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하드보일드의 고전 - 빅 슬립 [도서/문학]

하드보일드란 무엇인가
글 입력 2022.12.1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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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 담배, 권총 그리고 사립탐정. <빅 슬립>의 저자 레이먼드 챈들러는 하드보일드의 전형을 정착시킨 작가다. 그는 펄프 픽션에 불과했던 하드보일드 장르를 문학의 영역까지 끌어올린 작가로 평가받으며 <빅 슬립>은 미국 문학사의 고전이 되었다.


하드보일드 장르는 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레이먼드 챈들러의 작품은 이 장르의 영역에 어떤 영향력을 남겼을까.


코난 도일, 아가사 크리스티, 반 다인 등으로 대표되는 고전적 추리 소설은 작가가 늘어놓은 증거를 바탕으로 탐정과 독자가 함께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일종의 지적 유희 장르다. 탐정은 정교하게 짜인 거짓을 한 장 씩 걷어내고 그의 지적 역량이 독자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렇게 세밀한 시계장치 같은 글의 구성이 추리 소설 장르가 독자에게 어필하는 특징이다.


하드보일드 장르는 추리 소설의 대전제를 따르고 있지만 기발한 속임수나 탐정의 비상한 두뇌는 부각되지 않는다. 대신 폭력, 섹스, 범죄 같은 자극적인 묘사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책에서 눈을 때지 못하게 만든다. 상기한 이유로 인해 하드보일드 장르는 한동안 펄프 픽션 즉, 오락에 불과한 소모적인 글로 취급되었다.


이같은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레이먼드 챈들러의 등단은 하드보일드가 문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는 소설에 탐미적 수사와 매력적인 캐릭터 그리고 도덕성에 대한 질문을 넣으며 하드보일드란 장르의 고전을 탄생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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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챈들러



챈들러는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했을 만큼 영화적 장면 묘사에 탁월했다. 그는 사진처럼 선명하게 장면을 묘사하며 한 단어는 하나의 픽셀이 되어 독자의 머릿속에 소설 속 풍경을 그린다. 아낌없이 펼쳐지는 작가의 문학적 기량은 당시 양산된 하드보일드와 괘를 달리했다.


그의 묘사력은 인간 관계의 감정적 변화를 보여주는 부분에서도 일가견을 드러낸다. 숙련된 필력과 심리에 대한 통찰은 <빅 슬립> 그리고 레이먼드 챈들러가 대중과 평론가로 하여금 높은 평가를 내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챈들러의 성공을 논할 때 가장 중요하고 절대 빠지지 않는 것은 바로 그가 창조한 캐릭터 ‘필립 말로’다.


추리소설 주인공의 전형을 이야기 할 때 ‘셜록 홈즈’가 반드시 거론되는 것 처럼 하드보일드 소설 주인공의 전형에서 ‘필립 말로’는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어쩌면 챈들러 이후 모든 하드보일드 장르의 주인공은 필립 말로의 반복일지도 모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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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한 탐정, 필립 말로


 

소설의 주인공 필립 말로는 사립탐정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의 의뢰인은 대부분 수상한 내력을 숨긴 자산가다. 그는 의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사건 이면에 숨겨진 인간의 악덕을 마주한다.

 

작중 그가 맞닥뜨리는 폭력과 범죄와 뇌쇄적인 여자들은 여타 하드보일드 소설과 다를게 없어보이지만 이 모든 것을 조감하는 필립 말로의 냉소적인 시선과 이에 대해 행동하는 그의 양심이 챈들러 소설의 차별점이다.

 

도시는 무절제와 사리사욕으로 점철되어 타락했다. 그 속의 구성원들 또한 잇속을 챙기기 위해 부도덕을 개의치 않는다. 필립 말로는 사회의 개변을 부르짖는 영웅적 운동가가 아니다. 다만 그는 도시의 진창 속을 걸으면서도 때묻지 않기 위해 양심이란 각반을 차는 인간이다.


사건을 통해 마주하는 악행이 몇 줄의 설교로 교정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임을 알기에 필립 말로는 조용히 냉소적인 사색을 펼친다. 허나 침묵으로 일관하지 않고 그것이 잘못된 일임을 지적하는데 주저치 않는다. 그것이 아무리 강한 권력자의 앞이라도 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악행으로 인해 고통받는 약자를 좌시하지 않는다. 팔을 뻗어 닿을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통해 한 인간을 보호하는 모습은 행동으로 구현되는 양심이기에 필립 말로의 모험을 범죄 활극에서 영웅적 서사로 승화시킨다. 이토록 냉소적인 심리와 상반되는 양심적 행동은 이율배반적인 매력으로 주인공을 감싸며 그가 불후의 캐릭터로 남게 만들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20세기 중반 미국은 물질적 가치가 팽배하여 도덕적 가치가 옅게 희석된지 오래다. 이렇게 근대화가 이뤄진 시대 속에서 고전적인 기사도를 지키는 필립 말로는 시대착오적인 낭만을 망토처럼 두른 기사다. 바로 이 지점이 챈들러의 하드보일드를 읽어야 할 이유이자 그의 소설이 미국의 기사도 문학으로 남게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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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현대 하드보일드 장르는 넓게 가지를 뻗치며 다양한 변주와 반복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제공하고 있다. 장르가 이미 장족의 발전을 거쳤음에도 20세기 고전이 된 <빅 슬립>을 추천하는 이유를 들자면 그것이 지금까지도 재밌기 때문이다.

 

감춰진 진실, 적대적인 분위기가 주는 서스펜스 그리고 주어진 난관을 스타일리쉬하게 넘기는 우리의 주인공, 필립 말로. 하드보일드의 매력을 시험해보고 싶다면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을 꼭 읽어보시라.

 

 

[박형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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