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응급실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병원 한 번에 무언가가 달라진다
글 입력 2022.12.19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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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 오후 4시였다.

 

아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다가 입장하려고 줄을 섰는데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빠가 어느 병원 응급실에 갔다는 짧은 내용이었다. 잠시 멍하게 있다가 입장이 시작되어서 일단 들어갔다가 다시 또 멍하게 있다가 돌아나 왔다. 사람들한테 일이 생겨서 그만 가봐야 한다는 얘기하고 무작정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병원까지 가는 길을 검색해보다가 큰길에서 택시를 잡았다. 다행인지 병원이 위치한 지역을 잘 아는 기사님이었다.


길은 생각보다 많이 막혔다. 주말이라서 그랬는지 원래 그 길이 막히는 건지 아무리 가도 병원이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송년회에 간 아빠와 각자 볼 일이 있었던 나와 오빠, 그리고 집에 있던 엄마. 모두가 가 본 적 없는 병원의 응급실로 향했다.


목적지까지 20분 정도 남았을 때,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빠가 급성심근경색으로 응급실에 와 있고 이제 시술하러 들어간다고. 응급실 말고 정문으로 들어오라는 이야기였다. 아직 갈 길이 남았으니 핸드폰으로 검색해봤다. 심근경색이 어떤 건지, 스텐트 시술이 무엇인지. 응급실이란 이야기도 현실감이 없었는데 심근경색이라니 날벼락 같은 이야기였다.


엄마의 두 번의 수술 후 우리 가족은 건강에 예민해졌다. 병원에서 검사받는 걸 꺼리지 않고, 권유하지 않는 검사를 받기도 했다. 돈을 주고 확신을 얻는 일이 병을 키우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급성 심근경색은 어떻게 대비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병원에 도착해서 정신없이 응급실 방향을 찾아가자 복도에 서 있는 엄마가 보였다. 시술이 금방 끝날 거라며, 근처에 있으라는 의료진의 얘기에 엄마는 의자도 없는 복도에 계속 서 있었다. 기껏해야 어디 염증이 생겨서 응급실에 간 줄 알고 병원으로 향하던 엄마는 급성심근경색이란 이야기에 근처 병원으로 옮겨서 시술받아야 하나 고민했는데 병원에 도착하니 바로 시술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고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로 금방 끝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 어떤 전조증상도 없었다. 바로 전날 등이 아프다고 했지만 내가 어릴 때부터 아빠는 등이 자주 아프다고 했었고 체하거나 가슴 통증 같은 보편적인 증상이 아무것도 없었다. 친구들을 만나 식사를 시작하려는 때 구토가 시작되었고 통증을 호소하고 얼굴이 노래졌다고 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심각성을 느낀 아빠 친구분들이 직접 병원에 데려가는 대신 구급차를 불렀고 아빠는 의식이 있는 상태로 병원에 도착해서 시술까지 진행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병원을 향하는 동안 심정지가 왔던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은 상태라서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아빠의 시술이 끝나고 엄마와 같이 들어가서 시술 경과 이야기를 들었다. 세 개의 큰 혈관이 있는데 하필이면 한쪽 덜 튼튼한 혈관에 혈전이 생겨서 막혔었다고. 시술을 통해서 뚫었지만 바로 심장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건 아니라고, 어디까지 회복될지는 잘 모른다고 했다. 중환자실에 자리가 없어서 다음 날 새벽까지는 응급실에 있어야 할 것 같고, 5일 정도 입원하며 경과를 지켜볼 예정이라고 했다.


시술이 끝나고 나온 아빠는 며칠은 입원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바로 퇴원해도 될 것 같다는 농담을 했다. 어수선한 응급실, 보호자는 한 명만 있을 수 있어서 가족끼리 잠깐의 시간을 보내고 돌아 나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뭘 해야 할지 찾아봤다. 간호병동으로 가는지, 상주 보호자가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하는지, 보호자 교체가 가능한지,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집에 돌아와서 짐을 쌌다. 한 번 해본 적 있다고 헤매지 않고 바로 캐리어를 꺼내서 짐을 챙겼다. 보호자 이불, 세면도구, 드라이샴푸, 수건, 슬리퍼, 물통, 휴지 등 기억나는 건 모두 꺼내 넣었다.


다음 날 아침 출근길에 아빠가 간호 통합병동으로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필요한 건 병실 올라갈 때 대부분 샀고 면회가 되지 않으니 만나려거든 1층 로비에서 잠깐 보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아빠에게 필요한 게 있으면 연락하라고 했는데 퇴원할 때까지 병원에 가는 일은 없었다.


간호병동은 생각보다 괜찮았다고 한다. 간호사가 하루에 열 번은 오가며 상태와 상황을 봤고, 환자가 식사를 퇴식구에 넣으러 가지 않아도 되니 편하다고 했다. 세심하게 신경 써준 게 고마워서 아빠는 마지막 날 간호사들에게 음료수를 돌렸다고 했다. 정말이지 여러모로 다행이었다.


부모님이 나이 들고 시골로 내려가서 잘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할 때마다 나는 사람은 나이 들수록 병원 많은 곳에 살아야 한다고 얘기했다. 우리 동네 병원 많아서 뭐만 하면 나가서 진료받으면 되지 않냐고, 병원 외래 보려고 왕복 몇 시간을 오가려면 힘든데 뭐 하러 그런 데로 들어가냐고 타박했다. 이제 부모님은 앞으로 송년회를 할 거면 서울 도심에서 하라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노후에 공기 좋은 곳에 내려간다는 막연한 미래를 지웠다. 막연한 미래와 함께 '나중에'를 기약했던 몇 가지도 사라진 것 같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가까이 있었던 그런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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