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작은 변화는 눈덩이처럼 뭉쳐서 큰 변화를 일으킨다"

해결중심 가족치료의 핵심 : 주체자로서의 변화
글 입력 2022.10.02 14:2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에세이 시리즈 : 정상가족은 없다

 

<정상가족은 없다> 시리즈에서는 가족 안에서 느끼는 고민과 갈등의 다양성을 진솔하게 나눕니다. 개인이 속한 가족이라는 체계를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고, 더 건강한 삶의 방식과 관계를 꿈꿉니다. 

 

5편 : 작은 변화는 눈덩이처럼 뭉쳐서 큰 변화를 일으킨다

 

 

“바뀐 게 없어. X가 제일 좋은데 제일 싫어.”


화제의 예능 <환승연애2>가 뜨겁다. 헤어진 연인들이 한 곳에 모여 생활을 하는 동시에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을 이어가는 리얼리티다. 시청자들은 몰입을 넘어서서 과몰입 상태에 빠져있다. 복잡미묘하다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그들의 사이. 제3자가 보고 있자면 게스트 뱀뱀의 말처럼 “탈모 올 것 같아요”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얼마전 방영된 에피소드에서 한 출연자의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X를 다시 만났으나 바뀐 것이 하나도 없다며 허탈한 감정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듣고 불현듯 <정상가족은 없다> 시리즈의 막바지를 장식할 예시로 적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결중심 가족치료로 소개할 예시를 머릿속에서 불티나게 찾고 있는 와중에, 출연자의 말 한마디가 모든 컨텐츠를 압축한다는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131.jpg


 

다시 환승연애로 돌아가보자면, 출연자들은 이별을 이미 경험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X와 무려 생활까지하며 얼굴을 마주볼 선택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각각의 출연계기는 다르겠으나, 아마도 ‘X와 나의 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쌀 한 톨 만큼은 있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다시 만났더라도 바뀐 것이 하나도 없다면 이전의 관계에 쉽사리 그린라이트를 한번 더 켜는건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변화하지 않으면 곧 그 관계는 더 나아갈 길이 없다. 잔인하지만 이별의 이유는 불변하다. 사람이 불변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잠재력이 있다고 믿는 '해결중심 가족치료'



해결중심-1.jpg

 

 

오늘은 시리즈의 마지막 장을 장식하는 해결중심 가족치료를 소개한다. 가족치료 분야에서도 경제성과 효율성이 입증된 이 치료의 놀라운 특징은 탈이론적이고 비규범적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목적지향적이다. 도움이 필요한 가족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하여 현재의 행동패턴과는 다르게 행동하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핵심은 목적을 향한 변화다.

 

이 치료에서는 '내담자는 이미 자신의 문제에 전문가'라는 관점을 가진다. 아무리 복잡한 문제를 지닌 관계라 하더라도 과거의 긍정적인 경험은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이를 예외상황이라고 하는데, 치료사는 이 예외상황을 발견하고 강화하도록 돕는 조력자 역할을 한다.

 

 

퍼즐.jpg

 

 

<환승연애2>에 적용하면 출연커플들은 X와의 과거 연애를 통해 반복적인 규칙과 예외상황을 알고 있다. 상대와 내가 어떠한 행동을 했을 때 싸움의 불꽃이 튀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 어떤 상황에서 사랑의 새싹이 다시 자라는지까지도. 하지만 나름대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봤자 밝은 미래가 보이지 않아 헤어짐을 결심했을 것이다.


이 프로를 보며 유난히 해결중심 가족치료가 생각났다. 인간에 대한 긍정적인 철학을 가지면서, 누구나 관계의 문제를 해결할 잠재력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기법. 강점을 강화하며 스스로가 해결의 주체가 된다고 믿는 영역이다. 사람들은 이미 필요한 자원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 만약 X와의 관계가 이어지지 않더라도 새로운 인연한테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진전이다.

 

방송에서는 오은영 박사님과 같은 전문가가 개입되는 일은 없다. 오로지 출연자들끼리만 생활하는 역동 안에서 관계가 이어진다. 그래서인지 더더욱 오지랖 넓은 마음이 불쑥 튀어나왔다. 해결중심 기법을 한번 적용해보라고 제안하고 싶었다. 물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목적도 있었지만 X로 인해 속상해하고 눈물흘리는 몇몇 출연자들을 보며 절로 드는 생각이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지금부터는 이 치료기법에 대해 거리낌없이 소개해 보겠다.

 

 

 

“작은 변화는 눈덩이처럼 뭉쳐서 큰 변화를 일으킨다”



눈이 펑펑내렸던 어린 시절의 겨울이 생각난다. 장갑을 챙겨 부리나케 밖으로 나가 눈송이를 한 주먹 쥐고 열심히 뭉쳤다. 처음부터 큰 눈사람을 만들기는 어려우니 작은 눈덩이부터 굴렸다. 귀는 빨개지고 손은 얼었지만 더 커다란 눈덩이를 불리는 데 온 정신이 팔렸다.

