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남녀유별'에 대한 과학적인 고찰 - 차이에 관한 생각

본능과 학습 사이의 '젠더'
글 입력 2022.11.20 14:4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couple-g77cf828f7_1280.jpg

 

 

모두가 알다시피, 세상이 시끄럽다. MZ세대와 X세대가 지지고 볶는 와중에 보수와 진보가 지지고 볶고 동시에 남자와 여자도 지지고 볶는다. 특히 남자와 여자의 경우, 어떻게든 서로를 '망하게' 만들기 위해 안달이 나 있다. 내가 보기에 이 현상은 매우 기이한데, 결과적으로는 같은 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집단들이 서로를 혐오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생각하는 나도 인간인지라 당연히 특정 존재를 '싫어하는' 감정에는 200% 공감한다. 나는 남초(男超) 집단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는 내 인생에 가장 큰 상처를 남긴 인물 TOP 5가 모두 남성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남초 집단 특유의 '여성 선호 경향'을 극도로 못 견디기 때문이기도 하다.'모든 남자가 그렇지는 않아'라는 말은 잠시 넣어 두도록 하자. 나는 지금 사적인 경험을 꺼낸 것이지 모든 남자가 그렇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게 혐오 아냐? 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반박하고 싶다. 싫어하는 감정이 드는 것과 혐오 행동 및 발언을 밖으로 내뱉는 것은 다르다. 나는 지금도 술에 취한 채 내 얼굴을 보지도 않고 (단지 내가 그들에게 제일 가까이 위치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길거리에서 휴대 전화부터 들이미는 남성들을 경멸한다. 그리고 "남자들은 왜 저렇게 남의 마음을 쉽게 얻으려 할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이 경멸이 곧 "남자들은 군대나 가야 해", "남자들은 다 죽어야 해"라는 혐오를 지지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것은 '싫다'는 감정만으로 쉬이 내뱉어서는 안 되는, 좀 더 논리력을 요하는 '판단'이다. 내 기분 나쁘게 했다고 해서 상대 인생의 2년(혹은 남은 수명 전체)을 삭제시킬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그들의 고통을 폄하하고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 버릴 권리는 더더욱 없다.


예컨대 나는 민트초코의 어느 부분이 맛있다는 것인지 아마 평생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당신이 내 입에 민트초코를 강제로 쑤셔 넣어서 나의 미각 세포에 크나큰 피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내가 당신이 민트초코로 얻는 행복을 이러쿵저러쿵 평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남녀를 막론하고 우리는 모두 이 사실을 쉽게 잊는다. 그래서 나와 다른 이들을 너무나 쉽게 '열등한', '대화할 가치가 없는' 족속으로 분류해버린다.

 

이렇듯 우열론(優劣論)으로 변질된 남녀 갈등을 교정하고자 침팬지와 보노보를 데려 온 학자가 있다. '남녀유별'에 대한 과학적 고찰을 시도한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의 저서 《차이에 관한 생각》을 소개한다.

 

 

차이에 관한 생각_표1.jpg


 

“내가 침팬지를 얘기하면 남자들이 우쭐하고 보노보를 얘기하면 여자들이 환호한다. 이 책을 쓴 것은 나의 가장 어리석은 결정 중 하나로 판명될지도 모른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은 수십 년간 사람과 동물(유인원)의 행동을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생물학은 기존의 젠더 불평등을 합리화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생물학이 가부장제 등의 젠더 불평등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와 동시에 젠더가 생물학적 성(sex)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은 인정해야 할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남녀가 다르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녀 간의 선천적인 차이점들은 무엇이며, 그것들이 후천적인 학습이 아닌 생물학(유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영장류 연구에서 찾는다.

 

성별 간 차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접근법이 존재해왔지만, 이 책은 기존의 연구나 다른 책들과는 다르게 영장류를 통해 성차의 비밀을 밝혀내고자 한다. 저자는 인간의 행동을 우리의 가장 가까운 진화적 사촌인 침팬지와 보노보와 비교한다. 이를 통해 널리 받아들여지는 여성성과 남성성에 관한 믿음들과 권위와 지도력, 협력, 경쟁, 부모와 자식 사이의 유대, 성 행동에 관한 보편적인 가정들에 이의를 제기한다. (책 소개 참고)

 


chimpanzee-g57223f12e_1280.jpg

 

 

이 책을 읽고 난 후 기억나는 지점을 요약하자면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저자는 우리가 '젠더'가 무조건 학습된다고 생각하는 세간의 인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특히 '어른들이 어린아이에게 성차별적인 장난감을 통해서 성 역할(젠더)을 주입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전제를 유독 싫어했다. 그에 따르면 여자아이들이 대체로 인형을 가지고 노는 것과 남자아이들이 파괴적인 놀이를 하는 것은 학습된 것이 아니라 '타고난 것'이다.

