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Sweet home을 위한 로맨스, 테레즈 라캥

불행은 쉽게 전파되어
글 입력 2022.10.15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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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포스터.jpg

 

 

비 내리는 날이었다. 하늘은 오늘따라 묵직했고, 얼룩덜룩한 모습으로 비를 내뿜고 있었다. 나는 온몸에 습도를 잔뜩 바른 채 극장 안에 들어섰다. 이미 많은 관객이 착석해있었다. 조심히 자리에 앉자 무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뭔가 희뿌연 한 느낌이었다. 자리 잡은 수증기가 주변을 축축하게 만들더니 바깥 날씨가 극장 안에 머무는 기분이었다. 고도가 높은 천장은 바깥의 촉촉한 공기를 머금고 있었고 이런 환경은 세트장을 차갑게 만들었다. 세트장은 인묻들이 사는 집인데 낮은 채도가 눈에 들어왔고 이층집을 단면도로 표현했다. 막상 무대를 찬찬히 살펴보니 오늘의 날씨와 어울렸다. 선전 카피도 비 내리는 오늘과 죽이 맞았다.

 

<테레즈 라캥>은 19세기 동명 소설로, 올해 <헤어질 결심>으로 미스터리 로맨스 스릴러를 들고 나타난 박찬욱 감독의 영화인 <박쥐(2009)>의 모티브로, 이를 포함해 3번의 영화화, 연극, TV 시리즈로 각색됐다. 우리가 기억하는 박찬욱의 뱀파이어 신부인 김옥빈(태주 역)과 닮은 듯 닮지 않은 테레즈를 주인공으로 2022년 10월, 순탄치 않은 로맨스 뮤지컬로 만날 수 있었다. 나름 치명적인 로맨스라는데, 가득 찬 습기가 음산한 기운을 만들더니 주광색으로 빛을 내는 조명이 유일하게 작품 장르를 상기시켰다. 뮤지컬 <테레즈 라캥>은 집에서 홀로 나타난 테레즈가 프롤로그를 시작하며, 넘버 ‘키스해줘 카미유’로 막을 올린다.

 

 

로랑_정민.jpg

 

테레즈 라캥_오소연.jpg

 
 
 

‘home’과 ‘house’


 

home과 house의 뜻은 찾아보면 똑같이 ‘집’이다. 단지 맥락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home은 보다 정서적으로 친밀감을 담아 가족과 함께 사는 집을 강조하는 반면, house는 부지 위에 세워진 건물, 즉 집의 기능적인 측면의 뜻에 가깝다. thing과 비슷한 개념이라 보면 된다. 뮤지컬 <테레즈 라캥>은 물리적 한계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집’에서 모든 사건이 발생한다. 그만큼 집은 상징적이며 그들의 터전이자 불행의 시초로 끝내 인물들이 회귀하는 공간으로 쓰인다.

 

테레즈의 집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과 거리가 멀다. ‘home’이 아닌 ‘house’로, 생계를 유지하는 가게와 응접실로 꾸며진 1층, 침대와 테라스가 있는 2층으로 구성된 집은 일과 생활이 합쳐져 있고, 세 명의 가족이 살아가고 있다. 몸이 약한 아들을 홀로 키워낸 ‘라캥 부인(이혜경)’과 병약한 탓에 어른으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어른아이 ‘카미유(김민강)’, 그리고 어린 시절 사촌 라캥에게 맡겨져 자유를 상실한 채 억압당한 ‘테레즈(오소연)’의 조합은 얼기설기 짜 맞춰진 조각보와도 같다. 아침, 점심, 저녁마다 꼭 약을 먹어야 하는 카미유는 테레즈가 먼저 약을 먹고 나서야 안심하고 그제야 약을 먹는다.

 

어린 시절부터 돌봄에 익숙한 그는 성인으로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이러다 보니 약 때문이 아니더라도 테레즈는 매시간 집에 상주해야했다. 집안을 돌보며 가장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 라캥 부인은 테레즈가 역할을 이어주이어주길 바랐으며압적인 라캥 라캥의 방식에 객식구로 자라난 테레즈는 본인을 위한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 여러모로 그들의 집은 정서적인 안정을 주기보단 의무를 상기하는 공간이다.

 

영화 <박쥐>를 보았다면 극이 대충 어떤 분위기로 흘러갈지 눈치챘을 테다. 그들의 집은 사람으로서의 생각, 행동, 가치관으로 살아갈 것이 아닌 기능적으로 한 역할을 완벽히 수행해낼 것을 강요한다. 선천적으로 아픈 카미유에겐 면제된 역할이지만 그 또한 심리적으로 집안에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짐 덩어리라는 사실에 지독한 열등감을 속에 품고 있다. 그들의 집은 통솔하는 라캥 부인은 의무로 학대당한 자신의 젊음을 집안을 통제함으로써 보상받고자 한다. 그녀의 통제 아래에 보살핌받는 성인 카미유, 그리고 생기 없이 종속된 테레즈뿐이니 미약하게 빛나는 주광색 전등만이 그들이 각각 욕망이 있는 ‘사람’이란 사실을 일깨운다. 그리고 잠시뿐이지만 등불처럼 나타난 ‘로랑(정민)’에 의해 집은 잠시 활기를 되찾는다. 양면적인 감정을 심어주는 그들의 집은 공연을 떠나 각 인물에게 각기 다른 상징성을 갖고 있었다.

