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예술로 만드는 문법(SYNTAX)의 마법(SORCERY)

<AYOUNG KIM 김아영 : SYNTAX AND SORCERY 문법과 마법>
글 입력 2022.10.20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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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달 중순께까지 열렸던 'AYOUNG KIM 김아영 : SYNTAX AND SORCERY 문법과 마법'전의 후기이다.

 

해당 전시는 올해 8월 10일부터 9월 14일까지 갤러리 현대에서 개최되었다. 미리 알았으면 누구라도 근처 갈 일 생기면 추천했을 텐데, 30분 여유만 있으면 누구든지 다 볼 수 있다. 동선은 짧고 단순했다. 전반적으로 공간 자체가 여유 있는 편은 아니었다. 작품 개수는 얼마 되지 않았다. 처음 전시장에 들어가면 가장 유명한 설치작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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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자주 쓰이는 '세계관'이라는 말에 들어맞는 전시였다. 모든 작품은 24분 분량의 영상물에 상세히 기술된 하나의 서사와 관련되어 있다.

 

주인공 '에른스트 모'는 가상과 현실의 성격을 겸한 서울에서 활동하는 '딜리버리 댄서즈' 소속의 배달라이더다. 그는 통상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최상위층의 라이더인 '고스트 라이더'다. 라이더들의 컨트롤타워인 '댄스마스터'는 숙련된 라이더들에게 위상학적으로 뒤틀린 경로를 안내한다. 이 경로는 일반적인 시공간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장거리를 빠르게 직선으로 주행할 수 있으며, 이동하는 라이더 역시 비가시적인 존재가 된다. 이에 이 경로를 주행하는 라이더를 '고스트 라이더'라고 부르는 것이다.

 

시공간적으로 뒤틀린 경로를 표현하기 위해, 또 주인공의 혼란스러운 내면을 그리기 위해 화려한 영상기술이 사용되었다. 이 이야기는 명백히 SF물이다. 그러나 중간중간 스며든 배달라이더에 관한 문제의식이 이 서사를 판타지로만 여기지 못하게 막는다.

 

가령, 에른스트 모는 '콜'을 수행하는 데에 있어 서비스, 즉 단시간에 배달해야 하는 압박감을 계속해서 호소한다. 그러나 댄스마스터가 안내하는 경로는 경사나 그 밖의 요인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선형의 경로를 안내하고 지시할 뿐이다. 에른스트 모는 그것이 지름길이기 때문에 좁은 인도를 주행하고, 바이크가 진입할 수 없는 오르막을 오르고, 미로같은 물류센터에서 배달품을 찾는다.

 

더욱이 댄스마스터의 목소리가 녹음된 주행안내음은 불안정한 라이더의 심리와 정반대로 과도하게 발랄하다. 현대 자본주의의 괴상함이 느껴진다.


"호른을 울려볼까요? 빵~~!!!!!!!!!!“

 

최상위 수준의 라이더 에른스트 모는 어느샌가부터 주행 중 자신과 똑같은 모습의 여성을 본다. 그의 이름은 엔 스톰(En Storm), (monster의 철자를 거꾸로 조합한 글자다) 가상세계의 그 자신이다. 라이더는 점점 더 엔 스톰을 자주 만나고, 대화한다. 이 때문에 심리상담도 받지만 상태는 되돌아오지 않고, 에른스트 모는 한편으로 엔 스톰을 만나면서 낭비되는 시간을 걱정한다. 이것은 그의 실적에도 반영되어 페널티가 쌓이고, 그는 결국 실속 없는 업무를 도맡아 하다 좌절한다.

 

이 지점에서 헤겔의 주인과 노예 변증법이 떠올랐다. 이에 따르면 노예는 자기의식적 주체가 될 수 없는데, 그것은 자신에 대한 개념을 스스로 정립하지 못하고 오로지 주인이 의도한 바에 의해서만 규정되기 때문이다. 노동하는 노예. 휴식하는 노예 등이다. 노예는 그 밖의 어떤 것도 될 수 없고, 어떤 것도 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헤겔은 자아의 의지활동에 매우 큰 방점을 둔다. 그에 따르면 만일 전투 중 패전한 장수가 포로/노예가 될 계약에 스스로 서명한다면 그에게 가해질 노예로서 받는 어떤 취급도 타당하다. 그만큼 의지의 현존은 자기의식적 주체로서의 정체성에 핵심적이다.

 

이 작품의 라이더 역시 그렇다. 댄스마스터에 의해 그의 행동이나 사고는 규정된다. 일단 주행/업무 도중 댄스마스터는 라이더에게 가장 빠른 경로로 가장 빨리 도착할 것을, 그리고 고객의 호응을 받을 것을 요구하고, 그렇게 라이더를 규정한다. 소나무를 푸르게 규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소나무가 푸르기만 한 것은 아니듯, 라이더 역시 달리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다. 에른스트 모의 경우 그것은 가능세계의 자신을 상상하고 대면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댄스마스터는 라이더의 의지의 현존을 허용하지 않는다. 라이더는 라이더로서의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좌절한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대로면 주인-노예의 변증법은 노예가 자기의식적 주체로서 자신을 인식하고, 주인에게 저항하는 데에서 의지의 현존이 행해진다. 에른스트 모도 댄스마스터나 딜리버리 댄서 시스템을 거부하고 자아를 찾는 식의 뒷이야기도 가능할 것이다.


영상 중간중간 익숙 말들이 들렸다. 아니 (자막으로) 보였다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결말부의 독백은 제논의 역설을 활용한 대사같았다. A지점에서 B지점까지의 이동은 무수히 많은 절반 지점들을 지난다. 그러니까 무한한 지점을 거쳐서 우리는 결국 도착할 수 없다.. 하지만 구태여 추상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는 것이, 실제로 광포하게 주행하는 라이더들을 보면 무수히 많은 생사의 갈림길이라는 퀘스트를 해내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누군가 보기엔 평범한 생각들을 키워서 하나의 이야기와 결과물로 만들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런 게 트렌디함일까 싶었다.  예를 들면 전시의 중심부라고도 할 수 있는 영상물의 자막은 내내 글자에 색상 그라데이션 효과를 넣었다. 뉴진스 로고처럼..

 

트렌디하다고 느꼈던 건 요새 활발히 창작되는 형식의 미술을 적극적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웹툰식 작화, 공예품과 그것을 단독으로 매달아놓은 진열 같은 것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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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한 입장에서 곱씹어볼거리를 찾아 재미있는 전시였다. 이번에 흥미로운 전시를 놓치지 않고 보아서 좋았다. 작가의 다음 전시도 기대된다.

 

 

[홍가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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