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새해가 밝으면 유독 보고싶은 그 사람 [사람]

나의 외할머니와 옛 시골집;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글 입력 2023.01.07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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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분홍 치마가 꽃바람에 흩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 백설희, 봄날은 간다 中 

 


차분한 바람이 스치는 어느 가을날의 오후, 따사로운 볕이 드리운 고요한 병원 앞마당에서 우리는 아마 각자의 추억에 잠겨 있었을 테다.

 

자식도, 손주도, 기어이는 본인의 존재조차도 캄캄한 기억의 바다에 잠재워 버린 그녀는, 무심히 흘러가버린 세월에도 여전히 고운 자태를 간직한 목소리로 구성진 가락을 읊었다. 

 

기억을 잃기 전에도 즐겨 부르시던 그 노랫말이 그 날 따라 유독 더 슬프고 아련했던 건, 이별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무의 나이테를 닮은 주름살들은 그간의 고된 삶을 온통 드러내고 있었지만, 웃을 때면 그려지던 미소에는 항상 때묻지 않은 아이의 천진함이 묻어 나왔다. 

 

나를 아가라고 부르던 다정한 목소리와 살포시 어루만지던 부드러운 손길, 그리고 그 따스한 품에서 나던 그리운 냄새. 

 

떠나는 우리를 작은 점이 될 때까지 배웅하던 서운한 얼굴과 아쉬움을 숨기지 못한 채 돌아섰을 그 뒷모습까지. 

 

나의 유년 시절에 살아 숨쉬고 있을 그리움의 대상.

 

새해 첫 날이 되면 유독 더 보고싶은 우리 외할머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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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갓집에서는 항상 정겨운 냄새가 났다. 

 

우리 엄마의 유년시절이 고스란히 담긴 오래된 집에는 창호지로 만들어진 낡은 문과 까치발로 오르내리던 나무로 된 마루, 마당 한 켠을 차지한 우물이 있었다.

 

엄마의 어린시절을 훔쳐 보았던 서랍 속 사진, 코 안으로 스미던 시골의 밤 공기와 찬 기운이 묻은 몸을 감싸던 방안의 온기, 그리고 다정한 꿈을 꾸게 했던 오래된 집 냄새. 

 

그 냄새는 사실 할머니의 냄새이기도 했다. 

 

할머니의 냄새가 곳곳에 묻은 그 집을 나는 꽤나 많이 아끼고 사랑했던 것 같다. 이제는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그 집을 자꾸만 흐려지려는 기억을 애써 더듬으며 그려내려 노력하려는 걸 보면 말이다.

 

어린 나이에 시집을 온 할머니께서는 소녀 시절부터 노인이 될 때까지 까마득한 시간을 그 집과 함께 늙어왔다고 한다. 길었던 삶의 역사가 담긴 그 집이 활활 타올라 끝내 까만 재로 변해버렸을 때 할머니께서는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그 충격을 나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 터에 새로운 집이 들어서고 명절이 되면 또 다시 할머니 댁을 방문했지만, 새로운 집에 머무르면서도 나는 항상 옛 집을 그리워했다. 불에 탔던 흔적은 완벽히 치워졌지만, 갑작스런 사고는 그 곳을 사랑했던 모든 이들에게 치유할 수 없는 상흔을 남겼던 것이다.

 

그리고 아마 가장 큰 상처를 입으셨을 할머니께서는 그 충격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셨던 것 같다. 그 집에 대한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까지 화마에 덮인 순간을 잊지 못해 계속 아파하셨을까.

 

할머니께서는 나날이 작아 지셨다. 원래도 작았던 체구는 더욱더 가냘파졌고, 총명했던 두 눈이 하루가 다르게 공허해지다 어느 날 완전히 어린아이가 되어 버리셨다.

 

어쩌면 할머니와 옛 집은 하나였는지도 모르겠다. 본인의 삶 그 자체였던 집이 사라지던 날 할머니의 무언가도 함께 파괴되어 버렸던 것 같다. 

 

할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신지도 벌써 삼 년의 시간이 흘렀다. 과분하게 받았던 사랑을 생각하면 그 분을 잊고 사는 대부분의 날들이 괘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문득 자상한 손길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순간이 있다. 할머니를 떠올리면 머릿속에 자동으로 그려지는 옛날의 그 집. 

 

할머니의 냄새가 희미해 질수록 집의 형태도 기억에서 옅어지는 것 같아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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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했던 존재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만큼 그 대상의 기억에서 나의 존재가 지워지는 것 역시 슬펐다.

 

할머니께서 병원에 입원하시기 직전의 어느 여름, 함께 했던 여행에서 그 분의 기억 속에 더 이상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했다.