 

처음에는 손만큼 작은 크기의 눈덩이었으나 이리저리 눈을 굴리고 뭉치다보니 눈 깜짝할 새에 커다란 모양이 됐다. 처음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웅장함이었다. 다섯 살의 키와 꼭 비슷한 높이의 눈사람.

 

그때 알았다. 작은 변화를 반복하면 큰 변화로 이어진다는걸.

 

 

눈사람.jpg

 

 

갑자기 뜬금없이 눈사람을 만든 이야기를 한 이유가 있다.

 

눈사람을 만드는 원리와 해결중심 치료가 지향하는 바가 쌍둥이처럼 비슷해서다. 작고 사소한 변화를 목표로 세워 실천하기. 작은 변화는 눈덩이처럼 뭉쳐서 큰 변화를 일으킨다는 걸 기억하기. 눈덩이를 불리는 효과만 떠올려도 벌써 시작이다.


해결중심 가족치료사들은 과거의 잘못이나 실패를 샅샅이 꺼내어 복잡하게 분석을 하기보다 내담자의 장점이나 긍정적인 면에 초점을 둔다. 하지 말아야 하는 것 대신에 해야 하는 것을 더 많이 하도록 집중한다.

 

서로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우선이다. 어떤 행동이 더해졌을 때 관계가 회복될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즉 문제가 해결된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지에 대해 인식해야 한다. 그러려면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행동을 시작할 결심이 필요하다.

 

 

“문제보다 해결중심의 입장을 지지하기 때문에 문제가 어떻게 발생되었느냐, 즉 원인에 관해서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인간관계에서는 분명한 원인과 결과란 없기 때문에 문제의 원인을 밝히기보다는 문제가 해결된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즉, 문제의 내용보다는 문제에 대한 어떤 해결방안이 있으며, 어떻게 새로운 행동 유형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에 초점을 둔다.”

 

- 가족치료(김유숙) p.363 중에서


 

비유하자면 새롭게 만들고 싶은 눈사람의 크기를 키운다. 만약 어머니와 아들의 갈등을 가정했을 때, 어머니에게 안부전화를 하지 않을 정도로 모자관계에 소홀한 아들이라면 어떤 눈사람을 키워야할까?

 

해결중심 치료사라면 구체적이고 명확한 목표를 가진 눈사람을 키우라고 말할 것이다. 구체적이라 함은 일주일에 1번과 같은 수치, 명확한 목표라면 어머니의 일상과 안부를 묻는 다정한 말을 하는 것이다. 정리하면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어머니께 다정하게 안부 전화를 하는 눈사람"을 키워야한다.

 

혹은 서로에게 무관심한 말투와 행동으로 상처를 주는 커플이 있다고 하자. 이들은 최소 이틀에 한번씩은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 공동의 눈사람을 만드는 게 필요할 것이다. 대신 대화할 때 상대를 존중하는 말을 하고, 의견에 대해 비난하거나 비판하지 않는 규칙도 만들면 더 좋다.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것일지라도 새로운 변화는 관계에 더할 나위없이 중요하다. 그 사소한 것마저도 시도하지 않는다면 변화를 바라는 것은 망상이다. 

 

따라서 치료사는 가족에게 지금 하고 있는 무언가를 ‘하지 말라고’ 하기보다,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라’고 권장한다. 실현 가능성 면에서 훨씬 좋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정적인 표현은 지양하고 긍정적인 변화행동을 촉진하는 언어를 사용한다.

 

 

 

“기적이 일어난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 같습니까?”


 

해결중심 치료는 단기에 이뤄진다. 이를 위해 치료사는 해결지향적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가족이 자신들의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예외적 상황을 계속해서 이끌어낸다. 대표적인 질문으로는 다음의 4가지가 있다.

 

 

내 프로젝트.jpg

 

 

1. 예외질문 - 이 질문은 내담자들이 의식하지 못한 것을 찾아내고 성공한 경험을 강화하고자 예외 상황에 초점을 둔 질문기법이다. 예를 들어 "문제가 일어나지 않은 때가 있었나요?". "문제가 일어날 때와 없는 때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와 같은 물음이다.

 

2. 기적질문 - 내담자가 원하는 것을 시각화하고 그리도록 돕는다. 문제를 제거하지 않은 채 문제와 한발자국 멀어져서 해결책을 상상하게 한다. "내일 아침, 잠에서 깨어났는데 기적이 일어났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렇다면 남편과 아내분께서 첫 마디를 뭐라고 말씀하실 것 같나요?"와 같은 질문으로 문제가 이미 해결된 상황을 구상하도록 인도한다. 문제의 원인에만 집착하는 부부라면 기적질문을 통해 변화된 자신들의 긍정적인 모습을 상상하고 기대할 수 있다.