 

 

세기를 넘어 150여년 동안 끊임없이 부활해온 원작 「테레즈 라캥」 박찬욱 감독 영화 「박쥐」의 모티브이자 프랑스 자연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에밀 졸라의 걸작을 뮤지컬로 만나다

 

1860년대 프랑스.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고모에게 맡겨진 뒤 병약한 사촌, 카미유와 함께 유년 시절을 보낸 테레즈. 테레즈는 고모와 함께 카미유를 돌보며 아버지를 기다리지만 아버지는 결국 돌아오지 못한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카미유와 애정 없는 결혼을 하는 테레즈.

 

무의미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던 어느 날, 카미유의 어린 시절 친구인 로랑이 그들을 찾아온다. 테레즈는 카미유와는 다르게 완숙한 남성미를 가진 로랑에게 순식간에 마음을 빼앗긴다. 두 사람은 곧 은밀한 관계로 발전하고, 서로에게 깊이 빠져들기 시작한다.

 

서로를 탐닉하는 밀회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 둘은 그들에게 걸림돌인 카미유를 없애기로 계획한다. 한 치의 의심도 받지 않는 완전 범죄에 성공하지만, 이미 그들에게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파멸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는데…

 

인간에게 잠재되어 있는 본질적인 욕망이 불러온 파국이 휘몰아친다.

 

뮤지컬 <테레즈 라캥> 시놉시스

 

 

라캥 부인_이혜경.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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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은 쉽게 전파되어


 

뮤지컬 <테레즈 라캥>은 원작처럼 ‘로랑’의 등장으로 테레즈는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생기를 되찾는다. 라캥 부인은 집을 도와주는 활발한 로랑 덕분에 한시름 무게를 던다. 카미유 또한 소꿉친구의 방문으로 기운을 찾는데, 로랑은 또 다른 가족처럼 주광색 전등이 켜질 때마다 찾아오는 작품의 마지막 인물이다. 고여 있는 집안에 유일하게 흐르는 바깥사람이었지만, 소유한 모든 에너지를 라캥 집안에 나눠준 건지 그는 테레즈와 잘못을 저지르며 급기야 카미유를 배신하기까지 이른다. 그뿐만 아니라 결국 라캥 집안의 분위기에 젖어 들어 극의 시작에서 볼 수 있었던 활달함까지 잃어버린다.

 

작품은 ‘사랑’을 주된 이야기로 다룬다. 관객 또한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다. 소재가 그러하나 내게 보인 것은 잘못된 사랑 이전에 전염되는 ‘불행’이 보였다. 일찍이 세상을 떠난 카미유의 아버지 탓일지, 홀로 책임져야 했던 라캥 부인의 고압적인 태도 때문인지, 카미유의 선천적인 병 때문인지, 아님 제대로 된 반항 없이 종속된 테레즈의 탓인지, 혹은 어린 테레즈를 집에 맡기고 영영 돌아오지 않는 그녀의 아버지 때문인지, 하다못해 분위기에 젖어 들어 전염 당한 로랑의 탓인지 모르겠으나 그 집에 들어선 사람들은 피폐해져 갈 뿐이다. 카미유는 로랑의 방문이 잦아질수록 밝아지는 라캥 부인을 보며 로링을 질투하기까지 이르렀고, 그것이 기폭제가 되듯 모든 불행한 사건들이 줄지어 발생한다.

 

영화 <박쥐>에서 멀쩡한 신부였던 상현(송강호)은 태두(김옥빈)와의 부정을 저지르며 신분을 저버리고 금기시한 ‘살인’까지 저지른다. 이처럼 점점 테레즈와 카미유, 라캥 부인의 분위기에 질식당한 그는 집에서 그들과 똑같아진다. 살인까지 저지르는 두 남녀의 외도는 결혼까지 이어지나 그 끝은 처량하기 짝이 없다. 카미유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들은 서로를 비난하며 충격으로 신체가 마비된 라캥 부인의 앞에서 범죄사실을 발설하기까지 이른다.

 

이는 작품 초반부터 예상할 수 있었다. 테레즈의 넘버에서 그녀는 집을 벗어나길 원했고, 불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로랑을 탈출구로 삼는다. 반면에 로랑은 테레즈를 사랑이자 집의 정착 티켓으로 삼는다. 불행의 시작인 듯한 이 집은 지긋지긋하면서도 누군가에겐 부러울 수밖에 없는 장소로 각 인물은 모두 무너져 내리는데 온전히 형태를 지키고 있는 집은 집안의 생명체는 모두 말라가는데 혼자 남아 멀쩡히 위용을 지킨다. 파리의 한 가정에서 일어난 이 불행의 시초는 어디서부터였을까? 왠지 모르게 음산한 기운까지 느껴지는 집은 서로를 보며 별안간 절망을 터뜨리고 마는 테레즈와 로랑의 외도보다 그들을 근본적으로 그렇게까지 만든 본질적인 원인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했다. 우울한 환경이 미성숙하고 연약한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이 초래한 결과에 관한 호기심 말이다. 보통 불행은 행복보다 쉽게 전파되곤 하니까, 뮤지컬은 카미유의 살인을 계획한 비극처럼, 다시금 자신들의 엔딩을 계획하는 넘버로 막을 내린다.

