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상대적인 행복에 대하여 [도서/문학]

누군가 불행해야 누군가 행복해지는 사회
글 입력 2022.11.07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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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은 단 한 번도 남의 불행을 매개로 행복해본적 없는가?

 

작은 화면 너머로 보이는 허름한 집, 더러운 옷, 부실한 끼니 그리고 그것을 견뎌내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도 있는데 힘내야지"

"아휴, 그래도 이사람들보단 내가 낫지" 

 

이러한 생각을 무의식중에서라도 하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책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위와 비슷한 상황을 독자에게 제시한다. 상당히 불쾌하지만 무조건 부정할 수는 만은 없는 상황을 말이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 어슐러 K.르 귄



오멜라스. 가난도 병도 범죄도 심지어는 빈부격차도 없는 아주 평화로운 마을이다. 마을 사람 모두가 행복하고 모두가 즐거이 웃고 있는 이곳을 보고 있자면 나도 저런 곳에서 갈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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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멜라스의 주민들이 끝없는 행복을 누리는 데에는 딱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바로 한 아이의 불행이다.

 

 
"오멜라스의 아름다운 공공건물들 중 하나에 지하실 방이 있다. 아니 어느 널따란 개인 저택의 지하실일 수도 있다. 그 방에는 굳게 잠긴 문이 하나 있을 뿐 창문도 없다. (...) 너무나 야윈 아이의 장딴지는 살이라곤 아예 없고, 배는 불룩 튀어나왔다. 자신의 배설물 위에 계속 앉아 있었기 때문에 엉덩이와 허벅지는 짓무르고 곪은 상처들로 가득하다.”
 

 

오멜라스의 주민들은 일부 아주 어린 아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다.

 

몇몇은 아이를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해 찾아가기도 한다. 그들은 아이의 모습에 충격을 받기도 하고 슬픔, 분노 등의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곧 작은 손길조차 내밀어 줄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발걸음을 돌린다. 그렇게 이상적인 사회로 돌아간 이들은 아이를 기억에서 잊고 다시 행복한 삶을 살아가곤 한다.

 

그러나 드물게 몇몇은 오멜라스를 떠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오멜라스의 입구를 지나간 이들은 두 번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을 알고 있는 듯하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책이 던지고 있는 질문



이 책을 읽으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과연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일 것이다.

 

아마 대다수의 사람이 '자신도 떠날 것이다'와 '떠나지 않겠다'로 나뉘어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더러는 아이를 구해보겠다는 정의로운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저런 단순한 생각을 끝으로 책에 대한 여운을 끝내지 않았으면 한다. 어쩌면 오멜라스 마을의 이야기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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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멜라스의 사람들은 어떻게 한 사람의 불행만으로 행복했을까? 단순히 판타지 요소일까? 적어도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단순히 한 사람이 불행한 것으로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면 두 가지 의문이 생긴다.

 

1. 왜 '일정 나이 이상이 되면 불행한 아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전통'이 있을까?

 

2. 왜 불행한 아이의 방을 숨기지 않고, 모두가 볼 수 있게 했을까?

 

그냥 마을의 고위 간부나, 촌장쯤 되는 사람만 알고 있어도 될 텐데 말이다. 그럼 아이를 보러 갔다가 부정적인 감정이 생겨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도 없을 거고, 더 많은 사람들이 조금의 무거움도 없이 행복할 수 있었을 텐데. 굳이 두 가지 설정을 넣은 건 왜일까?

 

나는 이 의문에 대해 '나보다 불행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그들이 느끼는 행복의 조건이기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다. 그리고 이것은 현대 사회에 은밀하게 숨어있는 행복의 조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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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너 공부 안 하면 나중에 커서 저렇게 된다."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본 적 있을 것이다. 왜, 언제부터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공부해야 한다는 말보다 남의 불행을 들먹이며 겁을 주는 것이 더 쉽게 나오는 말이 되었을까.

 

불행한 사람을 보고, 그보다 나은 자신에 대해 느끼는 상대적인 행복감은 정말 행복한 것일까?

 

남의 불행을 발판 삼아 행복했던 진실을 마주하고 난 후 느끼는 죄책감에 도망치듯 오멜라스를 떠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우리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결정해야 한다.

 

상대적 행복에 만족하며 오멜라스에 남을 것인가.

 

오멜라스를 떠날 것인가.

 

 

[조은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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