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결국은 다정함이 이긴다

끝까지 가면 말이다
글 입력 2023.01.18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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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내 세계에서는 늘 현실이 이겼다. 나는 늘 웨이먼드가 되려 애를 쓰다가 체력과 정신력이 소모되면 그 즉시 조부 투파키로 돌변했다. 웨이먼드가 이기는 멀티버스는 여기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힘이 들면 다정함, 배려 같은 것부터 내려놓았다. 방해하는 것이 뭐든 맞서 싸우려고 했고 이기려고 했다. 늘 화가 나 있었고 불편, 불만, 부당함을 지적하는 말부터 내뱉었다.


그런데 그날은 그렇게 말했다.


“결국 끝까지 가면 다정함이 이겨.”


그러니까. J의 맞장구와 함께 우리는 붉어진 눈으로 웃었다. 작년 나를 가장 크게 울게 한 것은 우습게도 핫도그 손가락이 나오고 라따구리가 요리를 하고, 양자경이 쿵후를 하는...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이 영화였다.


나그네의 옷을 벗긴 것은 바람이 아니라 햇빛이다. 역사적으로 평화시위의 성공률이 폭력 시위보다 2배 높다. 호모 사피엔스가 신체적으로 더 강했던 네안데르탈인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서로 협력하는 능력이라고 한다.


나는 거기에다 대고, ‘이번에도 그러리라는 보장이 있어?’라고 묻는 사람이었다. 기대를 포함하게 되는 다정함이 싫은 기분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허무주의나 포기 같은 것은 쉽다. 받아들이면 되니까. 아끼고 사랑하는 건 힘들다. 그럴 시간도 체력도 없어서 매번 다가오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나는 쉽고 합리적인 길을 택한다. “포기하면 편하잖아, 아무것도 달라질 것은 없어”라고 말하는 조부 투파키의 손을 망설임 없이 잡는 것이다.


적당한 무관심과 냉소적인 태도는 나에게 무기나 마찬가지였다. 치밀한 합리주의와 나를 우선으로 하는 결정 등으로 똘똘 뭉친다면 상처를 입는 일이 적어지니까. 당시에는 꽤 똑똑한 전략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이 얼마나 망하든, ‘그럴 줄 알았지’라며 팔짱을 끼면 해결될 일이었다. 정말로 알았을까? 그렇게 굴더라도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눈으로 보더라도 모른 척하면 그만이니 내가 손해볼 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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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은 내내 무기력과 싸웠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힘들어서 오히려 깨어 있을 때 한참을 무리하는 이상한 사이클 속에서 침전하기만 했다. 내가 하는 이야기가 소모적이고 일시적인 이야기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점차 희미해졌다.

 

내가 쓴 원고는 셀 수 없이 많다. 인터넷을 켜면 내가 쓴 글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닌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손에 남는 게 하나도 없는 기분이 들었다. 이러한 상태를 가리키는 매우 전문적인 용어가 있다. 현타. 애써 무시하려 들었던 ‘내가 발버둥 쳐도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끝끝내 고개를 들고만 것이다.

 

나의 베이글은 그거였다.


문제점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고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상태를 더 나쁘게 만들었다. 왜 늘 더 안 좋아지기만 하는지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 슬펐다. 감정을 내놓지 않으면 상황이 좀 더 나아지는 것 같아 그렇게 했다. 사실은 매일 나빠지고 있었는데도. 그때는 그게 최선의 선택지라는 점이 슬펐지만 그렇게 바뀌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했다.


그리고 변화는 늘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출발한다. 최근에 꽤 많은 사람들과 기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많은 사람이 여전히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이 사는 곳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들리지 않는다고 모두가 침묵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쉽게 간과하고 있었다.

 

미래의 지구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내놓은 진심 어린 따뜻한 걱정들을 들으며 나는 몹시도 부끄러웠다. 나는 공통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모든 주변의 세계에 빠짐없이 존재하고 있다. 그런 세계를 잇는 것은 각각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언제부터 잊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한 번도 혼자 살아남았던 적이 없는데.


제가 무언가 잘못 쓰고 있다면 거침없이 이야기해 주세요. 최근 건넨 인사 중 가장 진심을 담긴 말을 담아 건네고 집으로 돌아왔다. 선물로 받은 분홍색 실리콘 다회용기가 내 체온을 옮아 따뜻해져 있었다. 변화를 머금기로 한 것은 정말 순간의 힘이면 됐다는 것이 헛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그날의 마지막 운행을 앞둔 2호선은 고요했고, 내 마음만이 시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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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작가의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중

 

 

정세랑 작가의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에는 그런 말이 나온다.


“세상이 망가지는 속도가 무서워도, 고치려는 사람들 역시 쉬지 않는다는 점을 잊지 않으려 한다. 절망이 언제나 가장 쉬운 감정인 듯싶어, 책임감 있는 성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작은 부분에서 시작된 변화가 확산되는 것은 인류 역사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패턴이기 때문에 시선을 멀리 던진다. 합리성과 이타성, 전환과 전복을 믿고 있다. 우리는 하던 대로 하고 살던 대로 사는 종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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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틸컷

 

 

“Every new discovery is just a reminder- We’re all small and stupid.”


조부 투파키도 비슷한 말을 한다. 형태는 다르지만 사실 두 사람의 말은 같은 뜻이다. 모든 새로운 발견들은 우리는 모두 작고, 또 멍청하다는 것을 깨닫게 만든다. 그럼에도 우리는 꾸준히 생존해왔고 발전해 왔고 선택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들어왔다. 쉽게 절망하거나 냉소하지 말자는 메시지를 나는 기꺼이 끄집어낸다. 냉소적인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듯 굴었던 멍청함도 결국 새로운 발전을 위한 단계였을 것이라는 조촐한 위로도.


결국에는 다정함이 내 안의 냉소를 이겼다. 그러니까 냉소적인 웃음보다는 다정함을 연습하는 게 낫다. 지금 무의미하고 사소해 보이는 것들이 언제 무기가 될지 모른다. 나는 싸우고 싶지 않다. 동시에 마음껏 싸우고 싶다. 싸운다면 가장 강한 무기를 들고 날 방어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다정함을 무기 삼아 단단해지기로 한다. 자신의 다정함은 전략적인 선택이었다는 웨이먼드처럼.

 

오늘의 기록처럼 다정함도 전략일 수 있다는 것을 망각한 지난 시간은 그대로 두기로 했다.

 

그것도 내 역사의 수많은 discovery 중 하나라는 점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며...

 

모든 우주의 내가, 당신이 희망을 놓지 않고 무수한 용기와 같은 다정함을 발견하기를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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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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