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제주 게스트하우스 스텝 생활을 하며

글 입력 2022.09.30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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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과 헤어짐


 

제주에서 한달을 살며, 그것도 게스트하우스의 스텝으로 생활하며 생각해보게 되었던 것 중의 하나. 만남과 헤어짐.

 

만남을 참 어려워 했던 어린 나였다. 만남에 비해 헤어짐이 쉬웠던 아이였다. 나와 맞지 않는다, 나에게 상처를 준다 싶으면 가차없이 뒤돌아섰다. 이런 헤어짐을 잘 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잘하는거라며 의기양양 하곤 했었다.

 

두 번의, 기억에 남는 이별이 있다. 할아버지와의 이별 그리고 연인과의 이별. 참 다른 형태의 이별이지만 어떤 쪽으로는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직까지도 할아버지를 떠올리면 어딘가 살아계실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명절에 찾아가면 언제나처럼 왔나- 하시며 집을 지키고 계실 것만 같다.

 

헤어진 그 사람을 생각하면 참 낯설다. 한때 누구보다 가까웠지만 사실 우린 서로에 대해 아는게 별로 없음을 많이 느낀다. 어떤 소설 속에서 말했던 것 마냥 그 사람은 나에게 지상에 발을 붙이고 살아있는 사람도, 그렇다고 죽은 사람도 아닌 것이다.

 

이별은 내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찾아온다. 속절없이. 맺고 끊음을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오만한 아이는 이제 없다.


만남과 헤어짐 모두가 어려워졌다. 헤어짐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잊혀짐이 못 견디게 슬펐다. 내가 아는 얼굴들을, 목소리를 잊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은 날 떠나가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했다. 끝날 만남은 하고 싶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멀어져 가는 관계들도 날 슬프게 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산다는 것은 매일매일이 만남과 헤어짐 이라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


한달 동안 참 많은 사람을 만났고, 또 보냈다. 몇일동안 연박을 했던 사람이 체크아웃을 하면, 나라는 사람은 괜히 조금 슬퍼졌다.

 

일주일 가량을 우리 게하에서 묵었던 분을 보내던 날이 기억난다. 잘 있으라며, 정중하게 악수를 하고 떠나가던 그 분. 나는 아주 잠깐 슬퍼졌다가, 웃으며 그를 보내 주었다.


효리네 민박에서, 이효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손님들을 보낼때, 또 보자란 기약 없는, 어쩌면 지키지 못할 말은 하기 싫어서 그냥 잘사세요~ 라고 한다고. 나도 그런 마음으로 많은 손님들을 배웅했다. 안녕히가세요~ 잘사세요~ 웃으면서 떠나가는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는 연습.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 이 당연한 사실을 참 많이 미워했는데, 그걸 조금은 더 받아들일 수 있는데에 도움이 되었던 스텝 생활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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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지는나


 

이건 어쩌면 제주에서 산다는 것 자체와는 별 관련이 없는, 개인적인 감상이다.


나를 아는 사람이 한명도 없는 곳에서의 생활을 통해 느낀 것들이 많다.

  

이영하의 여행의 이유에서, 우리는 여행지에서 nobody가 된다고 했던게 기억 난다. 우리는 평상시 사는 곳에서 누군가의 가족, 누군가의 친구이다. 즉 somebody인 것이다.

 

그러나 여행지에서 우리는 아무도 아니다. 그런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의 시작. 사실 이건 앞으로의 여기서의 나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가 온전히 나의 선택이라는 얘기다. 부산에서의 나와 제주에서의 나는 어떻게 다를 것인가?


스텝들과 저녁을 먹다가 mbti 얘기가 나왔다. 나는 infp인데, 언니들은 다 내가 e일줄 알았다고 했다. 그 얘기를 되새겨볼수록 참 신기했다.

 

나는 내향성이 80퍼센트가 넘는 사람이다. 에너지의 방향이 안으로 향하는 사람. 내가 외향적이게 보인다는 말은 난생 처음 들어봤다.

 

처음엔 아 이 사람들은 나를 전혀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들이 나를 모른다고 하지만, 사실은 이 사람들에게 나를 보여주지 않은 것이다.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보여지는 나'는 사람마다 집단마다 다르고, 그 모습은 보는 사람에 따라서도 다르지만, 내가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서도 다르다는 걸.

 

"나는 늘 누군가가 나를 발견할까 봐 두려웠고, 막상 아무도 발견해 주지 않으면 서글펐다." - 사립학교 아이들, 커티스 시튼펠드


정말 딱 내 마음 같은 구절이다. 나는 늘 나를 드러내기를 겁내면서, 사람들이 진짜 나를 알아주기를 바랐다. 모순이자 투정. 보여지는 나와 진짜 나의 간극.


그렇지만 어쩌면 보여지는 나도 내 모습의 일부일 수도 있겠다. 생각보다 친화력이 좋고, 생각보다 외향적인 모습도 가진게 나구나. 이런 내가 낯설기도 했다.


한 달 동안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그 수많은 만남속에서 알게되는 것은 오히려 나라는 사람이다.

 


[김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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