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2022 서울국제작가축제 : 미래에서 보내는 편지 [도서/문학]

당연한 배려는 없다.
글 입력 2022.10.06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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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SF 장르와 관련해 상당히 흥미로운 경험을 하나 했었다. 글 한 편을 썼다가 익명의 SF 마니아들에게 일방적으로 후려 맞은 경험이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글에 ‘SF 소설은 전형적으로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가진다’고 썼다가 ‘디스토피아가 아닌 SF 소설’의 수많은 예를 마주해야 했던 사건이었다. 다시 떠올리자니 여러 감정이 교차하지만, 결론은 대상의 정보량과 애정도에 있어 나의 완벽한 패배였다.

 

물론 단순한 패배였다면 그렇군, SF 소설을 좀 더 읽어 봐야겠군 하며 머쓱하게 뒷머리만 긁고 넘어갈 일이다. 오히려 ‘SF’라는 주제에 대해 더 흥미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짧은 지식일지언정 내 이름을 걸고 써낸 글이, SNS상에서 익명의 불특정 다수에게 노골적인 혐오와 비웃음의 대상이 되는 것은 매우 불쾌한 경험이었다.누구든 자신의 문장이 익명의 누군가에게 ‘그럴 듯한 평론 말투를 쓰는 한남 특유의 감성’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썩 유쾌한 상황이 아니지 않겠는가?

 

해당 사건을 겪으면서 나는 SF 소설의 독자층은 나처럼 (속세의 편견에 찌든) 일반인의 신규 유입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들은 무지한 나에게 전혀 친절하지 않은 언어들을 난사했고, 나는 그것이 매우 떨떠름했다. 따라서 (작품 자체의 매력과는 상관없이) 다시는 SF 소설에 흥미를 가지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그런데 몇 주 전에 무작위로 예약했던 한 강연의 주제를, 바보같이 당일에서야 알게 되면서 다짐을 번복해야 했다. 주제가 뭐였냐면, “미래에서 보내는 편지”. 그러니까, “SF 소설”이었다.만약 당신이 ‘미래에서 보내는 편지’가 어째서 ‘SF 소설’을 의미하냐고 태클을 걸고 싶다면, 2022 서울국제작가축제의 공식 소개를 보라. 해당 회차는 SF 소설 작가를 초청해서 ‘SF 소설의 본령’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고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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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서울국제작가축제

- 작가, 마주보다 : 미래에서 보내는 편지 -

 

일시

2022.09.24(토), 오후 2시

 

장소

커뮤니티하우스 마실

 

참가 작가

김보영

이윤하

 

사회자

심완선



 

 

김보영 작가와 이윤하 작가의 대담은 은은하게 흥미로웠다. 사실 그 조합을 생각해보면 흥미롭지 않을 수가 없긴 했다. 동양 신화가 접목된 SF 소설을 쓰는 작가 두 명이 한 자리에 모여 SF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한 명은 게임 시나리오 작가 출신 한국 작가이고 한 명은 코넬대에서 수학을 전공한 한국계 미국인 작가니 말이다.

 

두 작가 모두 몇 년 만의 대면 강연에 긴장한 듯했고 사회자의 톤이 꽤 단조로운 편이라 내가 기대했던 익살맞은 토크쇼 분위기의 대담은 아니었지만, 게임 시나리오와 소설의 차이점에 대한 이야기, 한국어의 특징에 대한 이야기 등 꽤나 재미있는 주제들이 오갔다. 그 중에서도 내게 특히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바로 접근성, 그러니까 '얼마나 배려해주어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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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2022 서울국제작가축제 행사장에 입장하던 그 순간부터 나는 이 주제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행사장으로 입장하려는데, 안내 직원이 나를 붙들고 검은 뭉텅이(?) 하나를 대뜸 쥐여준 것이다. 나는 이 물체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약 5초간 손바닥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태어나서 단 한번도 통역기를 사용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 손에 쥐여진 검은 뭉텅이가 통역기라는 것은 강연이 시작되고 나서야 눈치챌 수 있었다. 이윤하 작가의 모국어는 영어였고, 김보영 작가와 사회자 그리고 대부분의 관객들의 모국어는 한국어였다. 두 작가와 사회자는 검은 뭉텅이를 한 쪽 귀에 걸고선 잠깐의 시간차를 두고 서로의 말에 반응했다. 그들을 따라 이어폰처럼 생긴 것을 귀에 쑤셔넣자, 통역사의 음성이 들려왔다.

 

외국 작가들이 대거 참가하는 서울국제작가축제의 특성상 동시통역 제공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인들이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언어를 정제해 제공하는 행위는 과연 '당연'하기만 한 것일까? 행사를 주최한 한국인들에게는 한국어로 이루어지는 사회자의 진행과 한국 작가의 이야기가 오히려 더 당연하지 않은가?

 

그리고 김보영 작가는 바로 이것을 문학에 적용해 이야기를 끌어 갔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더러 한국인이 밥을 먹는 장면을 묘사하라고 한다면, 저는 김치를 굳이 묘사하지 않을 거예요. 김치는 한국인의 밥상에 있어 너무 당연한 반찬이니까요. 하지만 외국 독자들은 제가 김치를 묘사하지 않으면 그 존재를 영영 모르겠죠. 그렇다면 우리 작가들은 어디까지 묘사해야 하고, 또 어디부터는 묘사하지 않아야 하는 걸까요?"
 

 

이윤하 작가와 김보영 작가는 모두 자신의 작품이 타 문화권에서 번역되어 출판된 적이 있는 작가들이었으므로, 그는 동료인 이윤하 작가에게 꽤 진지하게 조언을 얻고자 했던 셈이었다. 그리고 이에 대하여 이윤하 작가는 이렇게 답했다. "제 생각에 작가는 자신의 문장을 검열(sanitize)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것은 독자의 몫입니다."

 

그렇다. 검열하지 않아도 된다. 한국에서 영어로 길을 묻는 외국인에게 영어로 대답해줄 의무는 없다. 이곳은 한국이므로 한국어로 대답을 해주는 게 당연하다. 그것을 알아듣고 말고는 한국에 찾아온 외국인 본인의 몫이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부족한 솜씨로나마 영어의 구조에 따라 단어를 재배열해주었다면, 김보영 작가와 이윤하 작가가 다른 문화권의 독자들을 위해 친절한 설명을 제공해 주었다면─그것은 아마도 '함께' 즐겁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나는 그동안 내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갓 장르에 호기심을 가진 초심자에게 친절한 설명을 제공하는 것은 순전히 전문가들의 호의이다. 그들이 친절을 베풀면, 초심자들은 보다 더 즐거운 마음으로 그 분야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이와 굳이 '함께' 즐겁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그들에게 내가 친절을 '당연한 것처럼' 요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

 

미래 세대에 대한 이야기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세대, 후속 세대들에게 기성 세대가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해주고 배려해주는 행위들은 당연한 듯 여겨지지만 사실 당연하지 않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새로운 세대가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미래에서 온 편지'라는 본 강연의 주제는 이러한 의미를 담은 것이 아닐까.

 

짧은 강연으로 내게 깊은 울림을 준 세 명의 출연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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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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