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를 본 적 있나요 [드라마/웹툰]

드라마 <나의 아저씨> 웹툰 ‘집이 없어’
글 입력 2022.11.08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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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trauma)는 ‘외상(外傷)’을 뜻하는 의학 용어로, 심리학에서는 ‘정신적인 외상’을 말한다. 개인에게 신체적·정서적으로 해롭거나 위협이 되는 사건 혹은 일련의 상황으로 인해 부정적 영향이 지속하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부정적 영향이 지속될 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가 생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질환이다.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치료의 방법이나 완치 가능 여부는 개인에 따라 극명한 차이를 보이지만 분명한 것은 치료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치료받지 못하고 그 트라우마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이지안, 네이버 웹툰 ‘집이 없어’의 고해준이 그 아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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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울타리도 없이 혼자 세상을 버티는 아이들


 

이 아이들은 모두 부모가 없다. <나의 아저씨>의 지안은 엄마는 어릴 때부터 여기저기 빚을 지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그 사채를 모두 남긴 채, 엄마는 도망쳤다. 지안은 여섯 살 때부터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할머니와 단둘이 가족으로 지냈다. ‘집이 없어’의 해준 역시 어릴 때부터 엄마와 둘이 살았다. 해준의 엄마는 귀신을 볼 수 있었고, 이에 따라 해준 역시 귀신을 볼 수 있었지만 해준은 귀신이 싫었다. 이후 고등학생이 되자마자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해준은 혼자가 되었다.


또한 이 아이들은 변변한 집이 없다. 웹툰 ‘집이 없어’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집이 없는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집’에 대한 각자의 해석은 다르겠지만, 해준은 정말로 집이 없어 학교 근처 귀신의 집에서 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으스스한 그 집에서 해준은 늘 귀신을 보고, 엄마의 환영을 보고, 괴로워한다. 결국 그곳 역시 자기 집이 될 수 없어, 정말 집이 없는 아이인 것이다. 지안 역시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집이 없다. 할머니와 달동네 언덕 너머의 방 한 칸에 사는데, 그 방마저도 사채업자가 언제든지 들어와 위협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두 아이는 마음 편히 두 발 뻗고 쉴 집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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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치지 않았는데 어떻게 잠이 오지.” - 이지안, <나의 아저씨>


 

지안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사회를 살아가지 못한다.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의 잔반을 훔쳐 끼니를 때운다. 파견직으로 들어간 회사에서는 팀장이 받은 뇌물을 훔쳐 자신의 빚을 갚으려 하고, 다른 사람을 해고해주겠다는 불순한 약속을 하고 돈을 받는다. 청각장애를 가진 할머니의 요양비를 낼 돈이 없어 자기 몸보다 더 큰 침대를 끌고 할머니와 야반도주하고, 버는 돈은 모두 빚은커녕 빚의 이자를 갚는 데에 급급하다.


지안에게는 어른이 없었다. 어린 지안은 상속 포기라는 걸 몰랐다. 국가에서 할머니의 요양비를 무료로 지원해 주는 정책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런 걸 가르쳐 줄 어른이 없었으니까. 인생은 발버둥 칠수록 점점 잠기는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살아야 했다. 할머니가 있었으니까. 할머니를 보살펴야 하니까. 그래서 지안은 기계 같은 무표정의 얼굴로 살아가고 딱딱하고 공격적인 태세로 늘 스스로 방어해야 했다. 그게 지안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리고 가끔 악몽을 꿨다. 자기 손으로 사람을 죽이는 꿈. 그래, 그건 꿈이 아니라 사실이다. 여느 때처럼 그냥 그렇게 살아가던 어느 날, 또 사채업자가 집에 쳐들어왔다. 그런데 할머니를 때렸다. 아무리 말려도 듣지를 않았다. 할머니는 연약하고, 사채업자는 너무나 거대했고, 지안은 두려웠다. 두려웠고, 도와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그래서 무엇이든 해야 했다.

