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내면의 두려움에 당당히 맞서 진정한 '나'에게로 이르는 길 - 헤르츠클란 [연극]

글 입력 2022.10.14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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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중반. 독일이 동서로 나뉘었을 무렵, 규율이 엄격한 신학교 헤일리히에 부임한 수습교사 데미안은 수상한 특별활동반 '캄프'를 만든다.

 

방황하던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만나기 위해 '캄프'에 들어가고, 그곳에서 새로운 삶에 이끌리기 시작한다.

 

 

데미안 역의 김도빈, 싱클레어 역의 손유동, 크나우어 역의 허영손, 알폰스 벡 역의 오정택 배우가 출현하는 캐스팅 일정에 헤르츠클란을 관람했다.

 

헤르만헤세의 소설 <데미안>을 각색한 헤르츠클란이 어떤 무대를 선사해줄지는 막이 올라가기 전까지 나의 주된 관심사였고, 100분의 시간은 덧없이 흘러갔다.

 

 

 

#수습교사 데미안과 학생 싱클레어


 

동급생으로 등장했던 원작과 달리, <헤르츠클란>에서 데미안과 싱클레어는 신학교에 새로 부임한 수습교사와 어릴 적 트라우마로 인해 방황하는 학생으로 등장한다.

 

극은 두 인물의 상황을 연결하면서, 데미안이 학교에서 떠나간 이후 싱클레어가 긴 여행 끝에 그의 작업실에 찾아와 지난 그리움과 원망의 감정을 쏟아내는 현재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선 다시 과거의 시점으로 돌아가 현재 상황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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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엠비제트컴퍼니

 

 

오래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싶어 하지만 내면의 두려움을 마주하지 못하는 싱클레어.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싱클레어가 두려움을 용기 있게 마주하도록 끊임없이 논의를 끌어내는 데미안의 행위로 점철된 씬은 저절로 숨을 죽인 채 지켜보게 되는 압도감으로 가득 채워진다.

 

관객들은 그런 압도감으로부터 쉽게 끊어지지 않을 것만 같은 둘의 관계가 형성되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게 된다. '선생과 제자'로만 간단히 설명할 수 없는, 그 이상의 단단함을 지닌 관계를 말이다.

 

엄격하지만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싱클레어의 아픔을 치유해주고자 한 데미안의 따스한 시선이 뭉클했던 장면이기도 하다.

 

 

 

#특별활동반 캄프


 

싱클레어가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들어갔던 특별활동반 '캄프'는 베일에 싸여있다. 학교 동아리인지, 건설적인 논쟁이 오고가는 토론장으로 만들어진 모임인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데미안이 던진 철학적인 질문에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답하고 대립보다는 균형을 추구하는 '특별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음은 분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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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엠비제트컴퍼니

 

 

특히 캄프에서 서로의 욕망을 공유하는 대목은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다.

 

데미안이 교장의 자리에 올라서는 게 최종 목표라는 농담 섞인 욕망으로 운을 띄우자, 싱클레어는 내면의 두려움을 받아들이고 나아가고 싶다는 욕망을 내비쳤다.

 

그 다음, 크나우어는 자신을 안아주고 사랑해주고 싶다는 진심어린 욕망을 공유했다. 그가 밝은 듯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한 바람은 세상 사람들이 한 번쯤은 바라왔던 마음의 한 조각이었다. 나 역시도 바라왔던, 그러나 실현하기 어려웠던 욕망 중 하나다.

 

크나우어의 솔직한 용기가 멋있었다. 진정한 '나'를 사랑하려는 마음을 품기까지 얼마나 내면과 갈등하고 충동해왔을지를 감히 짐작해 보았다.

 

 

 

#소리와 조명으로 상황 전달에 힘쓴 무대효과


 

헤르츠클란의 무대연출은 몰입을 더했다.

 

신학교 헤일리히가 연극의 배경이 되는 만큼, 종교적인 색채가 묻어난 엄숙한 분위기의 조성을 위한 소품들이 마련됐다. 무대 중심을 둘러싼 앙상한 자작나무부터 의자, 와인병, 캔버스까지. 소품들로 인해 공간적 배경은 20세기 중반, 동서로 나누어진 독일이 되었다.

 

소리와 조명 효과도 상황 전달에 큰 몫을 했다. 싱클레어가 트라우마를 떠올릴 때 들려오는 휘파람 소리와 사람들의 웅성대는 목소리, 복잡한 심경을 표현하듯 다른 높낮이에서 번쩍이는 여러 개의 조명은 주인공들의 휘몰아치는, 때로는 정겨움을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직관적으로 전달해주었다.

 

섬세한 무대효과에 극의 흐름에 발맞추어 상황을 직면하고, 감각을 활용해 즐거움이 배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아름다움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


 

"아름다운 건 왜 우릴 스쳐 지나갈까"

 

헤르츠크란의 메인 포스터에 적혀있던 말이다. 극의 막바지에 싱클레어가 내뱉은 말이기도 하다.

 

그 말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온전히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들의 지나간 삶은 아름다웠다. 아름다움은 데미안과 싱클레어, 크나우어를 외면하거나 스쳐 지나가지 않았다. 스며들진 못했을뿐더러, 스쳐 지나갈 수 없었다.

 

세 인물은 하루하루를 뜨겁게 논쟁하고 갈등하면서 자신의 가치 있는 삶을 쟁취하려 했던 투쟁가들이었다. 그들의 열정적인 삶의 모습에서 교집합처럼 걸쳐있는 한 사람, 바로 나의 인생을 생각하게 되기까지 한다.

 

그리고 깨닫는다. 극중 인물이 스쳐 지나갔다고 생각한 아름다운 존재의 공백은 사실, 눈치채지 못한 사이 끊임없이 빛나왔던 찬란한 과거와 현재의 한 페이지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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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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