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스물다섯 회고록 [음악]

스물다섯의 기록을 닮은 플레이리스트
글 입력 2022.12.31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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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마무리되는 이맘때 즈음이면 연례행사처럼 열심히 구상하는 작은 계획이 있다. 바로 새해 가장 처음으로 들을 음악을 선정하는 일이다.

 

이런 유치한 의미부여가 결국 찰나로 흩어지기 마련이라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배경음악을 입히는 그 순간만큼은 밋밋했던 내 삶도 영화 속 한 장면이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작년에는 후보가 너무 많아 고민이었는데, 올해는 유독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다가올 스물 여섯이 아득하기만 한 건, 그만큼 스물 다섯에 남은 나의 미련이 많기 때문이겠지.

 

원체 의미를 탐색하는 걸 즐기는 사람이다. 정답이 없는 문제들에 구태여 답을 갈구하려는 때가 있다. 지나간 시간을 회상하니, 스물다섯은 유독 삶의 의미를 찾는데 매몰되어 있었던 것 같다. 

 

거창한 것들에 몰두했던 시간이 조금은 초라하게 느껴지는 건, 여전히 그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의미라는 것 역시 내가 붙이는 이름에 불과하기에, 불확실한 미래에 기대를 걸기보다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나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보내기 아쉬운 스물다섯을 불과 하루 남기고 문득 느끼는 건, 애틋해진 지난 날들을 소중히 기억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올해는 조금 특별하게 새해 첫 곡을 고민하기보다 올해 마지막 곡을 선곡해보기로 했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지 않는다는 것에 더 이상 실망조차 하지 않는 미온한 어른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이 삶의 주인공은 나라는 걸 가슴에 품은 청춘이다. 


그 누구도 큰 관심이 없을 나의 스물다섯의 시간들을 정리하며, 그 기록들에 어울리는 소리를 입혀보고자 하는 작은 욕심을 부려본다.

 

 

 

Intro: 팔레트 -아이유 (Feat. G-DRA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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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like it I’m twenty five

날 좋아하는 거 알아

I got this I’m truly fine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날

 

 

아이유의 가사들은 서정적이라 좋다. 그 섬세하고 다정한 표현들이 가슴에 스며들어 감동을 준다. 


굳이 고르자면 그 중 ‘나이’ 연작 앨범들을 가장 좋아한다. 분명 다른 궤도의 삶인데, 그 나이에 가까워지면 느껴지는 공감대가 가끔은 신비롭게 느껴진다.

 

‘팔레트’는 내가 스물일 적 발매되었던 동명의 앨범의 타이틀이다. 당시에도 수도 없이 들을 정도로 좋아했던 곡이었는데, 5년의 시차를 두고 스물다섯에 재회하니 새삼스레 내 것처럼 느껴졌다. 

 

스물다섯의 첫 순간을 함께했던 이 노래를 인트로로 꼽은 것은 그 시간상의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신기하게도 일년 사이 그 가사들처럼 나는 나를 좀 더 알게 되었다.

 

여전히 푸른 색감을 좋아하고, 타자보다는 종이와 펜을 선호하며, 새벽의 어슴푸레한 빛을 사랑하고, 비 오는 날을 기다린다.

 

나를 소개하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웠던 나는 이제 흰 종이에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스물다섯이 되었다. 

 

스물여섯에도 변함없이 ‘팔레트’를 좋아할테지만, 스물다섯이기에 더 소중했던 지금 이 감정이 언젠가는 희미해진다는 게 벌써부터 아려온다.

 

 

 

스물다섯의 겨울: 바람의 노래 -조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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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 뿐이야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스물넷에서 스물다섯이 되어가는 그 무렵부터 이불을 뒤척이는 밤들이 잦아졌다. 

 

부풀어가는 고민의 크기가 내 몸집보다 커진 어느 밤, 나는 문득 나의 죽음을 떠올렸다. 막연히 언젠가는 죽기 마련이라고 생각해왔지만, 무의식 속에서는 언제나 나만은 죽지 않을 것처럼 느꼈던 것 같다. 

 

누군가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비로소 안식을 찾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나는 나의 죽음이 너무 두렵다. 당시에는 그 두려움에 압도되어 다른 고민들을 잊었을 정도로 그 관념에 깊이 심취해 있었다.

