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평범한 악을 치유하는 단 하나의 방법, 사랑 [드라마]

글 입력 2022.11.19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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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해보자. 우리 인생에 판타지 같은 일이 일어났다. 내가 특정한 한 사람과 감정 공유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 사람이 혼자 슬퍼하거나 아파할 때, 나만은 그 감정을 오롯이 느껴 알 수 있다. 설정만 들으면 굉장히 로맨틱하지 않는가? 그러나 개인의 로맨틱 요소에서 끝날 것 같은 이 설정을 사회적 의미로 확장시킨 드라마가 있다. 바로 지난 7월 종영한 tvN 드라마 <링크: 먹고 사랑하라, 죽이게>(이하 ‘링크’) 다.


<링크>는 2022년 6월부터 7월까지 편성된 tvN의 월화드라마로, 16부작으로 종영했다. 드라마는 1화 3.1%의 시청률이 최고 시청률로, 마지막 화에는 2%대의 시청률을 기록하였다. 수치로 보면 크게 흥행한 드라마라고 평가하기에는 어렵다. 판타지, 로맨스 장르를 주로 홍보한 것에 반해 스릴러 장르에 치중되며 드라마의 전개도 다소 산만해진 면이 있다. 그러나 이 드라마가 주는 분명한 사회적 메시지가 있었다. <링크>가 던진 사회적 울림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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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공유 로맨스’보다 ‘감정 공유 치유’



<링크>는 1화에서부터 충격적인 엔딩을 선사한다. 여주인공 다현이 스토킹 범죄자에게 목이 졸려 반항하다가 결국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바닥에 피가 흥건하고 자신의 목을 조르던 가해자는 쓰러져 있다. 순식간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상황. 이 모습을 본 다현의 엄마와 할머니는 이 시체를 유기하기로 한다. 건물 맞은편 누군가 버린 공업용 냉장고에 시신을 은닉하는데, 이 냉장고의 주인이 바로 남주인공 계훈이었으며, 계훈이 그 냉장고를 자신의 가게로 다시 가져가게 되면서 둘의 접점이 시작된다.


그러나 실은, 둘의 접점은 그전부터 이어져 왔었다. 근래 들어 계훈은 갑자기 타인의 감정에 동화되는 ‘링크’를 느끼는데, 그 당사자가 바로 다현이었던 것이다. 다현은 냉장고에 스토킹 가해자의 시체를 유기한 이후 매일 밤 악몽을 꾼다. 자신이 스토킹을 당하던 날의 상황이 끊임없이 재현된다. 아무리 다른 행동을 해도 늘 꿈의 마지막은 가해자에게 잡히는 것이고, 결국 자신은 살인자가 된다. 다현은 그 불안함에 괴로워하며 악몽에서 깨고, 이는 감정 공유가 되는 계훈도 마찬가지이다. 계훈은 다현이 제발 편안한 잠을 잤으면 하는 마음에서 자신의 직업인 셰프의 장점을 살려 밤마다 요리를 해주고, 둘의 러브라인이 시작된다.


사실, 스토킹 가해자는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다현도 살인자는 아니다. 그러나 다소 파격적인 설정이다. 일전에도 두 주인공 사이에서만 판타지적 설정이 허용되는 드라마는 많았다. 두 주인공의 영혼이 바뀌는 <시크릿 가든>, 여주인공의 얼굴이 바뀌어도 남주인공만은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뷰티 인사이드> 등. 그러나 이러한 설정 가운데, 주인공이 범죄의 피해자나 가해자였던 적은 없었다. ‘링크’ 설정의 핵심은 둘의 감정 공유가 일어나면서 알게 되는 감정이 사사로운 것이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공감이라는 것에 있다.


‘링크’는 스토킹 피해자에서 살인자가 된 다현의 공포, 불안함, 슬픔 등을 공감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지속적인 스토킹 탓에 괴로워하고 죽을 고비까지 넘긴 한 피해자의 고통을, 성별도 상황도 달라 경험해 볼 수 없었을 다른 사람이 그 감정을 오롯이 느끼게 되는 것이다. 특히나 다현처럼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하루에도 수십 번 자수를 고민하며, 혼자서만 괴로워하는 피해자의 감정을 완전히 공감하고 안아주는 장치로 쓰였다는 점에서 사회적인 위로를 느낄 수 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이 혼자 떠안는 피해자의 고통을 누군가가 완전히 이해하고 그에 대해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며 안아준다면, 이보다 따뜻한 일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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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 모녀의 강인함, 여성의 연대