 

지안이 죽인 사람은 폭력적인 사채업자이자, 친구의 아버지였다. 이제 친구는 사채업자가 되어 다시 내 목을 졸랐다. 빚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원망으로 광기 어렸다. 그 사건으로 인해 친구를 잃고 편안한 잠을 잃었다. 꿈에서는 계속 그날이 반복되었다. 지안은 편히 두 발을 뻗고 잘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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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안이 빠진 트라우마는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뿐만이 아니다. 법원에서는 지안의 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정해 무죄로 판결 내렸다. 그런데 그런 건 아무 의미 없었다. 법원의 판결과는 상관없이 지안은 매 순간 사람들에게 판결받았다. 지안이 사람을 죽였다는 그 사실만이 지안의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지안과 긍정적 관계를 맺고 지안에게 잘해주던 사람들도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에는 태도가 변했다. 지안의 인생에는 네 번 이상 잘해준 사람이 없었다. 자신을 떠나갔다. 지안이 만난 사람 모두 하나도 빠짐없이.


누구라도 자신의 과거를 알게 되면 버림받게 될 것이라는 트라우마. 사회의 차별적인 시선이 만들어 낸 그 트라우마 속에서 지안은 사람을 믿지 못하고 사람에게 기대지 못하고, 결국 정상적인 사회의 테두리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것이다.  

 

 

“누가 알까, 누가 알까.

만나는 사람마다 이 사람은 언제쯤 알게 될까.

혹시 벌써 알고 있나.

어쩔 땐 이렇게 평생 불안하게 사느니

그냥 세상 사람들 다 알게 광화문 전광판에 떴으면 좋겠던데…”

 

- 나의 아저씨 6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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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집 같은 거 없어.” - 고해준, '집이 없어'



해준은 어릴 때부터 귀신의 집 아들이라고 따돌림을 받았다. 도저히 참지 못한 어느 날, 해준은 자신을 놀리던 친구들과 모두 싸워 이겼다. 인상이 무섭고 싸움을 잘하는 해준은 그 뒤로는 놀림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미친개’라는 별명으로 불려 아무와도 친해질 수 없었다. 해준은 받아들였다. 늘 놀림과 따돌림을 받던 과거보다는 조용히 살 수 있는 게 나았다. 친구를 사귀고자 하는 마음은 일찌감치 버린 지 오래였다. 새로운 친구가 생겨도 똑같았다. 결국은 자신이 귀신의 집 아들이라는 걸 알고 모두 한 편이 되었다. 귀신의 집 아들은 모두가 기피하는 존재였다.


엄마는 귀신을 좋아했지만, 해준은 늘 귀신이 무섭고 싫었다. 아빠도 귀신 얘기를 계속해대는 엄마가 싫다며 엄마와 저를 두고 떠났다. 해준 역시 귀신 얘기를 하기도, 듣기도 싫었지만, 엄마는 계속 귀신 얘기를 했다. 엄마와 저는 늘 동네에서 멸시받았다. 고등학생이 되고, 기숙사 학교를 신청해 이 집을 벗어나고자 했다. 자신을 붙잡는 엄마에게 처음으로 화냈다. 귀신 얘기는 지긋지긋하다고, 엄마가 싫다고, 나는 기숙사에서 살 거라고. 그리고 그때 저를 붙잡으러 온 엄마에게 교통사고가 났다. 해준은 눈앞에서 엄마가 사망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


