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위대한 개츠비 다시 보기 [영화]

“다들 썩었어. 넌 그 빌어먹을 인간들을 다 합친 것보다 더 가치있는 인간이야.”
글 입력 2023.01.01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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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위대한 개츠비》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원작 『위대한 개츠비』(1925)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스콧 피츠제럴드가 살았던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시대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1920년대의 미국은 1차 세계대전을 통해 쌓은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경제적 풍요를 안고 강대국으로 등장했다. 전승국 중 유일하게 국토가 파괴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큰 이점으로 작용했지만, 동시에 비참한 현실을 더욱 깨닫게 했으며, 기성세대의 가치관에 실망한 젊은이들은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가 되어 꿈을 잃고 향락적인 생활을 즐기는 이미지로 대변되었다.

 

원작에서 묘사되는 물질만능주의와 아메리칸 드림의 상실, 빈익빈 부익부의 심화는 영화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스트에그에 위치한 톰과 데이지의 저택, 매일같이 화려한 파티가 열리는 만 반대편 개츠비의 저택, 증권가의 발달에 힘입어 부의 세계로 진입하려는 옆집의 닉과 잿빛의 땅에 위치한 조지의 자동차 정비소는 당시의 정신적 빈곤과 자본주의로 인한 소외의 심화를 극적으로 묘사한다.

 

스콧 피츠제럴드는 세계를 뒤바꾼 전쟁 이후의 사회에 대해 “그것은 기적의 시대였고, 예술의 시대, 과도의 시대, 풍자의 시대였다”고 평한다. 이는 《위대한 개츠비》의 서사를 관통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사회가 혼란할수록 문학과 예술은 더욱 활발해진다. 1920년대 미국이라는 특수한 시대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원작과 영화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작품의 주요 모티프들을 따라가며 개츠비의 ‘위대함’을 짚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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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원작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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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이 있는 대부분의 영화들이 그렇듯, 영화 《위대한 개츠비》 또한 원작의 장면들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그들의 노력을 다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물들의 대사만으로 진행되는 영화의 특성상, 개츠비라는 인물이 가진 복잡성과 이를 둘러싼 외적 요인들에 대한 설명의 배제는 원작을 읽지 않은 관람자들에게 다소 불친절한 태도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불친절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이끌어가는 힘이 있는데, 그건 바로 개츠비의 존재이다.

 

"위대한 개츠비"라는 작품의 제목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야기의 화자는 1인칭 관찰자인 닉이다. 닉이 개츠비와의 첫만남을 회상함과 동시에 펼쳐지는 개츠비의 저택과 파티의 모습은 말 그대로 휘황찬란하다. 저택의 입구부터 잘 관리된 정원을 지나 등장한 개츠비의 저택은 마치 중세의 성당을 연상시키고, 초대 없이 저택을 드나드는 수많은 사람들은 그 자체로 수수께끼인 개츠비의 신비성을 극대화한다. 파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난간에 홀로 서 건너편의 초록불을 바라보는 개츠비의 모습은 단순히 원작의 묘사를 구현하는 차원을 넘어 이후의 이야기를 이끌어갈만한 힘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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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이 수많은 소문으로부터 접한 개츠비는 단순히 미스터리한 옆집 부자를 넘어 ‘믿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닉은 이 의심을 쉽게 걷어내지 않는다. 닉이 의심을 걷어내는 결정적 순간은 개츠비의 화려한 삶이 향하는 곳이 오직 데이지와의 사랑이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이는 그저 화려하고 비밀이 많은, 자신과는 다른 세계 속의 인물이었던 개츠비가 그저 살아있는 개별적 인간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고, 닉이 개츠비와 데이지 사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닉이 개츠비를 본인과 같은 한 사람으로 인식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시작되는 것은 개츠비에 대한 감정 이입이다. 닉은 작중 인물로서 개츠비에게 벌어지는 주요 사건들을 매개하는 인물이자 모두를 관찰하는 서술자이고, 개츠비로 인해 변화하며, 결국은 개츠비의 위대함을 이해하기에 이른다. 관람자는 이야기의 주인공인 개츠비가 아닌 닉의 시점에서 개츠비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따라간다.