특히 이 드라마에서 인상적인 것이 있다면 다현을 향한 할머니와 엄마의 전폭적인 사랑이다. 다현은 할머니 춘옥과 엄마 복희와 함께 세 가족을 이루어 산다. 가정폭력을 일삼았던 아빠가 가정에서 사라지고, 그 자리에 할머니가 대신한 것이다. 이 모녀의 엄마들은 자신의 딸들을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는다. 기꺼이 시체 유기를 하고, 연장을 들고 동네 순찰을 하며, 자신의 딸을 해하려는 목적이 있는 사람과는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맞서 싸운다. 다현이 납치를 당했던 과거에서부터, 스토킹을 당한 현재까지. 가장 최전방에서 다현의 위협을 막는 것은 엄마와 할머니다.


가족이 아니더라도 연대는 일어난다. 다현이 일하는 곳이자, 계훈이 운영하는 ‘지화양식당’의 새로운 셰프로 온 은정. 어딘가 수상해 보이는 그녀는 여동생의 실종에 대한 실마리를 찾으려고 의도적으로 다현에게 접근한 것이었다. 사실 그녀의 여동생 역시 다현과 같은 범죄의 피해자. 다현을 스토킹했던 그 범죄자에게 이미 피해를 당하고 살해당한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은정과 다현은 피해자로서, 피해자의 가족으로서 서로에게만 나눌 수 있는 슬픔과 위로를 공유한다. 이후 다현이 죽지 않은 스토킹 가해자 때문에 여전히 위험에 처할 때도 은정은 죽은 동생을 떠올리며 더욱 함께 맞서 싸운다.


지화동 마을 주민끼리의 연대도 있다. 늘 복희, 춘옥은 함께 어울리는 지화동 주민들이 있다. 그 중 무료 에어로빅 수업을 진행하는 에어로빅 강사 재숙. 그녀는 사실 가정 폭력의 피해자이다. 어쩌다 복희와 춘옥의 시체 유기를 목격한 재숙은 그녀들에게 자신의 남편도 죽여 달라고 부탁한다. 이들의 전개 방식이 다소 난폭하고 극단적인 면이 있지만, 결국 가정의 아픔을 처음으로 공유하게 되는 계기가 되며, 마지막에는 평화롭게 이혼하는 결말 역시 복희와 춘옥의 도움으로 이루게 된다.


이 과정을 보며 느끼는 것은 결국 여성의 연대가 결코 약하지 않으며, 주위에 작은 관심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은정은 다현이 범죄 가해자의 편 일까 봐 처음에 적대시하지만, 점점 그녀와 이야기를 하고 결국 솔직하게 이야기를 터놓게 되며 연대가 이루어진다. 재숙과 복희?춘옥은 시체 유기라는 빌미를 통해 서로 적대시하며 처음 사실을 나누게 되지만, 결국 그 아픔을 겪은 사람들 간의 공감을 통해 연대하고, 문제를 해결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가끔 연대해야 할 사람들끼리 서로 경계하여, 결국 큰 악을 처치하지 못할 때를 볼 수 있다.  위한 관심, 진심을 통해 큰 힘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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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악이 모여 큰 악이 된다


 

드라마 후반부로 갈수록, 18년 전 계훈의 여동생 계영을 납치한 범인을 찾는 것이 중심이 된다. 결국, 잡힌 범인은 마을 내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스며있던 생선 가게 주인. 그러나 그의 범행 동기나 이유에 대해서는 드라마가 끝나도 모호하다. “왜?”라는 질문에 명쾌한 답이 없다. 그저 살인 욕구를 이겨내지 못하는 사이코패스 살인마일 뿐. 16부작을 함께 달려온 시청자들에게는 다소 김빠지는 결말일 수 있지만, 이 과정에서 드러난 다른 진실들을 통해 결말을 해석해보고자 한다.


18년 전 초등학생이었던 계영을 납치해서 살해하고, 계영을 찾던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도 있으며, 다현의 스토킹 가해자까지 살해한 영훈. 밝혀진 혐의만 이뿐이지, 더 살인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살인은 정말 극악무도한 한 살인마에 의해 일어난, 막을 수 없는 범죄였을까?