 

둘째, 저자는 우리는 젠더가 타고난 것이기도 하고 학습된 것이기도 하다는 점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독자에게 젠더를 설명할 때에는 생물학(타고난 것)과 문화(학습된 것) 중 어느 것을 선택하려 들지 말고 '상호 작용주의자'가 되라고 권한다.

 

**

 

첫 번째 지점은 충분히 인상적이고 또 신기한 시선이라 유익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남성 친구들에 둘러싸여 칼싸움과 곤충 키우기 놀이를 즐기는 특이한 여성이었는데, 저자의 말대로라면 이것은 주위에 남성 친구가 많아서도 아니고 내 부모가 나를 남성처럼 키워서도 아니고 다만 '나'의 유전자와 뇌가 선택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설명이다.

 

하지만 두 번째 주장은 다소 책임회피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 자신이 영장류를 연구하는 이유는 우리의 생물학적 조상을 통해 유전자 속의 성차를 들여다보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상호 작용주의자'라는 변명 하에 자꾸 각종 이슈─예를 들면 트렌스젠더의 젠더는 선천적인가 에 대한─를 마치 생물학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처럼 꾸며 놓고서, '사실 아닐 수도 있다'는 식의 사족을 덧붙이는 구성이 잦았다.

 

명료하지 않은 입장표명을 싫어하는 내 입장에서는 그냥 처음부터 '본인은 생물학적으로 젠더가 형성되었다는 입장을 더 지지하지만 예외가 있고, 아직 연구가 진행 중이라 확실치는 않다'라고 밝혀놓고 논의를 시작하는게 나았을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여기에 중간중간 매끄럽지 않은 번역체가 더해지면서ex."이 이야기는 우리가 앞을 가로막는 나머지 모든 조상 형태를 제거함으로써 지구를 정복한 전사로 태어났다고 말한다"... 무슨 소리야? 피로감이 가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침팬지라는 조상 외에 '보노보'라는 또 다른 영장류 조상이 있었음을 알기 쉽게 소개하고 있다는 점여담이지만 침팬지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 공동체를 이루는 반면 보노보는 여성 중심 공동체를 이루며 심지어 동성 간 성행위까지도 존재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하니 인류는 정말 양 극단의 조상을 하나씩 둔 셈이다, 여성이 '더' 감정적이라는 일반화는 틀렸으며 남성과 여성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감정적이라는 사실을 과학자의 시선에서 짚어 준다는 점 등이 매우 흥미로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에 몰입할 수 있었다.

 

 

chimpanzee-g828ad5d4b_1920.jpg

 

 

책장을 덮고 보니 약간의 씁쓸한 뒷맛도 감돈다. 가장 객관적인 사실만을 말할 것 같은 과학 이론조차도 인간 사회를 다루는 순간 정치적인 입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컨대 그간 세상에 보노보의 존재가 잘 알려지지 않은 것도 '침팬지의 폭력성이 우리 인간 종의 기원이다'라는 기존의 학설을 유지하려는 정치적 목적 때문이었으며, 반대로 보노보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 역시 '남성적 공동체의 시대는 저물었다'는 주장을 펼치는 페미니스트들의 정치적 목적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모든 정치적 시도들과 무관하게, 프란스 드 발은 항상 우직하게 영장류들을 연구해왔으며 연구 결과를 해석하는 자신만의 관점을 지켜내왔다. 그 노력의 결실이 바로 책 《차이에 관한 생각》이다. 젠더에 관심은 있으나 초심자의 눈높이에 맞춘 친절하고 온화한 설명을 먼저 듣고 싶은 당신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PRESS 프로필.jpg

 

 

[백나경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55251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E-Mail: artinsight@naver.com   |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Copyright ⓒ 2013-2022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