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싫어하는 것에 관해 말해봅시다 [도서]

도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글 입력 2022.12.30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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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도서 등의 호평을 남기다 보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보다 쓰고 나서 감정이 더 격해진 것을 느낀다. 쓰기 전에는 분명 ‘괜찮게 봤다’, ‘꽤 재밌었다’ 정도의 감상이었는데 후기를 쓰고 나서 정신을 차려보면 내가 무슨 무인도에 갈 때 챙겨갈 세 가지 물품 중 하나로 이 작품을 챙길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이는 생각을 정리하며 글을 쓰는 과정에서 좋았던 부분을 계속 곱씹다가 긍정적인 감상이 더욱 깊어졌기 때문일 테다.

이런 경험을 자주 하다 보니, 그렇다면 악평을 작성할 때는 부정적인 감상이 더욱 커지는 것인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한 번 악평을 써보기로 했다. 그 악평의 주인공은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되겠다.
 
 
 
화제의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책의 표지에는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라는 문장이 적혀 있다. 또한 띠지에서는 ‘전기와 과학, 철학, 자기 성찰의 감동적인 융합’이라고 말한다. 좀처럼 감이 오지 않는 책 소개에 궁금증만 커졌지만, 이 책이 한창 유행할 때는 책과 관련해 그 어떠한 정보도 미리 접하지 말고 읽으라는 말이 항상 덧붙여졌기에 나 또한 그렇게 했다.

그러나 이 후기를 읽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미 책을 읽은 사람들일 것이라고 가정하고 줄거리를 간단히 훑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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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저자 룰루 밀러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는다. 삶에서 마주하는 혼돈에 질려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하던 밀러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사람을 통해 힘을 얻는다.

조던은 스탠퍼드대학교의 초대 총장이자 생물 분류학자로, 몇천여 종의 어류를 식별해 목록화하며 대자연의 혼돈에 맞서 싸웠다. 그런 조던을 우상처럼 여기던 밀러는 그의 행적을 좇던 중,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된다. 조던은 열광적인 우생학자였다는 진실을.

제 우상의 실체를 알게 된 밀러는 큰 절망에 빠지지만, 다시 한번 일어선다. 조던이 일평생을 바친 ‘어류’라는 범주가 현대의 분류 체계에서는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접하면서, 밀러는 혼돈을 질서로 붙잡는 대신 혼돈의 이면에서 삶의 희망을 찾는 방법을 깨닫는다.
 
 
 
호평 속에서 악평하기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추천사도 화려하고 국내 서점에서도 베스트셀러 자리를 오랜 기간 차지했다. 애초에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도 좋아하는 북튜버가 극찬했기 때문이며 해당 동영상의 댓글에서도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나는 참 대중적인 취향을 가진 사람인데 이 책은 왜 나와 맞지 않는지 궁금해졌다.

내가 이 책을 재밌게 읽지 못한 이유는, 반대로 이 책이 호평받은 이유를 생각해보다가 찾을 수 있었다. 사실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주제는 그리 새로운 사실이 아닌데, 그럼에도 호평이 많았던 이유는 극적인 반전을 품은 책의 흐름 덕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밀러의 시점을 따라가며 그와 공감해야 한다. 밀러의 시선을 통해 조던을 차츰차츰 알아가며, 나 또한 조던에게서 희망을 얻어야 한다. 조던을 향한 존경심이 어느 정도 형성되어있어야 책 후반부에 등장하는 반전이 강렬하게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조던이 아직 밀러의 롤모델이던 시점의 서술에서도, 조던을 존경하지 못했고 그를 우상화하는 밀러도 이해할 수 없었다. 역사적 인물을 도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조던의 깨끗하지 못한 사생활을 무시하는 데 실패했다. 그래서 그를 향한 비호감이 조금씩 쌓이고 있었다.

조던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밀러가 그토록 감탄하던 조던의 강한 의지는 자기기만에서 나온다. 책에서는 이 점이 잠시나마 긍정적으로 비치지만, 나로서는 도통 납득이 가질 않아 떨떠름한 기분만 품은 채로 책장을 넘겼다. 조던을 존경하던 밀러에게 동의하지 못하는 나는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한 발짝, 아니 열 발짝쯤 떨어져 관전만 한 셈이다. 그렇다 보니 거대한 반전에도 미적지근한 반응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반전이 너무 뒤에 치우쳐 있다는 것도 부정적인 감상에 한몫했을 것이다. 이 책은 반전이 두 개라 할 수 있는데, 첫 번째 반전은 조던의 실체이고 두 번째 반전은 물고기의 부재다. 첫 번째 반전도 책의 절반을 한참 넘어서 등장하는데, 두 번째 반전은 아예 마지막 장에야 나온다. 첫 번째 반전이 내게 무의미하다시피 했던 만큼, 나는 두 번째 반전을 만나고 나서야 조금씩 재미를 느꼈는데 그러면 머지않아 책이 끝나버린다.

