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에게도 ‘슈가맨’이 있나요? [영화]

예능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의 모티브가 된 영화 <서칭 포 슈가맨>.
글 입력 2022.10.20 06:3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음악은 국경, 시대, 장르를 불문하고 대중의 마음을 이끄는 힘을 가진다. 최근 국내 한 음악차트 순위를 보다가 새삼스럽게 느낀 사실이다. 1위에는 걸그룹 아이브의 ‘After like’, 10위에는 가수 테이의 ‘Monologue’가 자리하고 있었다. 전자는 팝 가수 글로리아 게이너의 대표곡 ‘I Will Survive’를 샘플링해서 이목을 끌었고, 후자는 2000년대 초중반 한국 가요계를 주름잡았던 밴드 버즈의 노래를 리메이크해 사랑을 받고 있다. 팝송, 클래식, 국내 가요 등 장르에 관계없이 옛 명곡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대중의 관심을 끄는 것을 종종, 아니 꽤 자주 볼 수 있다.

 


[크기변환]예능슈가맨.jpg

 

 

2015년 JTBC에서 방영했던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이라는 예능도 그 사실을 방증한 대표적인 예이다. 유재석과 유희열이 MC를 맡아 추억 속의 노래를 여러 세대에게 소개하고 상기시킴으로써, 그 시절의 기억과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필자도 프로그램을 보면서 노래방 애창곡이던 ‘팀 - 사랑합니다’, 그리고 ‘씨야 - 사랑의 인사’의 간주가 흘러나와 소름 돋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 예능을 볼 때마다 항상 궁금했던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슈가맨’이라는 이름의 뜻과 유래였다. 프로그램을 어느 정도 보다 보면 슈가맨의 뜻을 추측할 수는 있다.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한 히트곡을 가지고 대한민국 가요계의 한 시절을 풍미했지만, 어느새 방송에서 자취를 감추고 사라진 이를 지칭하는 것. 그렇다면 슈가맨이라는 단어는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프로그램 이름에 영감을 준 영화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말릭 벤젤룰 감독의 2012년 다큐멘터리 영화 <서칭 포 슈가맨>이다.

 

 


미국 무명 가수가 먼 타국에서 엘비스 프레슬리가 되기까지.



[크기변환]포스터.jpg

 

 

서칭 포 슈가맨은 미국에서 단 두 장의 앨범만 내고 자취를 감춘 신비한 가수 ‘로드리게즈’의 두 열혈 팬(음악 평론가, 레코드숍 사장)이 그의 흔적을 찾아가는 과정을 인터뷰 형식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그들만의 슈가맨을 찾아가는 여정은 로드리게즈의 음악이 처음 세상에 등장했던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시작된다.


1970년대 미국 디트로이트는 빈곤과 위험의 상징으로 전락했다. 오일쇼크로 인해 몰락한 산업 도시가 된 것. 길거리의 집들은 폐허가 되고 부패된 쓰레기가 나뒹구는 삭막한 풍경만이 자리했다. 안개가 자욱하던 어느 날, 디트로이트의 강 바로 옆 외진 곳에 위치한 한 술집에는 관객들을 등진 채 구석에서 혼자 기타를 치고 노래하는 이가 있었다. 로드리게즈였다. 얼굴이 보이지 않았기에 듣는 사람들은 그의 노랫말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관객이었던 두 음반 제작자가 그의 목소리와 가사에 반해 그의 첫 앨범 ‘콜드 팩트’가 세상에 얼굴을 내밀게 된다. 하지만 당시 미국에서 정식으로 팔린 그의 음반은 단 ‘6장’. 그 누구도 알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하는 실패한 가수가 된 것이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디트로이트와 약 14,000km 떨어진 나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첫 번째 기적이 일어난다. 우연히 로드리게즈의 앨범을 들고 케이프타운에 방문한 미국인 소녀 덕분에 로드리게즈의 노랫말이 그곳 청년들에게 빠르게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보수적이었던 남아공의 환경 덕분. 억압적인 군사 정권으로 인해 TV와 언론이 통제되고, 인종차별 정책이 실시되고, 백인 전용 택시가 도로를 질주하던 상황이었다. 인권 탄압과 독재 때문에 국제 사회에서도 남아공의 문화와 스포츠가 보이콧되며 국가는 고립되고 단절됐다. 억압과 감시 속의 남아공 국민들에게 로드리게즈의 노래 가사가 변화의 시발점이 되어준 것이다.