그 후로 해준은 엄마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엄마를 자꾸만 봤다. 엄마가 없어진 뒤 해준에게는 집도 함께 없어졌다. 겨우 학교의 허락을 받아 별관 기숙사에 살게 되었는데,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사실인지, 그때부터 엄마가 보였다. 밥을 먹으러 부엌에 나와도,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워도 때를 가리지 않고 엄마가 창문 밖에서 해준을 부르고 있었다. 엄마가 아닌 걸 아는데도, 아는데도 엄마의 환영이 자꾸만 해준을 불렀다. 결국 그 환영은 해준을 기숙사 뒷산 낭떠러지로까지 몰았다. 가까스로 기숙사에서 함께 사는 은영이 해준을 붙잡았다. 해준은 그제야 엄마의 환영이 엄마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이후 트라우마의 모습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친구 주완이 어머니와 싸우고 황급히 자리를 뜨자 과거 자기 모습과 겹쳐 보여, 결국 어머니를 집까지 데려주고서야 마음을 놓는다. 은영과 심한 말다툼을 한 후 잠이 들자, 은영이 자기 말에 상처받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악몽을 꾼다. 그러고는 두서없이 은영을 찾아가 사과를 뱉은 뒤 그 말들을 잊으라며 매달린다. 모진 말을 했던 자기 모습이 반복되는 상황, 그 말을 듣고 상처받던 자신의 어머니가 투영되는 상황에서 이성적으로 사고하지 못하고 극한의 감정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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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뿐인 가족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그 죽음의 트라우마에서 반복되는 해준. 이런 상황에서도 돌봐 줄 어른 하나 없는 해준은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홀로 살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치료는 받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는 것이 맞다. 은영이 낭떠러지 앞에서 해준을 붙잡아 준 날, 해준은 자신이 귀신을 본다는 사실을 은영에게 털어놓으며 처음으로 자신의 치부를 고백한다. 상처를 공유하며 상황이 나아지는 듯했지만, 추석이 다가오며 가족의 부재와 홀로임을 뼈저리게 느낀다. 봄도, 꽃도, 크리스마스도, 명절을 비롯한 사람들이 들뜨는 날들은 다 짜증 난다고 했던 은영의 말을 비로소 실감하게 되며 외로움의 늪에 빠진다.

 

 

“그냥 당장 제 옆에 누가 필요했던 거 같아요..

가족처럼 서로 챙길... 그런 사람이요..

 

저는 이제 어떡하죠?

저 실은... 언제부턴가... 종종...

평범하고 행복한 사람들이 불편해요.

앞으로 어떻게.. 어떻게 하지?

어떻게 살지?

 

- 집이 없어 160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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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아이들은 너무 일찍 커 버려. 그래서 불쌍해.” - <나의 아저씨> 박동훈


 

어린 시절 겪는 트라우마는 정신건강뿐만 아니라 이를 말미암아 신체적 질병인 당뇨병, 고혈압 등의 난치병까지 불러올 수 있다. 어린 시절의 외상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위험을 더 높일 수 있기에, 전문가에 의해 치료받아야 한다. 그러나 보듬어 줄 어른이 없는 아이들은 어떻게 하나. 마음 편히 쉴 집도, 기댈 좋은 어른도, 보호받을 사회도 없는 아이들. 지안과 해준으로 대표되는 아이들이 분명히 이 사회 속에서 아직도 그 상처에 갇힌 채 하루하루를 버텨가고 있을 것이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2018년 작품이다. 2019년 제55회 백상예술대상에서 TV부문 드라마 작품상을 받았으며, 박해영 작가는 이 작품으로 TV부문 각본상을 받았다. 2022년 현재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 중인 웹툰 <집이 없어>는 ‘2022 오늘의 우리만화’를 수상했다. 이 두 작품은 플랫폼도, 수상 연도도 다르다. 또한 <나의 아저씨>의 주인공은 성인이 된 지안인 반면, <집이 없어>는 해준을 비롯한 고등학생들을 다룬다는 점에서 다루는 소재와 타깃이 되는 주된 연령층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우리가 조명해야 할 아이들이 있다. 집과 가족이 불완전한 <집이 없어>의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면, 돈을 위해 불법 행위도 자행하던 <나의 아저씨> 지안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후에 자신에게 네 번 이상 잘해준 첫 어른을 만나, 도움을 받고, 진심으로 속죄하고, 새로운 도약을 내디디며 성장한 지안처럼 될 수도 있다. 두 작품 사이의 4년이란 시간의 흐름에도 우리 사회에 변치 않고 필요한 것은, 혼자 삶의 무게를 견디는 아이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관심이다. 사회의 품에 안기지 못하는 작고 여린 아이들에게 그것은 작지만 분명한 구원일 수 있다.


어느 외국 영화의 제목처럼, 동화책의 제목처럼, 이 세상에 나쁜 아이는 없다면. 그저 상처받은 아이들만 존재할 뿐이다.

 

 

[주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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