반전이라는 게 원래 이야기의 말미에 나오는 것이라지만 그건 책의 다른 부분도 재밌을 때의 이야기인데 나는 책의 앞부분이 지루했으므로 이 경우에는 좋은 반전으로 인정할 수 없다. 사막에서 한참을 달리다가 찾은 오아시스의 물이 한 모금뿐이라는 걸 알게 된 것과 비슷하다. 사막의 달리기가 좀 짧았더라면, 그러니까 앞부분의 이야기가 짧았더라면 이렇게 실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악평 속에서 호평하기


부정적인 평을 신나게 적었지만, 저자의 글쓰기 능력에 관해서는 반박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내게 재미는 주지 못했을지언정 다양한 시점과 소재를 오가는 여러 이야기를 매끄럽게 엮어내는 재주가 놀라웠고, 맘에 든 구절도 많았다. 

 

우리는 전에도 틀렸고, 앞으로도 틀리리라는 것. 진보로 나아가는 진정한 길은 확실성이 아니라 회의로, “수정 가능성이 열려 있는” 회의로 닦인다는 것.

 

p.250

 

 
우리는 영원히 유토피아에 닿지 않겠지만 항상 유토피아를 향해 움직일 것이고, 영원히 진리를 찾지 못하겠지만 계속해서 진리와 가까워질 것이라는 게 진보에 관한 내 생각인데, 상기한 인용문이 내 생각과 닮은 듯하면서도 달라서 인상적이었다. 우리의 현재가 쉬지 않고 움직인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유토피아와 진리의 변화 여부는 다르게 볼지도 모르겠다. 밀러라면, 절대불변할 것만 같은 유토피아와 진리 또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고 믿지 않을까.

밀러의 언니는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듣고도 “인간은 원래 곧잘 틀리잖아(p.252)라며 대수롭지 않게 반응한다. 그래, 인간이 틀리는 걸 하루 이틀 해보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오답을, 변화를, 혼돈을 반기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덜 두려워할 필요가 있다.
 
 
 
싫어하는 것에 관해 말해봅시다


내가 이제껏 악평을 쓰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나는 오답을 이야기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분명히 하자면, 어떤 작품이 잘못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뜻이 아니라 해당 작품의 특정 요소가 나와 맞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오답이라고 표현한다.) 나는 좋아하는 작품에 관해, 내가 선택한 정답에 관해서는 자주 이야기해왔다. 그 자체로 즐겁기도 하고 그 과정을 통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 잘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매우 유익한 시간임이 틀림없다.
 
마찬가지로, 싫어하는 작품을 이야기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 후기를 작성하면서 첫 번째로는, 내가 이 책의 어떤 부분이 싫었는지 정확하게 알아냈다. 앞으로는 이러한 형식을 가진 작품을 피하거나, 최소한 불편한 형식을 감당할 각오와 함께 감상을 시작할 것이다. 두 번째로는, 불호의 감정에 가려졌던, 책의 좋았던 일부분을 다시 찾아냈다. 악평을 쓰기 위해 책을 뒤적이다 보니 내가 밑줄을 그어놓은 문장이 꽤 많이 보였다. 재미없는 책이라고 처박아두기만 하느라 그런 부분들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그대로 잊고 살았다면 정말 아쉬웠을 구절들이다.
 
처음에 제기했던 의문으로 돌아가서, ‘악평을 작성하면 부정적인 감상이 더욱 커지는가?’라는 질문의 답변은 일단 ‘예’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제 이 책은 내 책장의 조금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갈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추가 질문으로 ‘악평을 작성하면서 긍정적인 감상이 추가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이 답변 또한 ‘예’이다. 사실 어떤 작품을 감상하는데 그걸 처음부터 끝까지 모조리 싫어하기란 참 어렵다. 장면 하나라도, 문장 하나라도 맘에 드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다만 불호의 색이 워낙 짙다 보니 그런 미세한 호감의 존재는 놓치게 된다. 하지만 후기를 쓰며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은 불호의 색을 다른 것으로부터 선명히 분리해내고, 그렇게 떨어져나온 호감이 조금 더 빛날 기회를 제공한다.

"원래 곧잘 틀린다"는 인간의 특성은, 내 취향이라는 시험지에도 적용된다. 지금은 오답이었던 것이 나중에 보면 정답일 수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오늘 별로였던 책이 내년에 다시 읽으면 맘에 들지도 모른다. 재미없었던 영화 안에서 멋진 대사 한 줄을 찾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 번 오답 판정을 받았다고 대충 묻어두고 사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그 정답이 될 오답에도, 좋은 것은 하나라도 더 끌어모으고 싶은 우리에게도. 그래서 우리는, 오답과 변화, 그리고 혼돈을 다시 들춰볼 용기를 지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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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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