 

3. 관계성 질문 - 내담자를 둘러싼 사람들의 생각을 파악하도록 유도한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객관적으로 성찰하도록 장려하는 질문이다. 가령 자녀에게 진로 문제로 압박을 주는 아버지가 있다면 "아버지께서 관용적인 말씀을 하신다면 자녀분은 어떻게 달라질까요?"라는 표현을 해볼 수 있다.

 

4. 척도 질문 - 문제의 심각성과 정도, 해결에 대한 의지, 변화에 대한 확신 등을 숫자로 표현한다. 일반적으로 1에서 10 사이의 수치로 표현하고, 긍정적일수록 10에 가까운 정도에 해당한다. 이별을 고민하고 있는 커플이라면 척도 질문을 통해 문제 해결에 대한 희망과 가능성을 가늠해볼 수 있다.

 

치료현장이 아니더라도 이 질문들은 일상생활의 관계에서 충분히 적용해볼 수 있다. 질문을 통해 스스로에게 새로운 행동과제를 준다. 이는 더 나아가 '자기결정력'을 증진하는 데 효과적이다. 어지러운 문제상황에 매이거나 한탄하기보다는 해결에 대한 방법과 태도를 구체적으로 만들 수 있다.

 

*

 

지금까지 글을 읽은 독자들의 반응은 여러 갈래로 나뉠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해결중심 치료에는 가족과 치료사의 관계 유형이 있다는 바다. 아마 독자의 피드백도 다음 3가지 중 비슷한 방향에 걸쳐있을 거라 예상한다.

 

 

<가족과 치료사의 관계 유형>

 

1. 고객형 :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이든 시도하려는 동기가 있다

2. 불평형 : 타인의 변화만 필요하다. 자신이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음을 안 믿는다

3. 방문형 : 왜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첫째, 고객형은 문제해결을 위한 의지와 동기가 강력한 사람이다. 자신이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라고 느낀다. 적극적으로 스스로 변화할 필요를 느낀다.

 

안타깝게도 치료 현장에서 고객형 가족의 비율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이 실정이다. 하지만 고객형 가족으로 참여한다면 보다 더 빨리 행복하고 단란한 미래가 가까이 온다는 것은 분명하다. 단순히 치료를 참여하는 태도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을 대하는 자세도 이처럼 주체적이라면 많은 문제를 현명히 해결할 수 있다.

 

둘째, 불평형은 문제증상을 보이는 가족을 지목하여 자신이 희생을 당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역할이나 위치를 바꾸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변화하는 것만 필요하다고 느낀다. 치료사는 이들에게 새로운 관점을 발견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아마 수많은 사람들이 불평형에 속할 것이다. 나는 문제가 없고 상대만 문제투성이라는 관점. 관계의 문제는 순환적이라기 보다 일방적이라는 신념에 갇혀 불만과 비판을 일삼는다.

 

셋째, 방문형문제를 해결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변화에 대한 동기가 약하다. 치료 자체에 대한 신뢰가 낮다.

 

문제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고착화되는 관계 유형의 사람들은 대부분 방문형에 속한다. 변화할 필요도 없고, 변화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은 불변하다.

 


열쇠.jpg

 

 

해결중심 기법의 효과는 자신이 변화의 키(Key)를 가지고 있다고 믿을 때 시작될 것이다. 단지 이 글을 한 편 읽었다고 해서 변화가 시작되는 건 만무하다. 어떤 관계에서 갈등을 직면하고 있고, 그 갈등에서 어떤 행동이 시작되어야 변화가 이뤄질지 충분한 고민의 시간이 필요하다.

 

작은 변화가 쌓여 큰 눈덩이처럼 커다란 변화가 시작될 때, 행운의 열쇠가 다음의 문으로 당신을 안내할 것이다.


어느덧 <정상가족은 없다> 시리즈의 마지막 이론 소개를 끝마쳤다. 짧지만 핵심적인 내용을 담아 가족관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다양한 시각을 전하고자 했는데, 그 목적이 작게나마 이루어졌기를 간절히 바라는 시간이었다.

 

사람의 희노애락은 모두 관계에서 오는 것이므로 가족치료의 기법이 더 많은 사람들의 삶에 빛과 소금이 되도록 앞으로도 널리 알리고 싶다. 이 글을 빌려 지금까지 <정상가족은 없다> 시리즈를 애독한 독자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이어서 <정상가족은 없다>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가족상담소'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전문필진_신지예.jpeg

 


[신지예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