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나만의 화원을 찾아서 – 연극 ‘화원’

글 입력 2022.12.01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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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자료] 연극_화원_메인포스터_최종.jpg

 

 

 

화원에서 발견한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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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소설 『비밀의 화원』을 읽으며 자란 아이가 많을 것이다. 어릴 때 메리와 콜린, 디콘의 이야기와 함께 이들이 가꾸는 정원을 상상하면 내 마음도 풍요로워지곤 했다. 1909년에 출판되어 어느덧 110년이 넘은 텍스트가 극단 LAS를 만나 <화원>이라는 새로운 이야기로 무대에 올랐다. 원작에 나오는 인물들의 성격과 이름을 따온 메리, 디콘, 콜린은 무대에서 원작과는 또 다른 이야기를 선사한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메리가 배를 타고 홀로 영국의 낯선 보육원에 도착한다. 대사 없이 움직임으로만 진행되는 도입부에서 메리의 움직임은 줄곧 불안하고 초조해 보인다. 고집쟁이 메리, 백만장자 레녹스의 딸이었지만 사고로 가족을 잃고 이제는 보육원에 보내진 메리는 보육원이 차갑고 낯설기만 하다. 

    

메리가 오기 전부터 보육원에서 생활하던 콜린과 디콘은 이미 이곳 생활에 도가 텄다. 콜린은 전형적인 모범생으로, 다른 아이들에게 보육원 규칙을 알려주고 질서를 잡으려는 인물이다. 콜린과 친구 사이인 디콘은 서글서글한 성격으로 혼자 꿋꿋이 보육원 안의 버려진 화원을 가꾸는 아이다. 늘 자신을 낮춰 타인에게 맞춰주는 게 습관이다.

    

관객 앞에 선 세 아이의 공통점은 부모에게 버림받고, 마땅히 가정의 보호 아래에 있어야 할 나이에 보육원에 산다는 것이다. 어른인 척도 해보지만 아직은 보호가 필요한 아이의 모습이 연극 곳곳에서 드러난다. 매일 밤 자신의 하녀 마사에게 받은 가네쉬상에게 모든 걸 원래대로 돌려 달라고 기도하는 메리, 안정적인 가정에 입양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콜린, 늘 괜찮다고 말하는 웃는 얼굴 뒤에 슬픔을 숨긴 디콘. 


우리는 모두 어린 시절의 상처를 끌어안고 어른이 된다. 이들의 결핍과 상처 앞에서 관객 역시 구체적인 모습은 다를지라도 해결되지 않은 어린 시절의 상처와 마주한다. 그리고 상처를 간직한 세 명의 아이가 어떻게 자기 길을 찾아가는지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보게 된다.

 

 

 

부딪히며 자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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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보육원에 적응하는 메리의 심리를 따라가며 메리, 콜린, 디콘 세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달라지고 발전하는지 그린다. 세 아이는 비슷한 결핍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의 결핍에 대해 저마다 다른 생각을 갖고 있기에 갈등한다.

 

예를 들어 콜린은 백만장자의 딸이라는 메리가 영 탐탁지 않다. 자신이 평생에 걸쳐 갖기 염원하는 것들을 메리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입장에서 보육원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의 하녀 마사를 그리워하는 메리는 그저 철부지에 불과하다. 메리는 메리대로 규칙을 하나하나 따지고 드는 콜린이 답답하다.


하지만 때로 갈등은 상대방과 가까워지는 계기가 된다.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고 상처에 다가서면서 세 아이는 서로를 알게 된다. ‘화원’이라 하면 보통 커다랗고 화려한 원예용 꽃부터 저절로 피어난 들꽃까지 다양한 풀과 꽃이 어우러진 풍경을 떠올린다. 그러한 화원의 모습처럼, 이 보육원의 세 아이도 함께 어울리며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 나간다. 화원에서 꽃이 피어나듯이 세 아이의 관계도 깊어지고 넓어진다. 

 

연극 속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는 것도 연극을 보는 또 다른 재미다. 세 사람은 ‘후원의 밤’에 올릴 연극을 함께 연습하게 되는데, 원작인 『비밀의 화원』 속 메리와 콜린이 대화하는 장면이 연극 대본으로 등장한다. 원작의 메리의 대사는 콜린이 읽고 콜린의 대사는 메리가 읽는데, 원작을 아는 관객만이 발견할 수 있는 소소한 재미다. 


<화원>에서 또 눈에 띄는 점은 한정된 장소 안에서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한다는 것이다. 극의 배경이 되는 보육원과 화원, 제당, 마구간 등 여러 장소가 한정된 공간을 가진 소극장에서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했는데, 조명으로 입체감을 더하고 무대 구석구석을 빠짐없이 활용한다. 덕분에 각각 다른 공간을 파악하고 극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나만의 화원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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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어른이 아닌 이들을 엄격한 규칙으로 보호해야 하는 미숙한 존재로 바라본다. 하지만 세 사람은 오히려 어른이 아니기에 어른보다 용감하고 긍정적이다. 메리와 콜린, 디콘은 보육원 내부의 여러 가지 규칙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자기만의 새로운 미래를 꿈꾼다. 그저 꿈만 꾸는 데 그치지 않고 계획을 세워 적극적으로 실행하기에 이른다. 

    

원작이 세 아이가 힘을 합쳐 버려진 화원을 아름답게 가꾸며 성장하는 이야기라면, <화원>의 아이들은 보육원 안의 화원에 만족하지 않는다. 이곳의 화원에서는 자랄 수 있는 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열심히 애써도 싹을 틔우기 어렵고 꽃이 피기 어려운 것이 아이들의 잘못은 아니다. 이들이 버려진 게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듯이. 그래서 이들은 새로운 화원을 찾아 나선다. 내가 애정을 쏟아 가꾼다면 꽃을 볼 수 있는 자신만의 화원을. 


세 아이는 자신만의 화원을 찾아냈을까. 그곳에서 잘 살고 있을까. 모든 이야기가 그러하듯 이야기가 끝나고 난 다음은 관객의 상상에 달려 있다. 마냥 긍정적인 결과를 상상하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아는 어른 관객이라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하지만 이 세상 어딘가에는 아직 동화가 차지할 자리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객석을 매운 관객들이 이 동화의 증인이 되어줄 것이다. 더불어, 관객 역시 자신만의 화원에서 원하는 꽃을 피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동화 같은 바람도 품어 본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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