 

 
       

3번의 영화화, 연극, 뮤지컬 각색의 이유


 

뮤지컬 <테레즈 라캥>은 1867년에 출간한 에밀 졸라(Emile Zola, 1840 ~1902)의 소설로 당시 지배층에 질타받던 소설이다. 불륜으로 발생한 살인 사건이 표면적인 소재라 외면받았다. 하지만 <테레즈 라캥>은 프랑스 19세기 후반에 발생한 문학 사조인 ‘자연주의(naturalism)’가 반영된 작품으로 이는 ‘사실주의(realism)’처럼 당대 사회의 객관적인 자료로 구성했으나, 당대의 사회적, 정치적, 철학적 환경에 대한 실험과 관찰로 과학성을 강조한 차별점을 두어 작가는 <테레즈 라캥>을 통해 기질적으로 다른 사람이 만나 저지른 충동에 대한 관찰을 작품으로써 풀고자 한 것에 의의를 둔다. 본인이 테레즈와 로랑의 사랑보다 집과 인물들의 심리에 집중한 것도 이런 의도에 비롯된 것으로 생각한다.

 

뮤지컬 <테레즈 라캥> 속 테레즈는 자아를 위해 집을 나가길 원했고, 안락한 가정과 정착이 그리운 로랑은 집을 원했던 것처럼, 이들은 순간의 감정에 휘둘려 개인의 욕망을 해소했다. 결국 그들은 불행이 전염된 채 파국을 맞이하는데, 뮤지컬뿐만 아니라 리메이크된 모든 작품은 로랑과 테레즈가 그들의 사랑이 일탈의 임시방편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인물의 변화하는 심리를 적나라하게 기록했고 이는 영화 <박쥐>에서도 통제 불가능한 뱀파이어가 된 태주와 태주를 저지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갈망하는 모순적인 상현과의 파국적인 관계로도 연출된다.

 

하지만 원작은 자극적인 소재로 인해 부도덕한 작품으로 취급하니 작가인 에밀 졸라는 소설 서두에 변호 글을 실을 정도였다. 다행히 작품성은 후세에 재평가됐는지, 1953년 개봉한 프랑스의 마르셀 카르네(Marcel Carné, 1906~1996) 감독의 <테레즈의 비극(Therese raquin)>은 당해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했고, 2013년에는 마블 영화의 스칼렛 위치로 유명한 ‘엘리자베스 올슨(Elizabeth Olsen,테레즈 역)’과 2021년 <문나이트>로 마블에 합류한 오스카 아이작(Oscar Isaac,로랑 역) 주연으로 영화화까지 이어진다.

 

테레즈 라캥의 여러 작품을 보았다면 느끼겠지만 사실 스토리는 자체는 독창적이지 않다. 어느 정도 예상되는 고루한 스토리일 수도 있고, 소재 자체가 꺼려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19세기의 동명 소설이 끊임없이 리메이크되어 재탄생하는 이유가 있을 만큼 수요가 있는 작품으로 지독한 탐미주의자인 박찬욱 감독가 채택한 이유도 분명하다. 아쉽게도 본인은 테레즈라캥의 원작 소설은 읽지 않았다. 그러나 뮤지컬 <테레즈 라캥(2022)>과 영화<박쥐(2009)>, <테레즈라캥(2013)>에서 보았던 음울한 분위기 속 인물의 일탈을 통해 억압된 욕망을 적나라한 표출로 카타르시스를 느꼈고, 박찬욱 감독의 필모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분위기에 매료되는 순간을 글로써 풀어보게 됐다.

 

영화와 달리 뮤지컬은 색다른 매력이었다. 현장성이 주는 매력은 물론이고 인물들의 감정이 강렬해지는 만큼 커지는 성량과 배우들의 열연이 영화를 보며 느꼈던 카타르시스를 대변해주었다. 무대 장치와 연출 덕분에 원작가가 실현하고자 했던 의도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단순히 치명적인 로맨스도 좋다만, 그 이상의 무언가는 공연을 통해 자신만의 관점을 발견해보길 바란다. 공연은 추적추적 비 내리는 날씨와 어울렸는데, 이 공연을 시작으로 당신 또한 또 다른 테레즈의 모습을 찾고자 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비 내리는 날씨 말고도 곧 추워지는 냉랭한 공기도 꽤 어울릴 것 같은데, 뮤지컬 <테레즈 라캥>은 2022년 9월 20일을 시작으로 12월 11일까지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1관에서 110분간 공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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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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