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 요정, 가족의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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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요정>
막걸리 한잔을 걸치고 사람을 친 카페 사장 부부, 음주 단속이 걸릴까 무서워 차에 치인 소년을 그대로 집에 데려온다. 다행히 다치지도 않고 멀쩡한 소년은 ‘석’이라는 이름 외에 아무것도 밝히지 않고, 그들이 두려워할 상황을 만들지 않는 대신 신세 질 것을 요구한다, 심심하니, 일도 달라하는데 그 말로 석은 부부의 카페에서 일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아직 남은 계약기간 때문에 각자 카페를 운영하는데, 석이 일하는 매장은 매출이 급상승한다. 그렇게 부부의 생계에 행운을 갖고 온 석은 자기도 모르는 새 매출 요정이 됐다. 이를 먼저 눈치챈 영란을 시작으로 감정의 골은 깊어만 간다.
남편 호철은 석에게 결혼 전 혼자 살던 단칸방을 내어주는데, 전기난로도 고장 났고 화장실도 집 밖에 있는 초라한 스펙이다. 석은 군말 없이 그들과 점심을 먹으며 동네 바리스타로 자리매김한다. 월급은 제때 주는 건지 모르겠다. 여기까지 들으면 어떤가? 영화 <요정>은 악덕 고용주에게 제대로 뽑히는 청년의 고군분투기나 다름없다. 하지만 영화에서 석의 존재는 사회 문제를 꼬집는 요소가 아니다. 어떻게든 가족이 형태를 유지하고 더 가까워지는 잔잔한 드라마라 볼 수 있다.
카페의 수익률이 집안의 서열을 좌우한다!
한 동네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영란’과 ‘호철’은 은근한 신경전 이후 로맨스로 직행하며 부부가 된다. 남은 계약 기간 때문에 따로 가게를 운영하게 된 ‘영란’과 ‘호철’. 가게의 수익이 높아지면 집안의 서열이 높아지고, 수익이 낮아지면 서열이 낮아지는 웃지 못할 미묘한 경쟁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사고로 의문의 청년 ‘석’을 만나 함께 지내게 된다.
‘석’이 ‘호철’의 카페에서 일을 돕자 카페의 수익률이 급상승하고, 단번에 뒤집힌 수익률에 이상함을 느낀 ‘영란’은 ‘석’의 존재만으로 장사가 잘 된다는 것을 알아채고 유치한 눈치싸움을 벌이게 되는데…
올겨울 찾아온 뜻밖의 행운 당신도 만날 수 있어요, 요정.
영화 <요정> 시놉시스
굴러 들어온 요정, 석
차가운 겨울날, 부부는 하루 매출에 전전긍긍하며 우리와 같은 현실을 보낸다. 출근 전에 네이버 운세를 보며 괜히 오늘 하루를 가늠해본다던가, 매출이 높은 날엔 콧방귀를 조금 뀌어본다던가, 양쪽 가족 일로 마음이 편안할 새 없이 서로 싸우다가 그사이에 껴서 열심히 커피 내리는 석이 불쌍하고도 대단했다. 굳이 신경 쓰고 싶지 않은 사장 부부의 감정싸움에 껴있다는 상상만 해도 고용조건 이상의 스트레스가 쌓이는데, 와중에 매출까지 톡톡히 올려주고 있다. 단칸방에 혼자 있다 어느덧 부부의 집까지 들어와 밥 한 끼를 같이하는 석의 존재는 무엇일까?
석은 신비롭다. (연기한 배우의 이름마저 김신비) 매고 있던 가방엔 흔한 신분증조차 없어 성씨도 나이도 과거도 알 수 없다. 강렬한 등장으로 나타난 석은 어찌 보면 호철과 영란의 도전을 북돋아 준 셈이면서, 더 끈끈한 가족으로 묶어준 자식 같은 존재다. 영화는 혼자였던 호철과 영란이 하나가 되고 석이란 존재를 마치 가족처럼 여길 때까지, 그리고 석이 부부를 떠날 때까지. 굴러 들어온 석이 부부에게 행운을 가져다주고 이유도 모른 채 사라지는 순으로 진행된다. 마치 남녀가 부부가 되어 축복받은 자식을 낳고, 다 자란 자식이 독립하는 연대기처럼 느껴진다.
