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른의 재정의 - 三十而已 [드라마]

글 입력 2022.12.16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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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지나치게 나이에 많은 의미를 둔다. ‘스물’, ‘서른’, ‘마흔’을 주제로 한 책이 꾸준히 출판되며 마치 이 시기에 무언가를 이루지 못하면 실패자처럼 서술한다. ‘서른’은 그저 세월의 결과일 뿐인데 자꾸 서른에 자격을 묻는다.

 

특히나 서른은 유독 여성에게 가혹하다. 2005년에 방영했던 <내 이름은 김삼순>의 주인공 김삼순은 뚱뚱하고 못생긴 ‘노처녀’로 묘사했지만, 사실 김삼순의 나이는 고작 서른이었다. 2017년 방영한 국내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서른 살의 세 여성을 다루었지만, 결국 로맨스에 집중했다. 서른의 여성은 굳이 한 남자에게 정착해야만 할까. 이 의문을 중국 스튜디오 린먼픽처스(柠檬影业)가 2020년에 제작한 드라마 <三十而已>를 중심으로 다루고자 한다.

 

 

 

드라마 속 여성과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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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十而已>는 상하이에 사는 서른 살 세 여성이 중심인물이다. 주부인 ‘구자’, 마케팅팀 직원 ‘샤오친’, 그리고 의류 브랜드 매장 판매 직원인 ‘왕만니’이다.

 

‘구자’는 상하이 고급 아파트에 사는 기혼 여성이다. 남편과 함께 불꽃 디자인 회사를 창업했으나 현재는 남편만 사장이고 전업주부로 아들을 키운다. 그는 완벽주의자로 늘 “높은 곳”만을 바라보며 달려왔다. 전업주부지만, 여전히 회사에서 입김이 세며 감정적인 남편을 대신해서 회사의 위기를 자주 수습한다. 남편뿐만 아니라 자식 교육에도 열정적이다. 그는 아들의 명문 유치원 입학을 위해 무리하게 대출하여 고급 아파트로 이사 간다. 상대의 호불호를 파악하여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다.

 

‘샤오친’은 구자의 대학 동기이다. 그는 상하이의 작지만 아기자기한 인테리어의 빌라에서 남편과 함께 살고 회사 마케팅팀에서 근무한다. 회사에서 ‘샤오친’은 마치 심부름꾼 같다. 모두가 샤오친에게 사소한 일을 부탁하며 샤오친은 순순히 그들의 부탁을 들어준다. 샤오친의 순종적인 삶은 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샤오친은 남편이 5년 동안 아이를 갖지 말자는 말에 수긍하고 샤오친은 고양이를 남편은 물고기를 자식처럼 아끼며 지내지만, 부부 생활은 점차 연애 때와는 다르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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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결혼 전에는 부모님에게, 결혼 후에는 남편에게 의존하며 살았다. 사소한 고민거리도 부모나 친구에게 털어놓는 탓에 남편은 샤오친이 정신적인 독립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부부의 계획과는 다르게 샤오친이 임신하게 되면서 샤오친은 처음으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아이를 낳을 것인지 말 것인지. 그러나 출산조차 “이렇게 큰일을 내가 어떻게 결정해?”라고 말하며 남편과 친구의 의견에 기댈 뿐이다.

 

샤오친은 처음에는 남편의 의견에 따라 아이를 지우려고 하지만, 결국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다. 반기지 않는 남편의 반응에도 행복했지만, 샤오친은 유산하면서 정신적으로 무너진다. 아이를 잃었어도 딱히 슬픈 내색 없이 키우던 물고기를 더 신경 쓰는 모습에 실망하고, 부부관계가 더 나아지기 위해 애쓰지만, 정작 필요할 때면 남편은 늘 곁에 없었다. 남편은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결혼을 택했다고 말하자 샤오친은 서른 살 생일 다음 날 이혼을 택한다.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이혼으로 정신적 독립을 이룬다. 구자 역시 샤오친에게 가장 필요한 게 독립이라고 말한다. 그의 욕망은 사랑만이 아니다. 임신했을 때는 일을 쉴 거로 생각해 승진 제안을 거절했지만, 유산 후 처음으로 대표에게 찾아가 일을 더 잘 할 수 있으니 다음 승진 대상에 고려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는 이혼을 통해 처음으로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아내가 아닌 개인의 업무적 성공을 바라게 된다.

