌아보니 체력 소모가 컸다. 그만큼 알찬 전시이기도 했다. 지금부터 전시의 몇 가지 챕터에 대해 말하며 마리아 스바르보바 사진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첫 번째 챕터는 노스텔지아였다.

 

 

 

파스텔 톤의 명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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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과거를 표현하는 방식은 섬뜩하도록 차갑다. 그리움을 배제한 과거에 대한 기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닥터 시리즈와 정육점 시리즈는 모두 병원과 정육점이라는 빨간 피가 연상되는 장소가 배경이다. 이 살풍경한 공간들은 그녀의 사진 속 특유의 밝은 파스텔 색깔과 함께 명랑함을 되찾는다.

 

그런데 이 명랑함이란 깨끗한 명랑함이 아니라 찝찝한 명랑함이다. 무언가를 보여주려다가 마는 식으로, 일부러 무언가를 숨기는 식으로.

 

사진 속 세 명의 사람들에게 “누가 당신을 협박하고 있다면 당근을 흔들어주세요” 묻고 싶을 정도로 수상한 장면이다. 모든 것이 조화롭지만 차가운 그림 속에 숨겨져 있는 비밀스러움이 있다.

 

그것은 연출된 공간을 연출된 장소와 공간이라고 감추지 않는다는 데에서 오는 의심스러움일지도 모른다. TV, 공연, 영화에서 우리는 모두 ‘자연스러움’을 연출하고, 그 반대에 있는 부자연스러운 스바르보바의 그림이란 익숙함의 탈피다.

 

‘낯설게 하기’를 가장 일상적인 방식으로, 가장 티나지 않는 방식으로 적용한 사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퓨트로라는 단어에 가두기엔 아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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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챕터는 퓨트로 레트로다.

 

아무래도 마리아 스바르보바 작품의 특징 중 가장 주목할만한 것은 신과 구의 적절한 결합을 통한 놀라운 조화가 아닐까. 그녀는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 사이의 균형을 섬세하게 조절할 수 있다.

 

퓨트로 레트로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건 2019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퓨처와 뉴트로의 합성어인 퓨트로가 당시 패션계와 음악계를 휩쓸고 지나갔다.

 

사실 퓨트로라는 장르 설명은 모호하다. 현대적이지도, 미래적이지도 않은, 시간성의 공존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몽환적이거나 비현실적인 어떤 것을 뭉뚱그려 퓨트로라고 표현하게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스바르보바의 사진 세계를 퓨트로라는 단어에 한정 짓는 것은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녀의 사진 장르에 대해 말할 때 ‘퓨트로’ 만큼 적당한 단어는 없다.

 

그녀의 사진은 대체로 미니멀하고 미래지향적이다.

 

얼마전 무라타 사야카의 단편소설 ‘무’를 읽었는데 ‘무’라는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다룬다. ‘무’라는 트랜드를 따르는 사람들은 욕망과 기억들, 삶에 필요하다고 여겼던 것들을 하나씩 삭제시키고, 최고의 ‘무’가 되기 위해 훈련을 받고 기다림의 시간을 보낸다. 나는 무라타 사야카가 그린 ‘무’세계를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스바르보바의 그림 속에서가 아닐까 생각했다.

 

많은 것들이 비어 있는, 동시에 인간의 영혼과 표정조차 텅 빈. 사진 속 사람들과 공간은 지나치게 허구적이고, 영영 없을 세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언제가 보았던 세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감상 때문에 그녀의 사진이 ‘가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고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복고 미래주의. 가짜 향수 결코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한 향수

 

– 작가 브루스 맥콜

 

 

또 휴먼 스페이스 시리즈 1의 건축 속에서도 미래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슬로바키아 공화국에 일찍이 퍼져있는 기능주의 건축양식 속에서 자라난 마리아는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에 유행하던 브루탈리즘의 특징과 노출된 콘크리트 표면 덕에 그녀의 상상력을 계속해서 이끌어 낼 수 있었다고 한다.

 

 

 

수영장의 채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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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섹션인 더 스위밍 풀은 마리아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수영장 시리즈이다.

 

마리아 스바르보바는 4년 동안 슬로바키아에 있는 13개 수영장에서 120개 이상의 작품을 남겼다. 오래된 수영장에 색을 칠하는 과정은 현대적인 요소로 오래된 부분들을 보완하는 것이라 보인다.

 

그녀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보여지는 것은 채도 높은 선명한 색상과 반복되는 규칙들이다. 수영장 사진 속 모든 모델이 여성이라는 점과 지나치게 각 맞춘 평형, 대칭의 이미지를 볼 때 스바르보바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수영장에 붙어 있는 금지 문구, 통제된 몸짓, 규칙의 필요가 현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미명, 혹은 과거의 수영장 풍경을 보여준다.

 

그밖에도 세상의 커플들을 다룬 커플 챕터와 사막에서 촬영해 경이로운 로스트인 더 벨리 시리즈로 전시는 마무리된다.

 

 

“뷰파인더를 보면 평행세계가 보인다. 다른 시간에 작동하는 상상의 세계이다.”

 

 

그녀는 완벽한 평행세계를 사진 속에 보여주며 부자연스러움의 미학을 선보인다.

 

부자연스럽다는 것은 다시 말해 일상적이지 않다는 것, 일상의 틈으로 세계의 수많은 미제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나는 그녀의 작품이 전형적 아름다움, 단순한 배치 정도로 읽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세상이 거의 만화처럼 느껴진다. 정말 오랜 시간 동안 사진을 찍거나 편집을 하면 내 주변의 현실이 내 사진의 세계와 섞이기 시작하고 모든 것이 만화처럼 보인다.”

 

 

과거와 미래, 시간성이 공존하는 미지의 세계에서 그녀의 그림 속 사람들이 표정을 얻었기를 바라본다.

 

 

[최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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