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판소리와 전자 기타의 만남, 이렇게 좋을 수가 [공연]

글 입력 2022.11.13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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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서편제>의 마지막 시즌 공연이 끝났다. 원작 이청준의 소설 <서편제>의 저작권이 만료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뮤지컬 <서편제>는 2010년 초연을 시작으로 2022년 오연을 마지막으로 12년의 마침표를 찍었다. 1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뮤지컬 <서편제>가 사랑받은 이유를 분석해보며, <서편제>의 마지막을 추억하고, 새로운 시즌의 시작을 기약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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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와 결합한 뮤지컬, 하나의 ‘종합예술’



뮤지컬 <서편제>는 여느 다른 뮤지컬과는 조금 다르다. ‘판소리’가 주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초연 때부터 주인공 ‘송화’역을 맡은 이자람 배우는 전통판소리를 하는 소리꾼이다. 이번 시즌 새로이 합류한 ‘동호’역의 김준수 배우 역시 국립창극단 소속의 소리꾼이다. 뿐만 아니라 무형문화재 판소리 흥보가 이수자 양지은 배우, 국악학과 판소리 전공자 홍지은 등이 ‘송화’ 역에 캐스팅되며 판소리에 대한 중요성과 전문성을 높였다.


뮤지컬의 주된 내용은 ‘소리’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소리꾼인 아버지 아래에서 우리 소리를 전수 하며 진정한 득음을 향해 달려가는 송화와, 이를 견디지 못하고 자신만의 소리를 찾아 나선 동호. 동호가 떠난 뒤에도 송화가 우리 소리인 판소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관객들 역시 함께 판소리라는 전통 예술을 자연스럽게 뮤지컬에서 승화한다. 이는 판소리에 대한 사람들의 접근성을 높여주고, 흥미를 고취한다.


공연 내에서 판소리는 작품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진다. 어린 송화와 동호는 춘향가에서 서로 성별을 바꾼 사랑가를 부르며 놀고, 아버지는 죽은 어머니와 함께 부양가를 부르며 생을 마감한다.

 

특히 <서편제>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송화가 부르는 심청가의 심봉사 눈뜨는 대목이다. 눈앞에 있는 심청이를 보기 위해 감정이 끓어오르다가 비로소 ‘떴구나’ 하는 심 봉사의 대사는 송화의 긴 인생의 한(恨)을 응축해 표현하며, 깊은 감동을 준다. 가히 뮤지컬 내의 가장 큰 감동의 장면이자 최고의 엔딩이다.

 

관객은 이처럼 뮤지컬과 판소리의 질 높은 장르 혼합을 통해, 하나의 장르를 넘어선 ‘종합 예술’을 향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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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와 전자기타의 만남, 신선한 충격


 

비단 뮤지컬과 판소리의 장르를 뛰어넘는 것뿐만 아니라, <서편제> 내에서는 동서양을 뛰어넘는 음악적 크로스오버도 눈에 띈다. 1막 초반 동호의 ‘거대한 햇덩이’ 넘버에서부터 전자기타의 소리가 배경으로 깔린다.

 

‘삐용-’하는 전자 소리는 한국적인 옷을 입고 한국적인 이야기를 하는 배경과 자칫 이질감이 들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음악성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게끔 한다. 어머니의 죽음에 슬퍼하는 동호의 절규와, 찢어지는 소리의 전자기타는 사뭇 어울린다. 이후 우리 소리가 아닌 서양 소리, ‘록(Rock)’을 찾아가는 동호의 캐릭터 성과도 부합한다.


2막 ‘시간아 가라’ 넘버에서는 전자기타를 비롯한 기계 음악에 판소리가 한 데 섞이며 신선한 충격을 준다. 태평소와 전자기타가 섞이고, 록 음악과 판소리가 섞인다. 마치 클럽을 방불케 하는 조명과 볼륨을 최대치로 높인 듯 큰 사운드에 심청가가 환청처럼 들려오는 그 연출은, 실제 관객이 동호에 이입해 환청을 느끼는 것과 방불케 한다. 태평소와 전자기타가 심장을 쿵쿵 뛰게 하는 노래를 만들고, 바이올린과 북이 함께 어우러져 하모니를 만드는 음악. 그것은 뮤지컬 <서편제>에서만 들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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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유의 정서를 담아



<서편제>의 가장 핵심이 되는 정서, 바로 한(恨). 한의 정서는 과거부터 우리나라 고유의 정서로 알려져 있다. 한의 정서는 현재까지도 정확한 의미를 규정하지 못하며, 욕구나 의지의 좌절·삶의 파국에 대한 상처가 얽힌 복합체를 모호하게 가리키는 용어로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뮤지컬 <서편제>에서는 이 한의 정서를 155분 극 내내 설명하며, 결국 마지막 송화의 심청가를 들으며 관객이 그 감정을 승화하게끔 한다. 사전적 의미만 들었을 때는 모호하게 다가오는 그 감정을, 155분이라는 시간 동안 극을 통해 직접 느끼게끔 해준다. 우리나라 고유의 정서를 느끼고 내재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속이 칵 맥히고 아랫배가 뜨겁냐?

몸에다 새겨둬라.

이런 게 쌓이고 쌓여야 한이 된다.

한이 소리를 만든다.

한이 서편제 소리를 만든다. 


- <서편제> 유봉 대사 中

 


또한 <서편제>의 무대에서 역시 한국적인 미(美)를 감상할 수 있다. 무대 장치는 한지가 여러 겹 쌓여 부드러움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장치가 이동할 때마다 날리는 겹겹이 쌓인 한지의 질감은 한국적 분위기를 더욱 살려준다. 무대 배경은 아름다운 수묵화로, 거칠면서도 우리나라 고유의 멋을 느낄 수 있다.

 

특히 깨달음의 순간에서 먹이 한지에 번져 뻗어나가는 연출이나, 매화와 나비의 수묵 그림은 감성을 일깨운다. 부모님의 죽음 장면에서 나오는 전통 장례의 모습은 웅장함과 화려함, 동시에 서글픔을 느끼게끔 한다. 함께 들리는 꽹과리, 징의 소리와 이에 어우러지는 현대 무용은 예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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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서편제>는 한국적인 것, 전통적인 것은 고루하고 지루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주는 작품이다.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며 변화가 이루어지는 가상의 과도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기에, 우리나라의 전통 음악과 서양 음악이 어우러져 오히려 가장 진보적인 발자취를 남긴다. 그러나 동시에 내용과 스토리는 가장 한국적인 것, 기본에 충실하여, 관객은 마음으로는 한(恨)의 정서를, 머리로는 감동적인 스토리를 느끼게 된다.


지난 달 23일을 마지막으로 뮤지컬 <서편제>의 마지막 시즌이 종료되었다. 아쉬울 따름이다. 다시 돌아올지 미지수인 뮤지컬 <서편제>가 또다시 우리 곁을 찾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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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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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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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원픽
    • 양지은 서편제 최고였습니다
      양지은 첫뮤지컬 도전이라 믿기지 않을 만큼 감동의 혼신의 연기와 노래에 극찬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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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또한행복
    • 20년 이상된 베테랑급 배우 못지 않은 열정적 연기를 보여준 신인배우 양지은님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최고로 좋았어요. 잘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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