가족의 형태
영란(배우 류현경)과 호철(배우 김주헌)은 조금 늦은 나이에 만났다. 40대에 가까웠나? 전통적인 가족을 꾸리기보단 편안한 안정감을 얻고자 익숙한 처지에 있는 둘이 만나 오손도손 살아간다. 평탄하진 않다. 영란은 외롭게 자라 유일한 피붙이 언니에게 많이 의지했고, 호철은 전 부인과 딸이 있다. 각자 사연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결핍 있는 사람끼리 삐꺽 이며 싸우고 화해하며 더 가까워졌다. 건물주의 제안으로 더 큰 매장으로 이사까지 결심한 부부는 삶의 변곡점을 맞이하는데, 당연히 석(배우 김신비)에게도 제안한다. 같이 갈래? 이렇게 ‘가족’처럼 지내면서, 부부는 식탁을 두고 석을 마주 보고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조심스럽고 애정이 담겼다.
석은 굴러들어온 돌이 마법처럼 금싸라기가 되어 부부의 관심을 얻었다. 시작은 애물단지였으나 천천히 부부의 삶에 스며들었다. 셋을 보고 있노라면 어릴 적 결혼해 카페를 차린 부부와 부모님을 돕는 아들내미처럼 보인다. 호철과 영란의 이슈에 정신 팔리다가 ‘가족’이란 말에 눈이 땡그래진 석을 보고 그제야 열심히 일꾼으로 있던 석의 존재가 불쑥 깊게 내 머릿속에 파고들었다. 본인의 교통사고, 부부 싸움, 매일 밀려오는 커피 주문에도 끄떡없던 석이 처음으로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언제나 쉬지 않고 움직이는 밥숟가락도 내려놓았다. 지금과 별다른 것 없는 하루를 보낼 텐데 어째서 석은 고민했을지, 초반 석의 존재에 의문을 가졌던 것처럼 영화는 석의 선택에 대한 의문점을 갖게 하며 끝이 난다.
가족이란 단어는 긍정적이지만, 그 이면을 살펴보면 마냥 좋은 것만 있지 않다. 오히려 무겁다. 나에게 ‘가족’은 책임감이고 의무다. 가계의 상황은 어떤지, 관계는 어떠한지, 모종의 이슈는 없는지, 지뢰 탐사기처럼 파악하느라 신경이 바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가족은 아직 나에게 벅찬 관계다. 방치하지도 못하고 어떻게 해결하지도 못하는. 그렇기에 마냥 들었을 때 기쁜 단어는 아니다. 감당할 만큼 내가 큰 그릇으로 크지 못한 탓도 있고, 얽히고설킨 관계를 쉽게 풀만한 경험이 있지도 않다. 그리고 앞으로 경험할 가족이 꼭 무겁지 않을 수도 없다. 말마따나 내게 그만한 경험이 없으니까.
석에게 가족이 어떤 이슈였을지는 모른다. 다만, 석은 나와 마찬가지로 가족의 형태를 찾는 과정인 것 같았다. 그에게 알맞은 가족은 어떠한 형태일까? 굴러들어온 돌처럼 다시금 굴러나갔으니, 석은 부부의 기억 속에서 이따금 생각날 것이다. 꼭 단란한 4인 가족이 아니더라도, 유난히 오락가락한 올겨울 날씨에 마음을 조금이라도 말랑하게 녹이고 싶다면, 뜻밖에 찾아온 행운을 연말이 되기 전에 감상해보도록 권하고 싶다. 가족의 형태와 각기 다른 사정이 녹진한 현실로 녹아있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요정 석의 등장으로 소매를 여미지 않아도 될법한 온기를 느껴보는 시간이었다.
[이서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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