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보통의 인간을 위하여 - 다락방의 미친 여자

글 입력 2022.10.04 05:3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표1.jpg

 

 

과거의 문인들은 지금의 세상에 글자를 수놓는 많은 “거세된” 문인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책 <다락방의 미친 여자>는 그림으로 친다면 캔버스 너머에만 존재해야 하는 가장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그러나 생명력은 없어야 하는 존재가 종이를 찢고 나와 붓을 빼앗아 들었을 때, 그때의 화가의 얼굴을 상상하게 한다.

 

19세기는 제인 오스틴, 메리 셀리, 에밀리 브론테, 살럿 브론테, 조지 엘리엇, 에밀리 디킨슨 등 거인 같은 작가들이 대거 등장한 시기였으며, 여성 작가가 이례적이지 않은 최초의 시대였다.


이 틈을 타 샌드라 길버트와 수전 구바는 기존의 가부장적 문학 계보에서 비켜간 여성 작가와 작품에 정통성을 부여하며 그들의 치열한 투쟁의 산물을 추적하며 장엄한 ‘비밀의 정원’을 꾸려냈다.

 

 

전통적으로 남성 작가들은 비둘기의 단순함을 찬양하고, 뱀의 교활함은 늘 혹평한다. 마찬가지로 자기주장을 하고 공격성을 내보이는 여성은 ‘괴물’로 묘사한다. - p.112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글을 쓸 수 있으려면 먼저 ‘집 안의 천사를 죽여야 한다’라고 선언했다. 다시 말해 여성은 자기를 ‘살해해’ 예술에 가두어 놓았던 미학적 이상을 죽어야 한다. 모든 여성 작가는 천사와 정반대쪽에 있는 대립쌍인 집 안의 ‘괴물’도 죽여야 한다. 메두사의 얼굴을 한 이 괴물도 여성의 창조력을 죽이기 때문이다. - p.95

 


가부장 사회가 그려내는 여성은 납작하고 편리하다. 천사 혹은 괴물, 둘 중 하나로 살면 된다. 책에서는 이를 백설 공주와 사악한 계모에 빗대어 풀어냈다. 누가 들어도 명확히 구분이 가능한 ‘천사-여자’인 백설공주와 ‘괴물-여자’인 계모의 자아가 사실은 한 사람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고 말한다.


거울을 통해 전해지는 왕의 목소리, 즉 가부장의 명령 아래에서 양 끝 대척점에 서 있는 두 여성에게 유대는 사치다. 자유를 찾거나 안전한 순종을 이어가거나,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목표점으로 향하기 위해 한 명을 무너뜨려야 하고, 끝내 이야기는 가부장이 원하는 결말대로 착한 백설 공주를 승리로 이끈다.


그러나 책에서는 그 후의 미래를 묻는다. 자신을 승리로 이끈 거울의 목소리는 다시 또 젊고 완벽한 대체자를 찾을 것이다. 백설공주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영원한 무력감 속에서 버텨낼 것인가, 여왕의 결말을 따라가게 될 것인가.

 

주어진 선택지는 모두 처참하다. 그렇게 거울이 지정한 잔혹한 운명에 갇힌 것이다.

 

 

남성 예술가와 달리 여성 예술가는 먼저 사회화의 영향과 싸워야 한다.

 

- p.145

 


이 책에서 다루는 여성 작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이미지들은 대체로 과격하고 온전치 않다.

 

때문에 책의 제목에서 나타나듯, 작가 본인이 투영된 그들의 문학은 대체로 미쳐 있다. 당시 사회는 ‘여성성’을 상실한 기형적인 여성들을 더욱 미친 사람으로 여겼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조차도 본인을 그렇게 여기거나, 그런 식으로 세상에 발언하기도 했다.


안 그래도 자기 검열을 끊임없이 종용하는 현실에서 그들이 불안에 떨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말마따나 미치지 않고서야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었을 테다. 그들이 펜촉 끝에 매단 감정은 절규가 아니었을까 싶다.

 

칼이 아닌 펜을 휘두르는 그들의 이야기가 감히 고상할 수 없다. 세상에 ‘우아한 투쟁’만큼 불필요한 단어 조합도 없다고 여긴다.

 

 

IMG_0497.jpg

 

 

착하거나 미치거나, 완벽한 천사거나 교활한 괴물이거나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보통의 인간으로서 목소리 내고자 했던 여성들의 이야기가 이 책 <다락방의 미친 여자>에 담겼다.

 

무려 1,168쪽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책이다. 종이의 겹겹 사이에 당시 여성들의 처절한 몸부림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면, 이 벽돌로 집을 지을 수 있을 정도로 더 많이 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아주 자연스레 받아들여지는 반면에 외면받아야 했던, 불안에 떨며 맞서야 했던 그 시절의 찬란한 재능들은 또 이 시대에 와서 또 한 번의 검열과 비판을 무릅쓰며 어렵사리 한 편의 책으로 모였다. 저자가 될 권리를 누리는 지금의 우리는 당시의 미친 여자들이다. 또 다른 한 편에서는 우리 역시 또 다른 미친 여자로 취급받는다.


우리가 할 일은 명확하다. 정말 이 멋진 벽돌로 지은 집 안에서 더 많은 미친 여자들이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미친 듯이 읽고, 미친 글을 쓰고, 미치도록 퍼뜨려야 한다.

 

그렇게 보통의 인간으로 거듭나길 바라며.

 

 

[오수빈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