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아파했다

어느 약한 사람의 이야기
글 입력 2022.12.06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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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나는 '약하더라도 괜찮다'는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적어두고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은 그런 말을 어디서 봤는지 기억도 못하고 그때의 내가 어떤 감정이었는지 추측만 할 뿐이지만, 그 말이 위로가 되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는 자신이 약하다는 걸 남들에게 스스럼없이 말하는 사람을 멋있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사회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걸 기꺼이 드러내는 사람을 보면 멋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그게 약하고 강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 성향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어릴 때는 약한 걸 약하다고 말하는 건 약한 사람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멋있는 건 강한 사람의 일인줄 알았고 약한 건 힘드니까 강해져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상처 받은 만큼, 눈물 흘린 만큼 강해진다는 말을 믿어서 시간이 제법 흐르고서야 약하고 멋있는 사람의 멋짐을 알게 되었다.

 

 


약한 건 나쁜 것도 아니고 잘못된 것도 아니다. 


  

왜 이렇게 사람의 나약함에 대해 이야기를 하냐면 내가 약한 사람이라서.

 

학생 때는 ‘회사 생활 잘 못할 것 같다’는 소리를, 초면의 면접관에게는 '뭐라고 하면 금방 울 것 같다'는 소리를 들었고, 사회에서 알게 된 사람이 '마음이 여려서 어쩌냐'는 말을 했다고 전해 들었으니 오랜 시간 '유약한 성정'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아무튼 내가 약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로 인한 일상에 불편함이 있지만 굳이 개선할 생각은 없다. 약한 건 나쁜 게 아니고 잘못된 것도 아니니까.


다만 세상살이가 쉽지 않고 살다보면 어디선가 난데없이 이상한 사람이 튀어나오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상처받는 순간이 생긴다. 저쪽은 발 뻗고 편하게 자는데 나는 힘들고 속상하고 서럽다. 잘못은 쟤가 했는데 내가 아프다. 그게 억울하면 그 정도 일에는 상처받지 않을 정도로 강해지거나 아니면 반대로 잘못한 게 없으니 있는 그대로 살아가기를 선택하면 된다.

 

두 갈림길 사이에서 고민을 했는데 강해지는 건 어려웠고 그대로 살아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갈팡질팡 하는 사이 사회가 나를 담금질했고 뜻하지 않게 레벨업이 진행되었다.

 

 

 

그 사람에 대한 한 가지 키워드


  

약하다는 건 사사로운 불편함으로 작용할 때가 있는데, 그렇다고 약하다는 사실 하나로 무수한 장점이 가려지는 일은 없다. 그 사람을 평가할 때 나오는 한 가지 키워드로만 작용할 때도 있고 본인이 힘들어서 그렇지 사람의 총체를 보았을 때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요인은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나는 약하다는 게 단점도 약점도 결점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건 나는 나약함을 합리화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 내가 약했기 때문에 약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었다. 그 사람이 말하는 게 어떤 건지 알고, 이해할 수 있고 공감에서 시작된 위로가 전해지기도 했다. 이 사실 하나로 내가 약한 사람이란 걸 후회하지 않는다. 나 혼자였으면 몰랐을 사람과의 만남, 감정, 그리고 몇 가지 경험. 그것들이 나에게 의미가 있기 때문에 약하다는 점이 나에게는 사사로운 단점조차 되지 못한다.


하고자하는 말은 그런 것이다. 남들에게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거나 받을 수도 있는 나의 무수한 성향 중 하나가 내 삶에 의미있게 작용한 한 순간이 있었다면 그건 약점도 단점도 결점도, 부정적으로 수식될 무엇도 아니라는 것.

 

*


자기소개서를 써 본 사람이라면 대체로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을 경험한다.

 

성격이 꼼꼼해서 무슨 일을 할 때마다 더블체크를 해서 남들에 비해 오래 걸리지만 결과적으로는 실수를 잘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이 손에 익으면 빠르게 실수를 줄여나갈 수 있다는 식으로 업무와 연결시켜 단점을 장점으로 마무리 짓는다. 모르는 사람에게 보여주고 들려줄 글에서도 없는 걸 끄집어내서 장점이라고 얘기하는데 오랜 시간 함께 지내온 나의 성향을 내가 보듬어주지 않으면 누가 그것에 의미를 줄까.


나는 약한 사람이라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아파하지만, 나약하고 희미한 어떤 해피엔딩을 본 적이 있다. 그래서 후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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