 

아쉬운 점은 영화 속 서술자로서 닉이 갖는 용매의 역할이 효과적으로 제시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 연결이 극적으로 끊어지는 순간은 아마 개츠비와 데이지, 톰의 삼자대면 후 분노를 삼키지 못하는 개츠비의 장면일 것이다. 영화가 꼭 관람자에게 친절하고, 설명적일 필요는 없다. 다만 이전까지 순조롭게 이야기를 따라가던 관람자가 느끼는 의아함은 개츠비의 위대함을 쫓는 데에 방해요소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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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불안한 연결은 닉이 마주한 '인간 개츠비'에서 다시 공고해진다. 데이지를 향한 사랑과 상류층에 대한 동경, 인정에 대한 욕구로 점철된 인간 개츠비에서 말이다. 데이지에 대한 집착의 정체는 개츠비의 꿈이었고, 개츠비는 만 건너편의 초록불을 통해 자신의 꿈이 실현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다. 닉은 물질만능주의와 이해타산, 위선, 기만의 세상 속에서 자신의 삶을 바꾸지 않으려는 사람들과 여전히 자신의 꿈을 위해 살아가는, 그리고 삶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는 개츠비와의 차이를 본다.

  

데이지가 떠난 후에도 개츠비는 그 희망을 놓지 않는데, 이는 개츠비가 닉에게 “내가 생각하기에는 데이지가 전화할 것 같아”라 말하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닉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개츠비의 말에 동의한다. 그리고 다시 개츠비를 불러 외친다. “다들 썩었어. 넌 그 빌어먹을 인간들을 다 합친 것보다 더 가치있는 인간이야.” 개츠비는 정말 데이지가 전화할 것이라고 믿었을까? 개츠비는 믿었을 것이고, 닉은 개츠비가 믿을 것을 믿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개츠비의 집에서 그가 부패한지 알아내려 했지만, 그는 우리 앞에 서서 부패할 수 없는 꿈을 숨기고 있었다. 완벽하고 거부할 수 없는 상상력이야”
 

 

개츠비와 스치고 싶어했던 그 많은 사람들에도 불구하고, 개츠비의 마지막을 지키는 이는 닉 한 명뿐이다. 개츠비가 그토록 사랑했던 데이지도, 그토록 갖고자 했던 부와 인정도 그를 진정으로 이해해주지 못했다. 주인이 없는 저택에서 개츠비와 초록불에 대해 생각하며 이어지는 닉의 독백은 개츠비가 가지고 있던 희망의 정체를 암시한다.


개츠비의 희망과 사랑, 삶을 상징하는 것이 ‘빛’이었다는 것 또한 의미심장하다. 초록불, 그것은 사회적 조건으로 미뤄두었던 개츠비의 열망이고, 부패할 수 없는 꿈이었다. 물질적인 형태가 없는 ‘초록불’은 결국 개츠비가 팔을 뻗어도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며, 멀리서 반짝일 때만 그 의미를 획득한다. 도달할 수 없는 갈망의 정점이다.

 

희망이 사그라지는 순간에도 개츠비의 초록불은 꺼지지 않았다. 개츠비의 위대함은 생의 가능성과 약속에 대한 절실한 믿음이다. 희망이 없는 세상 속에서 희망을 품을 수 있는 낭만성이자 아무리 작은 희망이라도 그것을 감지할 수 있는 천부적 재능이다.

 

이러한 면에서 닉의 독백은 마치 1920년대 혼란했던 미국을 온몸으로 경험한 작가의 독백처럼 들리기도 한다. 실제 부잣집 여성과의 사랑에 실패하고, 경제적 이유로 파혼을 겪고,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며 체화된 작가의 경험은 다분히 개츠비에 투영되었다. 개츠비를 향한 닉의 독백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 무엇보다도 작가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까. 초록불과 같은 희망, 그것은 작가가 미국의 청춘기를 목도한 ‘잃어버린 세대’를 대표하는 문학가로 자리하면서도 잃고 싶지 않았던 단 한가지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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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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