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와인에도, 인생에도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해 [영화]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글 입력 2022.12.13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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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을 유심히 들여다볼 때면 공통점이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것 중에서는 커피와 와인이 그렇다.


혹시 떼루아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네이버 어학 사전에 따르면 “와인의 원료가 되는 포도를 생산하는 데 영향을 주는 토양, 기후 따위의 조건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그리고 이는 커피의 원료가 되는 원두에도 같은 뜻으로 쓴다.


떼루아가 다르기 때문에 생산지마다 가지는 맛의 개성 또한 다르다. 그 특징을 강하게 살려 하나의 품종으로만 음료를 만들기도 하고, 다양한 품종을 섞어 맛을 보완하기도 한다. 와인을 좋아하지만 어렵게 생각했던 사람으로서 습관처럼 마시는 커피와 공통점을 찾고 보니 와인도 어렵지 않아졌다.


그러다 와이너리를 배경으로 한 웹툰 '키미앤조이'를 보게 되었다. 웹툰 속 주인공은 휴식을 취하러 프랑스의 시골에 도착하고, 포도 수확에 참여하게 된다.

 

넓은 논밭의 쌀을 기계가 수확하듯이 포도밭도 기계가 수확할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포도가 터지거나 덜 익은 것, 잎, 줄기 등이 혼합되기 쉬워 사람이 딴 것과 확연하게 품질 차이가 난다고 한다. 사람들을 모아 일정 기간동안 수확을 진행하는 웹툰 속 장면을 보고 매우 놀랐다.

 

 


 

 

와이너리 관련 콘텐츠를 더 찾아보던 중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이라는 영화를 감상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10년만에 집에 돌아온 첫째 장, 대를 이어 와인을 만들게 된 둘째 줄리엣, 결혼 후 장인어른에게 시달리고 있는 막내 제레미까지. 세 남매가 아버지의 장례 이후 상속세를 내기 위해, 각자의 인생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실제 수확과 얼마나 차이가 날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한 데 모여 잠들고, 일어나고, 포도를 따고, 고된 일정 끝에 파티를 즐기는 모습은 노동의 소중함을 보여준다. 아직도 포도를 밟아서 으깨는 곳이 있다고는 들었는데 그 모습을 영화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다리를 담가 포도를 으깨는 장면에서 사람들이 와인에 잔뜩 취한 모습이 연상되기도 했다.

 

와이너리를 알고 와인을 마시는 것은 혀에 직접 닿는 맛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최근 ‘라이트 마이 파이어’라는 와인을 마셨는데, 이 와인의 와이너리 ‘와인즈 앤 로지스’는 록 밴드 ‘건즈 앤 로지스’에서 따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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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포도의 어두운 면이라는 위트있는 문구와 함께 판매하는 와인의 로고가 나열되어 있다. 와인과 롹앤롤을 사랑하는 다섯 명의 친구들이 만든 와이너리로, 혁신적인 와인을 오래오래 생산하고 싶은 것 같다.


‘라이트 마이 파이어’는 혁신이란 단어에 어울리게 강렬한 타닌이 도드라지는 와인이다. 무게감이 타닌을 잘 받쳐주어서 타격감이 있는 맛임에도 부담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록 밴드 ‘더 도어스’의 노래 ‘라이트 마이 파이어’의 이름을 따서 만든 만큼 일렉 기타가 연상되는 짜릿한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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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엣은 하고 싶은 게 명확하고 똑 부러지는 성격이다. 와이너리를 물려받으면서 아버지가 하던 방식과는 전혀 다르게 와인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그의 선택에 따라 가지를 많이 쳐내지 않고 만든 와인은 평범하지 않고 특색을 가진다. 만든 사람의 성격처럼 섬세하면서도 맛과 향이 명확할 것 같아서 정말 마셔보고 싶었다. 와이너리를 알면 와인이 보인다는 말을 영화를 통해 다시금 곱씹을 수 있었다.


장남 장은 아내와 떨어져 있으면서 사랑에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동시에 동생들과 함께 와인을 만들며 이곳도 또 다른 자기 집임을 느낀다. 막내 제레미 또한 장인어른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며 아내와 함께 새로운 곳으로 떠난다.

 

세 남매는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앞날을 예측하며 와인을 만드는 방식을 선택하고, 인생의 갈림길을 걸어간다.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은 제목 그대로 와인에서 자신의 인생을 찾아가는 장면들을 보여준다.


커피와 와인처럼 나의 특색을 강렬하게 살리는 때가 있는가 하면 다른 사람들과 어우러져 단점을 보완해야 하는 때가 있다. 두 방식 모두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양분이다. 계절을 보내며 일군 일상이 쌓이고 쌓여서 숙성된 인생이 될 것이다. 와인도, 인생에도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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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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