 

‘왕만니’는 상하이의 고급 브랜드 의류 매장 판매 직원으로 늘 우수한 실적으로 동료 직원들에게 선망과 질투를 동시에 받는다. 직업의식이 뛰어나 절대 고객과 사적으로 친해지지 않는다. 심한 질투로 결국 회사 포인트를 몰래 개인적으로 사용했다는 누명을 받지만, 우연히 샤오친의 증언으로 위기에서 벗어나 직장에서 잘릴 위기에서 벗어난다. 이 덕분에 샤오친과 친해지며 구자에게도 명품 가방을 구해줘 처음으로 고객과 친해진다.

 

그는 시골에 있는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여 홀로 원룸과 비슷한 공간에 살고 있다. 왕만니는 구자나 샤오친과는 다르게 자기만의 방이 없다. 원룸에 살며 계약 기간이 끝나면 다시 지낼 집을 구해야 한다. 그는 8년째 상하이에서 살고 있지만, 늘 불안정한 미래를 두려워한다. 매달 부모에게 생활비를 보태면서 절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강인한 인물이다.

 

왕만니는 여성 노동자의 대표성이 돋보인다. 실적이 상위권인 만큼 그가 느끼는 감정 노동은 심해진다. 승진을 위해 동료와 경쟁해야만 하며 그사이에는 모함과 범죄가 오갔다. 고객에게 원활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최우선이었던 그였지만, 부점장 승진 앞에서 업무 경험도 부족한 일명 ‘낙하산’ 인물에게 밀린다. 남성 고객의 추파는 일상이다. 이를 거절하면 남성은 곧장 나이 서른에 판매원이라는 직업을 들먹이며 그를 깎아내려 한다.

 

이를 벗어나 고향으로 갔지만, 상사로부터 은근히 결혼을 압박받으며 서른부터 여성의 가치는 떨어진다는 말을 듣는다. 겨우 상하이에 돌아와서 다닌 회사에서도 남성 상사에게 외모 품평을 당한다. 주변 환경이 커리어에 욕심이 있는 왕만니를 ‘서른 살 미혼의 여성’으로 품평하여 그를 압박한다. 서른 살의 여성에게만 유독 박한 주변 환경을 <三十而已>는 여성 감정 노동자 왕만니를 통해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서른’의 재정의


 

공자는 서른에는 자립한다는 말을 남겼다. 여기에서 자립은 아마 경제적, 심리적 등의 환경적인 요인을 갖춘 상태를 말한다. <三十而已>는 三十而立을 신이 공평하게 서른이 된 모든 사람에게 특별한 기회를 준다는 의미로 풀이했다. 그러나 주변 서른 살, 혹은 당신의 서른을 떠올려보자. 모든 서른 살이 자립하지는 않는다.

 

과거의 서른과 현대의 서른은 다르다는 것을, <三十而已>에서는 三十而立의 ‘立’을 ‘已’로 바꾸어 서른을 다시 설명한다. 위대하신 공자의 말씀을 반박한다. 우리는 “서른에 자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겨우” 서른일 뿐이라며 서른의 여성을 전면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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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서른 살 여성에게 많은 것을 바라면서 동시에 포기한다. 서른이면 ‘어른’의 조건을 다 갖추어야 하지만, 경쟁 시장에서는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샤오친이 다니는 회사에서 가장 기피하는 직원은 30대 기혼 여성이다. 그들의 임신 가능성 때문이다. 회사는 이들의 업무 효율이 “커피 머신”보다 떨어진다고 평가한다. 중국이 둘째 낳기를 허용하면서 그 리스크가 급증했다. 가장 좋은 여성은 이미 둘째까지 낳은 여성이지만, 사실 그때까지 회사를 버티기란 쉽지 않다. 마흔 살까지 승진이 안 되면 자동 해고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서른은 마치 여성의 마지노선처럼 비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인식이라고 드라마는 구자의 대사를 통해 반박한다. 구자는 30살이 되면 집, 저축, 아이가 있어야 하는, 그걸 이루지 못하면 퇴로라며 이것이 잘못된 관념이라 말한다. 30살 생일 이후가 경고장인 것처럼 마치 “30살이 되는 그날 갑자기 폭발하면서 퇴로가 100개는 생기고 앞으로 나아갈 길은 하나도 없는 줄” 아는 현실을 비판한다. 드라마는 세 인물의 행보를 통해 어떤 상황에 부닥친 여성이든 모두 꿈을 좇을 권리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공간적 배경: 꿈의 도시, 상하이(上海)


 

왜 <三十而已>의 공간적 배경은 베이징(北京)이 아닌 상하이(上海)일까. 상하이는 양쯔강에서 바다(海)로 나가는(上) 곳에 있다. 즉, 더 큰 세계로 가는 입구이다. 최대 증권 거래소와 다국적 기업 중국 지사들도 대부분 상하이에 있다. 즉, 상하이는 부의 상징적 공간으로 계층의 이동이 가능한 ‘기회의 땅’이다.


