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너희 아빠, 너희 엄마 그리고 너와 나 - 옥상 위 카우보이

글 입력 2022.10.12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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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옥상 위 카우보이’는 영화 ‘미성년’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한 고민을 담은 작품으로 2021년 서울 초연 당시 전 회차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뻔하지 않은 캐릭터 표현으로 지난 공연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으며, 지난 공연에 참여했던 이세영, 라소영, 강정윤, 김정아, 신강수 배우가 모두 다시 참여한다.

 

특히, 이번 공연은 작년 공연에서의 보완점을 찾아 소극장에서도 물리적, 심리적 어려움 없이 누구나 쉽게 공연장을 찾을 수 있도록 여건을 개설했다. 하나의 예시로 전체 공연 기간 중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회차에 수어, 자막 및 음성해설을 제공함으로써 공연장에 올 수 있는 조건과 경계를 지우려 노력하고 있다.

 

공연이 시작되고, 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의 존재는 갑자기 다가왔지만, 낯설지 않고 익숙했으며 자연스럽다. 본 극에는 연극 앞에 ‘배리어 프리(barrier free)’라는 단어가 붙지 않는다. 그런데 극에서 주리 아빠 역으로 저신장 장애를 가지고 있는 장애인 배우 신강수가 무대 위에 등장한다. 그리고 극은 그의 외적인 모습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며, 이를 중심으로 한 소재도 아니다. 단지, 그와 한 여자의 불륜에 관해 이야기한다. 장애인 배우와 비장애인 배우가 섞여서 자연스럽게 극을 만들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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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남편이라 우리 엄마랑 바람났어요. 그리고 우리 엄마는 지금 임신 중이에요”라는 말처럼 이 극은 두 명의 고등학생들의 각각의 엄마와 아빠가 서로 바람이 난 사건으로 시작한다. 이에 주리와 윤아는 이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 학교 위 옥상에서 만나게 된다. 무덤덤한 윤아와 다르게 주리는 분노하며 윤아에게 그의 엄마에게 가서 당장 불륜을 멈추라고 이야기하고, 이 일을 마무리 지으라고 명령한다. 이에 윤아는 서로 불륜을 저지른 것인데 자신의 엄마만을 탓하는 주리에게 화를 내며 이들은 이내 몸싸움을 하게 된다. 이렇게 그들은 서로의 머리끄덩이를 잡으면서 시작한 불편한 사이였지만, 점차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교감하며 가족 같은 사이가 돼간다.

 

주리와 윤아는 자신들의 아빠와 엄마의 불륜을 우연히, 놀이동산에 갔다가 마주치면서 그리고 한 햄버거 체인점에 그들의 모습을 목격하면서 알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콜라 하나를 시키고 빨대를 두 개 꽂아서 같이 쪽쪽 거리며 마시는 모습이 정말 역겨웠어”라고 말한다. 이렇게 그들은 처음에는 이 불륜을 이해할 수 없는, 그리고 더럽고 혐오스러운 대상으로 바라본다. 주리는 아빠한테 말한다. “아빠는 그냥 아빠 아니야? 난 아빠가 뭘 좋아하든 관심도 없고 상관도 없어” 주리는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였지만, 이와 별개는 그는 아빠와 엄마는 자신에게 당연한 것이었으며, 아빠와 엄마를 각각 한 명의 인간으로는 바라보지 않았다. 주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아빠와 엄마를 자신의 엄마와 아빠가 아닌 자신과 같은 한 명의 개인으로서 바라보기 시작한다. 반면, 윤아의 경우 미혼모인 엄마와 함께 살았으며, 엄마는 가정에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윤아는 스스로 커왔으며 오히려 엄마를 자신이 챙기는 처지였다.

