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덕업일치의 세계를 여행하기 -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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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63> 전은 전시 이름에서 힌트를 주듯 63빌딩에서 열린다.
지방 출신의 사람으로서 기차를 타고 서울에 갈 때마다 창밖으로 63빌딩과 쌍둥이 빌딩을 찾았던 기억이 있다. 처음으로 63빌딩에 가고 전망대에서 전시를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은근한 설렘이 있었다.
심지어 평소 좋아하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재해석 그림이라니!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마녀], [설국열차], [살인의 추억] 등의 작품을 그림으로 볼 수 있다니!
쏟아지는 킥에 정신이 없었다.
전시는 세 개의 막으로 구성되고, 막이 바뀔 때마다 상이한 테마로 진행되어 영화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이에 맥스 달튼의 작품 세계를 세 가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첫 번째 막은, 영화의 순간들(Moments in Film)로 80~90년대에 한 획을 그은 영화들을 한 장의 종이에 담는 작품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이터널 선샤인]의 장면들을 커다란 집 안에 방으로 구획을 나눠 표현한다. 눈 쌓인 빙판에는 클레멘타인과 조엘이 누워있고 지붕에는 서커스 코끼리가 있는 식이다.
방마다 영화의 장면들과 소품이 제 자리인 것처럼 놓여 있으며 영화의 각 장을 떠올리게 한다. 맥스 달튼 시각의 영화 내용 한판 정리라 할 수 있겠다.
따뜻하고 빈티지한 색감이 작품을 보는 재미를 더했다.
이터널 선샤인
레옹
두 번째 막은, 웨스 앤더슨 컬렉션(The Wes anderson Collection)으로 영화 감독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오마주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프렌치 디스패치] 등의 작품들을 재해석하는데 강박적일 정도로 대칭이 완벽한 구도를 살리면서도 자신만의 위트를 더해서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어 냈다.
반짝이는 네온사인으로 부다페스트 호텔을 소개하는 파트에서는 균형감과 아름다움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르 상 블라그 (『웨스 앤더슨 컬렉션: 프렌치 디스패치』 내지)
세 번째 막, 맥스의 순간들(Moments in Max)에서는 작가의 작품 세계에 영향을 준 음악, 화가, 그림책 등 영감의 원천을 엿볼 수 있다.
뮤지션을 꿈꾼 적까지 있었던 맥스는 '비틀즈', '찰리 파커'와 같은 80~90년대 록 밴드와 재즈 음악가의 앨범에 헌정하며 LP의 커버를 그렸다. 또한 빈티지 그림책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기도 한 작가는 ‘외톨이 공중전화기’ 등 자신이 그림을 그린 책을 소개하기도 한다.
‘화가의 작업실’ 시리즈에서는 '모네', '프리다 칼로' 등 존경하는 화가들의 작업실을 현대적 일러스트로 그려낸다.
비틀즈: 루프탑에서
화가의 작업실 - 앤디 워홀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외국인의 시선에서 그린 작품들도 재미있었지만(작품에 등장하는 가게 간판의 글씨를 말 그대로 ‘그린’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의외로 제일 인상 깊었던 건 세 번째 막이었다. 끝막이라 해서 의도적으로 힘을 준 기획은 아닌 것 같아 보였는데, 가장 작가에 대해 많은 정보를 담고 있었다.
맥스 달튼이 좋아했던 아티스트, 자기 취향으로 그린 책, 존경하는 화가 등 그의 작품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친 원천을 볼 수 있었다.
취향이 그 사람의 다양성을 보여준다면, 맥스 달튼은 그가 거쳤던 여러 직업만큼이나 굉장히 넓은 문화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인 듯했다. 또 3막의 작품들은 누가 요청해서가 아니라 정말 자발적으로 그린 그림인 것 같아서 더 편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전시 내내 가장 많이 든 생각은 맥스 달튼이 너무 부럽다는 것이었는데, 그는 덕업일치를 이룬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서 소비한 콘텐츠로 또다시 유의미한 무언가를 재생산하는 것은 창작자들의 꿈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것이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는다면 정말 더할 나위 없다.
소비가 생산으로 곧장 이어지는, 창조 경제와도 같은 구조를 만든 작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자신이 좋아하는 감독인 웨스 앤더슨의 컬렉션 북에 일러스트레이터로 참여하게 된 건 멋진 덕후의 표본이라 할 수 있겠다.
전방위로 덕질하는 사람, 성덕 중의 성덕, 맥스 달튼. 그의 작품 세계를 엿보고 창조적 소비자가 되는 방법을 간접적으로 전수 받을 수 있다. 관객에게 그림을 그리고 싶게 만드는 전시였던 것 같다. 또한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영화들의 해석을 보며 나에게 그 영화가 준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다.
함께 간 동행인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영화에 얽힌 일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따뜻한 시간이었다.
[고승희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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