 

희박한 확률에 지레 겁을 먹는 것이 좋지 못한 습관인 걸 알아 부끄러워 했지만, 올해도 그 고민도 마무리될 무렵이 되니 전혀 무의미하지는 않았음을 느낀다. 

 

무언가 거창한 것들이 두려움의 근원이 되리라 여겼지만, 막상 내일의 죽음을 떠올리니 가장 애절해졌던 건 너무 당연해서 소중한 줄 몰랐던 나의 평범한 일상들이었다. 


모르고 있었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나는 내 삶을 누구보다 사랑하더라.

 

사람은 왜 죽어야만 하는지, 세상은 왜 끊임없이 변하는지, 나의 삶을 나는 왜 가늠조차 할 수 없는지 여전히 도통 모르겠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살아있기에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최선을 다해 즐기는 것이 아닐까.

 

실패와 고뇌가 많은 삶이 가끔은 벅차고 종종 미워지지만, 그 모든 해답이 사랑 뿐이라면 나 역시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해겠노라 다짐해본다.

 

 

 

스물다섯의 봄: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유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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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와 뒤늦게

무엇을 더 보태려 하나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달리 보면 그만인 것을

못 그린 내 빈 곳 

무엇으로 채워지려나

차라리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그려가리

 

 

키가 크고 몸집이 커지는 것처럼, 외적 성장은 가시적이지만 내적인 성장은 마땅한 척도가 없다.

 

인간미는 하나도 없는 숫자나 알파벳도, 실패와 성공, 합격과 불합격 등으로 가르는 이분법적인 세계관으로도 나의 내면의 가치를 전부 평가할 수는 없다고 회의했을 무렵, 어느 봄날에 나는 헤르만 헤세와 사랑에 빠졌다. 

 

운명은 없는 것처럼 믿으면서도, 때로는 기적을 바라는 나는 ‘데미안’과 재회한 그 타이밍이 소소한 삶의 선물이었다고 생각한다. 

 

남들은 나를 지나쳐 저 멀리 나아가는데, 가야 하는 방향조차 갈피를 못 잡은 나를 너무나 미워했다. 고통의 원인도 그 해답도 오로지 나의 몫인 문제에 방황하고 있을 때, 자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진심어린 메시지는 그 무엇보다 가장 감동스런 위로가 된 것이다.

 

십 대 초에는 가늠조차 못했던 책의 내용을 이십 대 중반이 되어 그 의미까지 이해했다는 것을 느낀 순간, 비로소 나는 나의 내적 성장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한없이 불안하고 순간마다 초라해지던 당시, 아주 미약해서 잘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는 위로를 받았다.

 

 

 

스물다섯 여름: 작전명 청-춘! -잔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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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어오는 바람 앞에 불꽃들이여

우린 모두 타오르는 젊음이기에

흔들릴 수 있어

그래 무너질 수 있어

일어나라 작전명 청춘

나의 젊은 날

 

 

여름이었다.

 

스물다섯의 청춘은 왠지 여름 같았다. ‘푸른 봄’이라는 본래의 의미와는 달리, 시간이 지나 나는 이 시기를 여름으로 떠올릴 것 같다. 

 

때로는 마냥 혹독하고 매정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커다란 미움을 담기에는 사랑스러운 날들이었다. 여름이라는 계절이 그러한 것처럼.

 

여름에 태어났지만, 이 계절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꽤 미워하기도 했다. 방금 씻고 나온 몸을 금세 끈적이게 하는 날씨와, 고작 선크림만으로는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은 자외선, 그리고 무엇보다 참기 어려울 정도로 무더운 날씨까지. 넉넉하지 못한 나의 마음에 품기에는 버거운 계절이었다.

 

일방적인 미움의 이유가 사소했듯이, 여름을 사랑하게 된 계기 역시 그리 거창하지는 않았다. 

 

올해 여름의 어느 한 순간이 떠오른다. 밭 한 가운데서 물을 주고 있던 때, 시원한 바람이 이마를 스쳤다. 열중하느라 뻣뻣해진 고개를 들어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바라보자, 눈 앞으로 파아란 하늘과 푸른 들판이 펼쳐졌다.