18년 전. 사실 지화동 어른들은 모두 말할 수 없는 잘못들을 했다. 계훈의 여동생 계영이 납치당했을 때, 사실 다현 역시 함께 납치되었다. 두 아이가 납치된 것이었다. 둘은 극적으로 탈출하는데, 탈출 과정에서 계영과 다현이 손을 놓치며 떨어지게 된다. 사실 납치를 한 것도 두 명. 공범이 있었다. 다현의 실종 사실을 알고 다현을 찾아다니던 복희와 춘옥은, 탈출한 다현이 다시 공범에 의해 잡힌 모습을 보게 된다. 다현을 기절시켜 다시 납치하려는 모습에 정신을 잃은 복희는 그 공범을 우발적으로 살해하게 된다. 복희는 자수하려고 하지만, 복희를 짝사랑하던 경찰 정호는 그녀를 위해 이 사건을 묻자고 말하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어린 다현 역시 충격으로 기억을 잃었다. 결국, 실마리가 될 수 있었던 공범의 사실은 묻히게 된다.


한편 다현과 떨어진 계영은 발이 불편한 상태였다. 그때 우연히 발견한 동네 아저씨 동남에게 차를 태워달라고, 살려달라고 말하지만 동남은 무심히 계영을 지나친다. 이후 계영이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그 역시 자신에게 피해가 올까봐 계영을 봤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만약 복희와 춘옥이 다현의 납치 사실과 공범의 살해 사실을 고백했다면, 만약 경찰 정호가 경찰로서 할 일을 제대로 했다면, 만약 동남이 계영을 태워줬다면. 더 세밀한 수사를 통해 계영을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한 가정이 파탄에 이르지 않고, 그 뒤의 더 많은 희생자도 생기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링크> 14화의 부제는 ‘평범한 악’이다. 각자 자신의 이익만을 행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악으로, 우리는 결국 큰 악을 잡을 기회를 놓쳤을지도 모른다. 작가가 작중 최고 악인이었던 이영훈에게 큰 서사나 행적을 부여하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일 것으로 생각한다. 평범한 사람들인 우리 모두 평범한 악을 저지를 수 있다. 그러나 결국 근시안의 이익을 위했던 악은 더 큰 악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다현의 스토킹 가해자는, 게임기 하나를 받고 어렸을 때 계영과 다현의 납치를 도왔던 아이였다. 만약 그 때 납치 사건이 해결되었다면, 이 아이 역시 평범하게 사회에 섞여서 기억을 잃은 다현에게 접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현을 위해 사실을 함구한 복희와 춘옥은 결국 다현에게 더 큰 화를 입혔다. 계영을 차에 태워주지 않고 목격한 사실도 말하지 않은 동남은 18년째 계영의 환영을 보고, 경찰의 소임을 다하지 못한 정호는 결국 영훈에게 납치되어 죽기 직전에 풀려난다. 평범한 악이 모여서 큰 악이 된다. 우리는 우리가 저지를 수 있는 작고도 평범한 악에 대해 더 경각심을 가지고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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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편이라 말해주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이해 없는 세상에서 나만은 언제라고 네 편인 것을 잊지 마라, 세상은 넓다. 너를 놀라게 할 일도 많겠거니와 또 배울 것도 많으리라. 축복한다.” / 이상, 1396년 여동생 옥희에게.


이는 시인 이상이 당시 사랑을 찾아 야반도주한 여동생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로, 드라마 [링크: 먹고 사랑하라, 죽이게]를 집필한 [권기영] 작가의 마음에 강하게 남아 그녀가 작품 속에 녹여내고자 했던 메시지이기도 하다.


- [링크: 먹고 사랑하라, 죽이게 OST Special] 앨범 소개 中

 


결말은 모두가 각자의 죄를 고백하고, 사죄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묵은 죄책감을 씻기 위해 복희와 춘옥은 경찰서로 향한다. 정호는 경찰을 잠시 쉬면서도, 계영의 죽음에 책임감을 느껴 계영의 유해 발굴을 위해 매일 산으로 향한다. 그들은 모두 평범한 악을 저지르는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래도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에 결국 다시금 올바른 길로 나아간다. 내 편이라고 말해주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행복을 지향할 수 있는 것이다.


<링크>는 현재 구조적으로 존재하는 사회 문제의 심각성을 상기시키고 이를 하나의 마을에 따뜻하고 자연스럽게 녹여냈다는 점에서 시의성 있는 드라마였다. 좁지만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깨달음과 따뜻함을 선사했고, 사회에 위로의 메시지를 던졌다. 스릴러와 미스터리 장르가 주가 되었지만, 드라마의 기획 의도에도 나와 있듯이, “결국은 휴먼 드라마”였다. 언제 우리의 일상을 위협할 악이 도사릴지 모르는 이 사회에서, 서로 연대하고 사랑하는 것만이 내일을 살아가는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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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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