 

이렇게 다른 가정 환경 속에서 주리의 엄마와 윤아의 엄마는 각각 ‘밥’과 ‘라면’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주리 엄마는 주리에게 항상 밥을 해주지만, 윤아의 엄마는 항상 윤아에게 라면을 준다. 분리되어 있던 이 이미지는 ‘유산’이라는 사건을 기점으로 점차 겹치기 시작하며, 마지막에는 서로 뒤바뀌게 된다. 임신했던 윤아 엄마는 아이를 낳고자 했으며, 이에 대한 주리와 윤아의 태도는 상반된다. 윤아는 자신이 그 아이를 키울 것이라고 말하지만, 주리는 자신의 형제자매로 인정하지 못한다고 말하며 유산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조산으로 인하여 아이는 결국 죽게 된다. 주리 엄마는 전복죽을 끓여서 윤아 엄마 병문안을 온다. 하지만, 그녀는 전복죽을 상에 엎어버린다. 주리 엄마는 엎어진 전복죽을 다시 모아 도시락통에 담는다. 이들은 서로 깊은 대화를 하거나 위로해주지는 않지만, 한 명의 여성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아이를 잃었다는 점에 있어 무의식적으로 깊은 연대감을 형성해 가고 있다.

 

두 명의 여자 그리고 두 명의 아이들이 서로 직접적으로 이 사태를 부딪치며 나아가고 있을 때, 주리 아빠는 사건의 주범임에도 불구하고 불륜을 주리 엄마한테 들킨 순간 무서움에 정처 없이 떠돌며 도망만 친다. 그러다 주리가 우연히 아빠를 발견하게 되고 그간의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주리 아빠는 다시 윤아 엄마를 만나지는 않는다. 단지, 자기 집으로 돌아가 아내와 숨 막히는 정적만을 이어갈 뿐이다. 그리고 윤아 엄마는 변하기 시작한다. 평생 가족들을 위해 밥을 했지만, 더 이상 밥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녀는 라면을 먹기 시작한다. 즉,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보내던 과거에서 벗어나 오로지 자신만의 시간을 영위하기 시작한 것이다. 반면 퇴원한 윤아 엄마는 윤아가 해주는 밥을 먹기 시작하고, 그 자신도 밥을 하기 시작하며 윤아와 조금 더 소통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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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갭슐을 숨긴 환풍기

 

 

윤아와 주리의 관계도 달라졌다. 처음에는 원수 같은 사이로 시작했지만, 지금 그들은 자매처럼 지내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의 음식을 나눠먹는다. 마치 주리 아빠와 윤아 엄마가 콜라를 같이 나누어 먹었던 것처럼 말이다. 혐오의 대상이었던 행위가 이제는 그들에게는 공감, 또는 연대의 행위로 변모한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모습에서 그들의 부모의 모습이 투영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처음에는 형제자매가 되길 원하지 않았던 아이를 자신들의 형제자매로 받아들인다. 아이는 죽었지만, 그들은 아이를 위해 모자와 신발을 뜨개질해서 만들었으며 그 아이가 그들과 함께 있음을 느낀다. 그들은 그 아이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초음파 사진, 모자와 신발을 넣고 타임캡슐을 만들어 그들이 처음 만났던 학교 옥상 위에 있는 환풍기에 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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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연극의 제목이 ‘옥상 위 카우보이’일까?

 

카우보이를 연상시키는 음악은 주리와 윤아가 처음 옥상에서 만나 몸싸움을 벌일 때 단 한 번 나온다. 카우보이는 과거 미국 서부에서 말을 타고 소를 키우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동시에, 카우보이는 미국인들에게 있어 잠재되어있는 강한 개척정신과 정의로움, 청교도 신앙 그리고 해학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로서 기능한다.

 

이들은 역경을 무릅쓰며 결단을 내리고 성공하는 것의 상징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불륜’은 아이들과 각자의 배우자들 모두에게 역경이다. 아이들과 배우자는 그들의 배우자이자 부모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정서적으로 무너지고 좌절하게 된다. 하지만, 이 극에서는 넓은 초원을 달리며 숱한 어려움을 겪어낸 카우보이처럼 그들 또한 현재 상황에 의해 좌절하기보다, 현 사태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 것,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며 역경을 그대로 마주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과정 속에서 주리 아빠를 제외한 모든 인물은 성장하게 된다. 모든 것은 옥상 위에서 시작되었으며, 옥상 위 카우보이인 주리와 윤아는 그들 자신을, 그리고 그들의 엄마를 변화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것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돌보고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는 독립적인 주체, 카우보이가 된다.

 

 

[김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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