 

나를 처음보는 사람처럼 대하던 그 말투. 항상 불리던 ‘아가’에서 ‘자네’가 된 순간 내 삶에 큰 부분이 떨어져 나간 것 같았다.

 

그 병의 잔인함을 진심으로 이해했다. 치매는 정말 본인에게도 그 주변인에게도 너무나 혹독한 형벌이었다. 동시에 바쁘다는 핑계로 소홀히 했던 나의 무심함이 가시가 되어 내 마음을 찔렀다.

 

본인의 기억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걸 느꼈을 때 할머니께서는 얼마나 무서우셨을까. 공포스러운 순간을 홀로 견디셔야 했을 때 무척이나 외로우셨겠지. 내가 조금 더 다정한 손녀가 되었어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마치 늘어난 테이프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시던 할머니께서는 특정한 시점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로부터 시간이 조금 더 지나, 기억에 구멍이 뚫린 치매 환자들이 인생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들 만을 겨우 간직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철이 없게도 그 당시에는 나를 지워버렸다는 원망이 앞섰던 것 같다. 지금은 그저 기억을 잃은 할머니께서 머물러 있으셨을 그 시간들이 전부 행복했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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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부터 하루하루 겨우 고비를 넘기시던 할머니께서는 3년 전 겨울, 새해를 겨우 이틀 넘긴 어느 날 끝내 세상을 떠나셨다.

 

슬픔은 무디어질 수 없는 것 같다.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아졌다 해서 덜 슬플 수는 없었다. 이별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지만, 무덤덤하게 작별하기에는 쌓아온 세월이 나를 어린아이로 만들었다.

 

생에 처음으로 장례식의 모든 과정을 함께하면서 태어나서 가장 오랜 시간 할머니를 생각했다. 그 과정을 몸소 겪어보지 않은 시절에는 장례식과 같은 전통 의식들을 허례허식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날을 세웠던 과거가 우습게도 형식적인 의식에 꽤나 큰 도움을 받았던 것이다.

 

어쩌면 고인에게는 별 필요가 없을 수도 있는 절차들은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돌아가신 분을 존중하기 위한 과정들이 오히려 남겨진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었다.

 

할머니와 함께 했던 추억을 찬찬히 더듬어보며, 그 존재의 의미와 받은 사랑을 되새겼다. 어리석게도 잃은 후에야 소중함을 알게 된다.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삶에서 빠져나가는 순간에야 비로소 그 존재가 차지했던 공간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텅 비어 버린 공간을 차지하는 상실감이 외려 위로가 되었다. 그리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거였다.

 

퉁퉁 부은 얼굴로 간절히 기도를 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라고. 장례식장을 가득 채우는 문상객들을 맞으며 가시는 길이 외롭지 않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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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마지막 날 기차를 타고 외삼촌 댁에 내려갔다.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정말 오랜만에 할머니와 옛날 외갓집을 떠올렸다. 

 

새해 첫날 밤 제사를 지냈다. 코로나로 인해 3년 만에 겨우 제대로 인사를 드렸다. 집 안을 가득 채운 식구들을 바라보며 죽음으로 귀결되지 않는 한 존재의 의미를 생각했다. 

 

비록 같은 땅 위에 숨쉬고 있지 않지만 할머니를 향한 사랑들이 모여 여전히 이 세상에 그 분을 존재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존재의 영향력은 본인을 매개로 그 자손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더라. 

 

세상은 점점 분절되고 연대는 나날이 느슨해 지는 것 같다. 가족 간의 유대도 마찬가지이다. 자주 접촉하지 않으면 몸도 마음도 멀어지는 법이다. 

 

기념일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다가도 그 의미부여로 인해 연결되는 것이 우리의 마음임을 느낀다.

 

매해 새해 첫 날이 되면 다른 누구보다 외할머니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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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기억나는 몇 안 되는 유년의 철 없던 순간을 꺼내 본다.

 

먼 기억 속에 건강하셨던 할머니께서는 홀로 긴 시간을 버스를 타고 우리 집에 오셔서 며칠 밤을 머물다 가시기도 하셨다. 

 

어린 동생들을 돌보시느라 바쁘셨던 엄마 대신 할머니의 손을 꼭 붙잡고 시장에 갔던 어느 날이 떠오른다. 

 

시내에 새로 생긴 백화점에서 시계를 사 달라며 떼를 썼던 철 없던 나와,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셨던 할머니.

 

집에 돌아가서 엄마께 된통 혼난 나를 다정히도 달래시던 그 손길의 온기를 나는 잊지 못한다. 그리 많은 사랑을 주고도 더 주지 못해 미안해 하시던 그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혀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이제야 조금 철이 들어가는 나는, 내 생이 끝나는 순간까지 주는 것에 비해 너무 많이 받았던 그 조건 없는 무한한 사랑을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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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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