 

 

[크기변환]로드리게즈앨범.jpg

 

 

그들에게 로드리게즈의 가사는 너무나도 파격적이고, 솔직하고, 반항적이었기 때문. 이때까지 듣도 보도 못한 새것이었기 때문이다.

 

‘난 궁금해 넌 얼마나 많은 계획을 망쳐봤는지. 난 궁금해 넌 얼마나 섹스를 해봤는지. 난 궁금해 넌 얼마나 많은 죽음을 지켜봤는지.’

‘크리스마스 2주 전 일자리를 잃고 시궁창의 예수에게 말했지. 비는 샴페인을 머금고 대천사가 날 취하게 했지.’

‘점퍼, 코카인 그리고 달콤한 메리 제인.’

 

노래 가사와 방송에 마약, 술, 섹스라는 단어가 언급되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던 시절, 그의 음악은 말 그대로 센세이션이었다. 진솔하고 투박한 그의 음악이 남아공의 청년들로 하여금 검열당하는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하며 위로가 돼준 것이다. 특히 ‘반체제의 블루스’라는 곡이 알려진 후부터는 저항과 변화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시장은 범죄율을 숨기고, 여성 의원은 주저하지. 사람들은 격노해도 투표일은 잊고 말지. 시스템은 곧 무너져 젊은 분노의 노래 앞에. 그건 차가운 사실.’

 

사회에 저항하고 분노해도 괜찮다고 노래하는 반체제적인 그의 가사가 청년들의 저항에 불씨를 지핀 것이다. 이 노래가 유명해진 후 윌렘 밀러 등 현지 뮤지션들은 그를 따라 반인종차별 노래를 만들어 부르며 정부에 대항하는 아프리칸스 음악 혁명까지 일으켰다. 누군지도 잘 알지 못하는 먼 나라의 가수가 대중 전반의 삶을 바꾸고 결국엔 비틀즈, 엘비스 프레슬리와 비견되는 반열에까지 올라간 기적이 일어난 것. 


자유와 새로움을 노래하는 그의 음악이 그들에게 가져다준 건 위로를 넘어선 해방을 향한 의지였고, 저항 정신이었고, 새 삶이었다. 음악이 사람들의 마음과 삶에 파동처럼 번져나가며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당시에도 음악은 국경과 장르를 뛰어넘어 가수가 주창하는 가사와 가치에 매료되게 만드는 엄청난 힘을 가진 존재였다.

 

 

 

무대 위에서 분신자살한 비운의 가수?



[크기변환]로드리게즈2.jpg

 

 

당시 남아공에서 팔린 그의 앨범은 무려 ‘50만 장’. 물론 외국 가수가 현지에서 공연하는 것조차 제재했던 남아공의 폐쇄 정책 덕분에 이 소식이 로드리게즈에게 전해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미국에서는 번번이 만족스럽지 못한 공연을 하던 그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무대 위에서 자살했다는 소문이 퍼지던 상황. 소문이 기사로 옮겨지며 남아공에까지 전해져 그는 세상에서 사라진 비운의 가수가 된 것이다.


