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열두 살은 달린다 - 연극 '발가락 육상천재'

글 입력 2022.11.12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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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발가락 육상천재 포스터s.jpg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의 ‘12살 프로젝트’ 두 번째 레퍼토리 작품인 <발가락 육상천재>가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11월 3일부터 공연 중이다. 2020년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초연된 본 작품은 올해 천안, 당진, 수원 공연을 거쳐 다시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 올랐다.

 

 

 

어린이와 청소년 사이, 열두 살


 

[국립극단]발가락 육상천재(2022) 공연사진09.jpg

 

     

‘발가락’과 ‘육상천재’라는 단어의 조합은 엉뚱하다. 하지만 자갈초등학교 육상부의 열두 살 호준, 정민, 상우, 은수에게는 발가락도 육상천재도 중요한 단어다. 발가락이 긴 사람이 육상을 잘한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매번 1등을 놓치지 않는 정민은 자신의 달리기 실력이 남들보다 긴 발가락 덕이라고 자랑한다. 육상에는 언제나 1등과 꼴등이 있는 법이다. 열두 살 인생, 육상에서 몇 등을 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호준은 그런 정민이 탐탁지 않다. 정민이 전학 오기 전까지 1등은 호준이 차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민은 상우, 은수와 똘똘 뭉쳐 다니며 호준을 소외시킨다. 열두 살 인생에 맞닥뜨린 외로움과 열등감은 호준을 자꾸만 흔든다. 친구 관계에서도, 육상 등수에서도 밀린 호준이 괴로운 현실을 극복하는 방법은 거짓말과 허풍이다.

 

친구들이 자기를 빼놓고 친하게 지낼 때면 괜히 그 앞에서 ‘볼트 형’(우리가 아는 그 우사인 볼트다.)과 통화하는 척을 한다. 그러다 육상 기록을 재는 어느 날, 경기에 불참한 호준은 뒤늦게 깁스를 하고 나타나 인어가 발가락을 먹어서 뛸 수가 없었다고 말하기에 이른다.

     

물론 거짓말과 허풍으로 자신을 방어하는 것이 호준만은 아니다. 만년 2등인 상우는 정민을 치켜세우지만, 사실은 종종 그가 재수 없다고 생각한다. 매일 꼴찌지만 달리는 게 좋다던 은수도 한 번쯤은 1등을 해보고 싶다. 정민은 말끝마다 ‘스포츠맨십’을 강조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이 패배를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오자 바닥에 드러눕는다.

 

열두 살은 그런 나이다. 진심을 완벽하게 숨기지 못해서 어설픈 거짓말로 얼기설기 가려둔 채 청소년과 어린이 사이에서 서성거린다. 어른 세계의 법칙을 조금씩 알아가지만,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은 아직 서투르다. 그렇기에 상우네 횟집이 문을 닫지 않으려면 인어회만큼 맛 좋은 음식으로 입소문이 나야 한다는 건 알면서 인어의 존재는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거짓말에서 태어난 존재


 

[국립극단]발가락 육상천재(2022) 공연사진10.jpg

 

     

호준의 거짓말에서 태어난 인어는 ‘발가락 육상천재’라는 제목만큼이나 독특하고 엉뚱한 존재다. 흔히 떠올리는 인어는 상반신이 사람이고 하반신이 물고기이지만, 호준이 찾아낸 인어는 하반신에 사람 다리가 달렸고 상반신이 물고기다. “뭘 봐, 인어 처음 봐?”라는, 앙칼진 목소리로 등장해 무대 곳곳을 누비는 인어는 호준이를 비롯한 무대 위 열두 살 아이들을 닮았다.

 

사람도 아니고 물고기도 아닌 애매한 모습은 어린이의 태를 벗기 시작했지만 교복은 어색하기만 한 열두 살 같다. 마치 털갈이를 하는 펭귄처럼 원하지 않았는데도 눈에 띄는 이들을, 어른은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다. 또 이 또래가 으레 그러하듯이 호준과 ‘아가미 약속’을 하던 순간에는 한없이 진지하고 어른스럽다가도 달콤한 맛에 빠져 연거푸 환타를 마실 때는 떼쓰는 아이 같다.


인어는 간절한 거짓말의 산물이기도 하다. 호준이 ‘인어’와 ‘발가락’을 연결해 인어가 발가락을 먹어버렸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인어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인어는 수영은 못하면서 달리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거나, 호준의 말에 진지하게 귀 기울여주는 등 호준의 바람이 그대로 투영된 모습이다. 호준은 정민을 이기고, 상우와 은수가 더 이상 자신을 우습게 여기지 않게 만들고 싶었다. 무엇보다 그 무리에 당당하게 끼고 싶어했다. 자기 혼자서 하기에는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바람을 실현시켜줄 존재를 거짓말로 만들어낸 것이다.


인어가 등장한 시점부터 연극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모든 거짓말은 당장의 문제를 모면하는 데 효과가 있다. 인어는 호준이 바라던 것들을 이뤄준다. 자기가 호준의 기다란 발가락을 진짜로 먹었다고 증언해주고, 천재적인 달리기 실력으로 정민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다. 하지만 거짓말이라는 것은 사소한 일로 시작했다가도 눈덩이를 굴리듯 점점 몸집을 불려 커다란 위협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거짓말은 필연적으로 거짓말을 한 사람을 배신한다. 그러므로 거짓말을 만들어낸 사람은 결국 거짓말을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다시, 출발점에서


 

[국립극단]발가락 육상천재(2022) 공연사진16.jpg

 

     

영원할 것만 같았던 호준과 인어 사이 ‘아가미 약속’은 결국 깨진다. 둘은 서로의 비밀을 폭로하고, 호준은 친구들에게 붙는다. 인어는 애초에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서,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호준이 지어낸 거짓말이었다. 인어 덕에 다른 아이들과 가까워지고 정민의 코도 납작하게 만들었으니 더 이상 인어가 절실하게 필요하지 않다.

 

이제 인어가 필요한 건 인어회로 상우네 횟집을 일으키려는 정민, 상우, 은수다. 이들과 어울리고 싶은 호준이 인어를 배신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설상가상 인어가 모두의 발가락을 가져갔으니 더욱 더 친구들과 뭉쳐서 발가락을 되찾아야 한다. 

 

발가락을 되찾는다는 공동목표를 갖게 된 아이들은 인어가 고음에 약하다는 것을 기억하고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밤의 여왕 아리아’로 인어를 쓰러뜨리며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인어의 배를 가르고 발가락을 찾으며 잡동사니를 하나씩 꺼내는 모습은 엄숙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하다. 인어의 배에서 나온 갖가지 잡동사니들은 무대의 조명 장식이 된다. 인어를 해체하는 것은 일종의 통과의례로 연출된다. 거짓말한 사람이 자신의 거짓말을 수습한다. 


매일 달렸던 이들은 발가락을 걸고 또 한 번 출발점에 선다. 이번에 1등을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어느새 옆에 선 인어가 “준비, 출발!”을 외친다. 이들 앞날에는 이 시합 말고도 수많은 시합이 펼쳐질 것이다. 아이들은 계속 달리고, 자신이 만들어낸 수많은 거짓말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자라난다. 열두 살. 누군가에게는 ‘벌써 열두 살’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겨우 열두 살’이다. 애매하지만 그만큼 가능성으로 가득 찬 이들에게는 몇 번이고 달릴 에너지가 남아 있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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