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산돛이 안내하는 곳 [사람]

글 입력 2022.10.20 20:0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근 몇 달간 내가 아르바이트를 한 가게는 지나치게 위험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가게 바로 옆에는 대형서점이, 횡단보도 하나 건너에는 영화관이 버티고 서서 나를 위협한다. 책 한 권을 사거나 영화 한 편을 보는 데 드는 돈이 최저시급을 훌쩍 넘으니, 퇴근 후 마음이 이끄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간 오늘 하루 열심히 번 돈이 그대로 손아귀를 빠져나가고 만다.

 

불행 중 다행으로, 대형서점에서는 책을 꼭 사지 않아도 얼마든지 읽어볼 수 있으며 매월 마지막 수요일은 ‘문화가 있는 날’이라 영화를 비교적 싼값에 볼 수 있다. 그래서 올해 6월의 마지막 수요일에는 아르바이트가 끝난 후 서점에서 잠시 책을 읽다가 영화관에 가기로 했다. 그리고 이 계획 아닌 계획은 내게 평생 잊을 수 없을 순간을 선사한다.

 

서점에서 펼친 책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어라>이다. 소설의 화자인 프레더릭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간호사 캐서린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두께가 있는 책이라 여러 번에 걸쳐 조금씩 읽어 나가는 중이었는데, 내가 그날 읽은 부분에서 둘은 이러쿵저러쿵한 이유로 탈영을 결정하고, 호수 건너 스위스로 도망치는 상황이었다. 비 내리는 밤, 호수를 건너기 위해 탄 작은 배 위에서 우산은 돛으로 탈바꿈한다. 우산돛의 효과가 어찌나 좋던지, 프레더릭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산을 타고 달리는 느낌이라고 한다. 우산을 돛 삼아 나아가다니! 내가 오랫동안 품어온 로망인지라 지금 두 주인공의 상황이 낙관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부러웠다.

 

이때쯤 진동으로 설정한 알람이 울린다. 영화를 보러 갈 시간이다. 당일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영화는 앞선 책과 달리 전개 하나하나가 중요하기 때문에 줄거리는 전혀 이야기하지 않겠다. 다만 ‘바다’의 이미지가 매우 섬뜩하도록 강렬하게 전해진다는 사실만 알아두길 바란다.

 

영화를 보고 나와 집으로 걸어가는 길, 내 머릿속은 영화 속 파도로 꽉 차 있었다. 내게 바닷물이 튀는 기분이 들었는데, 실제로 비바람이 불었기 때문에 착각만은 아니었다. 비보다는 바람이 강해 들고 있는 우산은 제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했다. 나는 우산을 똑바로 들기를 포기하고 바람에 맡기다시피 한 채 이어폰을 끼고 걸었다. 그러다 앞머리를 단번에 날려버리며 정면으로 들이닥친 바람에 우산이 아예 뒤로 넘어갔을 때, 나는 내가 소설 속에서와 같이 우산을 돛처럼 들고 있음을 알아챘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들과 달리 바람을 거스르며 항해해야 했지만 말이다.

 

사실 책을 읽던 당시에는 <무기여 잘 있어라>의 인물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다. 하드보일드체라 그런지 아니면 내가 온전히 몰입하지 못한 탓인지 몰라도 화자의 감정이 강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탈영을 결정한 프레더릭과 캐서린은 극단적이고 비이성적으로만 보였다. 빗길 속에서도 다시금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한 건지, 흔히들 하는 표현대로 사랑에 눈이 멀어버린 건지 고민하며 걸어갔다. 그 고민을 책을 들춰보며 할 수 있었더라면 그나마 답과 가까워질 기회가 있었을 텐데, 당장 책이 없었던 나는 점점 길을 잃어가는 듯했다. 그때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없었고 내가 그 노래의 가사를 흥얼거리지 않았더라면 영영 길을 찾지 못했을 테다.

 

 

Sail away 배를 타고 나갈래

Sometimes I really wanna sail away 가끔 난 배를 타고 떠나고 싶어, 정말이야

Leave all those things I did in yesterday 어제 한 일들은 모두 뒤에 버려두고

Is there a place I can stay? 이 세상에 내 자리가 있긴 한 걸까?

Sometimes I really wanna sail away 가끔은 닻을 올리고 떠나버리고 싶어, 진심으로

 

 

그 노래는 내가 좋아하는 미국 밴드 러블리더밴드가 불과 며칠 전 발표한 신곡 Sail Away였다. 가사를 찾아보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워낙 귀에 쏙쏙 박히는 발음 덕에 반복되는 부분은 쉽게 입에 붙었다. 발랄한 사운드 가운데 어딘지 모르게 울적한 이 노래의 화자는 과거를 뒤로 하고 새로운 곳을 찾아 배를 타고 떠나고 싶어 한다.