구자는 상하이 중심지의 고급 아파트로 이사한다. 아이의 명문 유치원 입학 때문이다. 그는 폭죽 회사 대표의 창업자이자 아내로 이미 주변에서는 성공한 인물로 비치지만, 그는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계층이 더 높은 곳을 바라본다. 그러나 남편 회사 공장에 불이 나고 회사를 문 닫아야 할 위기에 처하자 그는 집을 처분한다. 그리고 펜트하우스에 살던 여성에게 집에 있던 모네의 그림이 가품인 사실을 듣고 상류층을 바라던 목표가 허상이었음을 깨닫는다. 또 그가 공장 화재로 위로금 및 직원 퇴직금 등으로 금전적으로 곤란할 때 그의 사업이자 차를 생산하던 마을 사람들이 돈을 모아 그에게 도움을 준다.

 

상하이 고급 아파트에서의 안정적인 삶을 꿈꾸던 구자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된 건 정작 상하이 밖 시골 마을 사람들이었다. 그는 상하이를 떠나 차를 생산하던 시골에서 머물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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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가 상하이 중심지로 이동하기 위해 애썼다면, 왕만니는 상하이에서 버티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왕만니는 8년 전부터 독립하여 상하이에서 홀로 살고 있지만, 소속감이 들지 못한다. 화려한 상하이에 온전한 집이 없는 상황이 평생 이어질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결국 왕만니는 고향으로 다시 돌아간다. 20대를 바친 도시에서 벗어나지만, 왕만니는 고향 마을이 편하면서도 계속 상하이의 삶을 떠올린다. 결국 왕만니는 다시 상하이로 돌아가면서 회사에 취직한다. 불가능할 줄 알았던 일을 해내고, 심지어 자기를 부당 해고하려 했던 본부장의 비리를 목격해 그의 행적을 고발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왕만니는 상하이에서 지점장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무렵 깨닫는다. 세상의 중심은 상하이만이 아니라는 것을.

 

드라마는 상하이를 기회의 땅으로 그려냈지만, 마지막에는 왕만니의 행보로 그 사고를 뒤튼다. 왕만니는 영국으로 유학을 결심한다. 지금까지 왕만니는 상하이에서 버티는 것만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상하이 회사에 다니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자기 목표에만 집착하여 상하이에 속박되었다고 느낀다. 그는 많은 사람과 세상을 만나기 위해, 상하이의 안정적인 직업을 포기하고 영국으로 떠난다. 그는 급하게 앞길을 정할 필요가 없고, 한 도시에 발 묶여 살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줄곧 상하이에서 머물고 싶어 했던 그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간다.

 

 

 

스물과 서른이 만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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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린먼픽처스는 2020년 드라마 <二十不惑>과 <三十而已>를 비슷한 시기에 방영했다. 세 여성은 스무 살의 네 여성을 드라마 중반이자, <二十不惑>의 마지막 화에서 처음 만난다. 서른 살의 세 여성이 스무 살을 추억하며 수업을 청강하러 들렀기 때문이다.

 

그들은 같은 시간 선에서 스물과 서른으로 살아간다. 도강으로 수업을 듣던 <三十而已>의 세 여성은 스무 살의 네 여성이 서른이 되길 두렵다며 불평하는 말들을 듣고 웃음을 터트리며 서른 살이 무슨 아줌마냐고 말한다. 그들을 보며 스물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본다. 그들은 스물을 추억하고 혹은 서른을 기대한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사실 크게 다르지 않았다. 즉, 두 드라마를 통해 나이는, 특정한 숫자는 삶에 큰 의미가 없음을 말한다.

 

그들은 서른 살이란 청춘을 앗아갈 나이일 뿐이며 숫자가 앞을 향해 나아갈 속도와 멈출 순간을 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여성들은 서른이라는 분기점 때문이 아니라, 세월에서 얻는 경험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추구할 동력을 얻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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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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