 

경이로운 자연의 한 가운데 꾸미지 않은 내가 놓여 있었을 때, 내가 살아 숨쉬고 있는 세상의 부피감이 새삼 피부로 느껴졌다.

 

여름은 사실 내가 사랑하는 푸른색과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이었다는 것을. 미움에 시선을 쏟느라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니. 

 

세상을 물들인 초록빛의 풍경, 맑고 푸른 하늘과 청량한 파도까지. 고집을 한 풀 꺾어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고 나니, 여름은 푸른 색감만큼 사랑스러운 계절이 되어 있었다. 

 

여전히 따가운 햇빛은 벅차지만, 가끔 불어오는 바람이 다정하고 빗소리와 흙내음이 가슴을 설레게 하는 사랑스러운 나의 여름.

 

나의 청춘.

 

 

 

스물다섯 가을: 지나가 -RM (with N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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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아픔도 언젠가는 죽기에

무뎌지려면 바람을 맞아야 하잖아

꿈속에서는 영원할 수가 없잖아

힘내란 뿌연 말 대신

다 그렇단 거짓말 대신

그저 이 모든 바람

바람처럼 지나가길 I pray

지나가

 

 

흑과 백의 단조로운 색감. 꾸밈 없는 종이 위에 손 글씨로 완성한 앨범 커버. 흐릿한 분위기에 어울리는 빗물 어린 선율. 진솔한 내면의 고민을 투영한 문학적인 가사. 

 

각기 다른 비 오는 날들의 분위기를 담은 이 앨범은 MONO라는 그 이름과 완벽히 어울린다.

 

올 가을에는 ‘지나가’라는 수록 곡을 정말 자주 들었다. 올해 중 가장 심란하고 지쳐 있던 시기에 온 감정을 여실히 드러내는 노랫말이 나를 참 많이도 위로했다.

 

청춘은 물론 아름답고, 나의 스물다섯을 분명 사랑했지만, 나 자신이 미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실패와 좌절이 자꾸만 누적되던 올 가을에는 유독 나를 사랑할 수 없었고, 불안에 떨어야 하는 모든 순간들이 너무 괴로웠다.

 

조금 치사하게도 이 노래의 주인이 스물다섯에 이런 가사를 썼다는 게 새삼스런 안도가 된다. 스물아홉이 된 그가 나름의 해답을 찾아 다정히 세상에 전해 주었듯이, 4년 뒤 나 역시 풀리지 않는 고뇌에서 벗어나 있기를.

 

지금의 나는 이 모든 고통들이 그저 지나가기 만을 바랄 뿐이다.

 

 

 

Outro: 스물다섯, 스물 하나 -자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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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날려 꽃이 지는 계절엔

아직도 너의 손을 잡은 듯 그런 듯 해

그때는 아직 네가 아름다운 걸

지금처럼 사무치게 알지 못했어

우 너의 향기가 바람에 실려 오네

우 영원할 줄 알았던

스물다섯 스물하나

 

 

어떤 곡을 스물다섯 마지막 곡으로 들을까 하다 결국 조금은 뻔하게 이 음악을 선곡했다.

 

스물하나가 될 때에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스물다섯이 되는 건 솔직히 반갑지 않았다. 마냥 철이 없기에는 반절이나 찬 시간이 부담스러워서 조금은 떨떠름하게 이 숫자를 받아들였다. 

 

올 때는 버선 발로 마중도 못한 주제에 가려니 질척이고픈 고약한 심술쟁이가 된 것 같다. ‘365’라는 숫자에 담기에는 막 정을 붙이면 떠나는 나이가 애석하다. 며칠 뒤에 나는 어색하게 ‘여섯’이라는 숫자를 입에 담겠지.

 

유난히 떠나 보내기 어려운 스물다섯이라 굳이 흘러가려는 시간을 이렇게 순간으로나마 붙잡아본다.

 

내가 가장 밉고도 사랑스러웠던 이 나이에 너무 많이 정이 들어버렸다. 그래도 늘 그랬듯 담백한 작별을 고해본다.

 

잘 가, 나의 스물다섯.

 

 

[김소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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