 

다시 말해서 그때의 나는, 눈앞에는 영화의 바다와 파도가 잔상처럼 남아있고, 귀와 입에는 저 가사가 맴돌고, 빗방울 아래서 우산을 돛처럼 펼친 채였다. 그리고 마법처럼 프레더릭과 캐서린의 행동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 둘은 전쟁으로부터 도망치는 중이었다. 그들이 피하고자 하는 것에는 전쟁의 생존을 향한 위협도 있지만, 그보다는 전쟁 속 자신의 위치에 대한 의문이 더 중요하다. 둘은 목적을 알 수 없는 전투와 역할을 알 수 없는 군대에서 탈출해, 서로의 관계 속에서 제 자리를 찾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한글 번역이 채 담지 못한 원제의 중의성도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내 해석이 헤밍웨이의 의도와는 다를 수도 있고, 어쩌면 굳이 이런 우연이 없어도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데 나 혼자 호들갑을 떠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 순간을 경험함으로써 나는 소설 <무기여 잘 있어라>와 노래 Sail Away, 그리고 영화 <헤어질 결심>까지, 세 가지 모두를 내가 실제로 체험한 것처럼 떠올릴 것이다.

 

이렇게까지 복합적인 경우는 드물지만, 단기간에 향유한 문화 콘텐츠가 합쳐져 더 특별한 감상을 주는 일은 꽤 잦다. 얼마 전에는 종로의 전태일기념관에 방문해 상설 전시를 관람했다. 전시에서 기억에 남은 문장 하나는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이자 노동자 어머니로 불리는 이소선 여사의 말씀이다. “옷도, 세상도, 건물도, 자동차도, 이 세상 모든 것을 노동자가 만들었습니다. 노동자가 세상의 주인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는 하나가 안 되어서 천대받고 멸시받고 항상 뺏기고 살잖아요.” 이때 나는 콜슨 화이트헤드의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라는 책을 읽는 중이었는데, 이 소설 역시 흑인 노예들이 모든 것을 짓는데도 그들의 노동과 업적에는 보상이 없고 심지어는 자랑스러워할 수도 없다 지적한다. 열악한 상황의 노동자들과 과거의 흑인 노예들이 머릿속에서 겹치니 노동자들의 운동이 더 뜨겁게 느껴졌다. 또 한 번은, 개인의 신념을 지키는 영화인 <미스 슬로운>을 본 직후에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을 다시 읽은 적이 있다. 그랬더니 똑똑하지만 신념은 없는 당나귀 벤자민에 관한 내 생각이 180도로 바뀌어서 과거의 나에게 미묘한 기분을 느끼게 됐다.


<무기여 잘 있어라>의 짧은 항해, 전태일기념관의 문장 하나, <동물농장>의 벤자민. 남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부분이 내게는 깊숙이 파고들었다. Sail Away와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미스 슬로운>이 없었더라면 나도 똑같이 흘려보냈을 테다. 반대로, 누군가는 뼛속에 새기다시피 한 부분을 내가 지나친 적도 있을 것이다. 내가 그 누군가의 경험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이다. 나의 경우에는 워낙 단조롭고 얌전한 일상을 사느라 여러 문화예술을 통해서 이런저런 감상을 쌓게 됐지만, 사실 감상은 모든 곳에서 온다. 하루하루만 열심히 살아도 사람들은 각기 다른 경험을 얻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은 사건이 일어나도, 개개인에게 새겨지는 무늬는 모두 제각각이다. 원래 그 사람 안에 쌓여 있던 것이 전혀 다르니 같은 충격이 가해져도 고유의 새로운 형태로 받아들여지는 게 당연하다. 이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에 호기심을 갖는 이유가 된다. 다양한 선택지 중 가장 옳은 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많고 많은 답을 만나고자 함이다. 혼자서는 절대 그 많은 답을 접하지 못한다. 개인이 그 수많은 경험을 모조리 하는 것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만약 그렇게 모든 경험을 해버린다면 그건 새로운 답을 하나 더 얻는 것이지, 모든 답을 아는 것과는 다르다.

 

그러니까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갑자기 사적인 감상을 늘어놓은 이유는 다른 사람들의 감상이 궁금해서다. 내가 프레더릭 그리고 캐서린과 함께 우산을 돛 삼아 항해하고 있을 때, 다른 우산돛은 다른 곳으로 향했음을 안다. 아니, 누군가는 우산으로 노를 저어 반대로 나아가고, 누군가는 뒤집힌 우산이 배인 것처럼 올라타 유랑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우산을 닻으로 쓰며 제자리에 정박한 사람도 있음을 안다. 하지만 이렇게 아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 경험담을 좀 자세히 듣고 싶다. 남의 정보를 먼저 요구하는 것이 얼마나 무례한지 알기에 내가 선수 치겠다. 그날 내가 <무기여 잘 있어라>를 읽지 않았더라면, <헤어질 결심>을 보지 않았더라면, 우산을 똑바로 들었더라면, Sail Away를 듣지 않았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재밌는 순간을 먼저 털어놓는다. 이제는 당신의 차례다.

 

 

[김지수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