하지만 원래 삶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지 않나. 여기서 두 번째 기적이 일어난다. 약 20년이 지난 1990년대, 앞에서 언급했던 두 열혈 팬이 그의 흔적을 되짚어가며 죽음에 대한 소문의 진실을 파헤치려고 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들은 그의 가사에 나온 지역명과 그의 음반을 발매했던 레코드사 등을 조사하고 ‘로드리게즈를 찾는다’는 웹페이지까지 만들며 열성을 다했다. 결국 그 간절함이 콜드 팩트의 앨범 제작자와 로드리게즈의 딸에게까지 닿아 기적으로 돌아왔다. 로드리게즈는 너무나도 멀쩡하게 살아있던 것. 혼자서 계속 기타를 쳤고, 노래했고, 생계유지를 위해 공장 일을 했다고 한다. 독서하고 배우며 사회에서 발언권이 부족한 노동자들이나 빈곤 계층을 위해 지역 일에도 참여하면서 그저 살아가고 있었다.

 

 

[크기변환]로드리게즈남아공방문.jpg

 

 

1998년 3월 2일, 마침내 세 번째 기적이다. 음반 관계자, 주변 뮤지션 등의 도움으로 로드리게즈는 뜨거운 환대 속 드디어 남아공에 발을 디디게 된다. 20년이 흘렀음에도 약 5000석의 객석, 그리고 총 6번의 공연을 전회 매진시키며 로드리게즈는 비로소 자기 자신이 됐다.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넓은 무대를 누비며 인간 영혼 깊은 곳의 저항 정신과, 새 시대를 갈망하는 의지와 희망을 노래하는 아티스트가 됐다. 영화 후반부에 나오는 공연 실황 영상 속 그의 모습을 보고 느꼈던 점은 그가 놀라울 정도로 평온해 보였다는 것이다. 생애 처음으로 가수로서 많은 사람들 앞에 선 무대임에도, 지난 세월 동안 그토록 원하고 원했을 순간에 당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무대 위의 그는 몇십 년의 방황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것만 같았다. 안정과, 평화와, 행복을 찾은 것만 같았다.

 

 

 

자그마치 세 개의 기적. 이 기적 같은 이야기를 가능케 한 건 음악과 간절한 꿈.



[크기변환]로드리게즈1.jpg

 

 

미국 무명 가수의 앨범이 먼 타국 남아공에 가닿아 선풍적인 인기를 끈 첫 번째 기적. 남아공의 두 열혈 팬이 만든 웹사이트를 로드리게즈의 딸이 발견한 두 번째 기적. 그리고 20년이 지난 후에도 남아공에서 6회의 공연이 모두 매진된 세 번째 기적까지. 한 사람의 인생에서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적이 로드리게즈의 삶에는 무려 세 번이나 일어난 것이다.


음악은 무엇인가. 그리고 슈가맨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영화를 보는 내내 두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했다. 이 영화에서 슈가맨은 단순히 한 시대를 풍미했다가 사라진 가수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슈가맨은 그 자체로 기적이고 희망이다. 누군가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꾸고, 누군가의 삶에 위로를 전하며 탈출구가 되어주고, 누군가의 인생에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심어준 슈가맨은 꿈같은 인물이자 꿈같은 이야기이다. 슈가맨은 곧 꿈이고, 이 꿈같은 이야기를 이뤄낼 수 있었던 건 결국 음악의 힘 덕분이었다.


당신에게도 슈가맨이 있는가. 잊혀져 있었지만 한때 간절히 바라던 꿈이 있는가. 로드리게즈의 동료 공장 노동자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 있다. “주변에 널린 흔하고 평범한 것, 속되고 비루한 것을 탈바꿈시키는 게 그였어요. 선구자였죠. 그는 새로운 곳을 찾아 나아가기 위한 길을 닦은 사람이에요.” 물론 인생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불안정할 수 있겠지만, 인생이 특별할 것 없고 너무나도 평범해 보일 수 있겠지만. 현실에 충실하고, 이루고 싶은 꿈을 찾아 꾸준히 나아가고, 더 나은 것과 새로운 것을 탐구하며 정진한다면 우리의 삶에도 언젠가는 기적이 찾아오지 않을까. 서칭 포 슈가맨은 우리네 마음속 한구석 깊이 숨겨져 있던 노랫말이, 바람이, 꿈이 기적처럼 이뤄지는 순간이 올 거라는 희망을 넌지시 건네는 이야기이다.

 

 

[박지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