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콩나물시루 퇴근길에 바라본 노을 [사람]

인생 20%를 지하철에서 보낸다는 것
글 입력 2022.09.23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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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에 살면 인생의 20%를 지하철에서 보내게 된다.

 

누군가가 SNS에 쓴 글은 밈(인터넷 유행어)이 되었다. 유독 경기도민을 콕 집은 이유는 서울에 가장 근접한 수도권 지역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인생을 하루로 축약해 본다면 하루 24시간 중에 무려 4시간을 지하철에서 보낸다는 것과 같았다. 지하철에서 무려 4시간이라니. 어떠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도 모자람이 없는 시간이다.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자면 내가 졸업한 대학교는 집에서 가까운 서울이었다. 취업을 하게 되면서 지하철 노선도 끝에서 끝으로 장거리 이동을 시작했다. 장담하건대, 팀원 중에서 통근시간이 가장 길었던 걸로 기억한다.


가까운 회사 앞으로 이사하면 되지, 뭣하러 고생해서 멀리 다녀?


내게 던져 준 해답은 명료했다. 불편함이 자리한 것은 단지 내가 '경기도민'이기 때문이었을까.


최근 수도권에 기록적 폭우가 내렸을 때 침수 피해를 입은 반지하 주민들에게 지상층 이주를 권하는 말들이 나왔던 모양이다. 반지하 주민 대부분이 주거취약계층인 것을 생각하면 지상에서의 깨끗하고 안전한 집, 누군들 왜 모르겠나 싶었다. 저마다의 위로 방식은 다르겠지만 서로 안고 있는 환경을 이해하기엔 우리는 달랐고 아프기까지 했다.


자취생활은 사회 초년생으로서 감당하기 어렵기만 했다. 다시 돌아와 통근에 대하여 이야기하자면, 서울살이는 이상향 같은 거다. 집이 근무지에서 멀어지면 자동으로 삶의 질이 떨어졌다. 나의 경우에는 전시회와 각종 문화 예술 행사에 관심이 컸으므로 수도권에서 멀어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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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2호선에서 바라본 노을

 

 

모두 잠든 새벽, 부지런히 일어나 첫차를 타고 콩나물시루 출근길을 달리던 나는 그 숨 막히는 전선에서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대부분 스마트폰을 손에 쥔 직장인들이었다. 단어장을 달달 외는 학생들도 보였으며 함께 퇴근을 마친 길동무와 상사 험담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비행기를 탔으면 일본을 가고도 남았을 시간들을 함께했다.


문득 생각한다. 그 시간들에 대하여. 왕복 4시간 동안 하릴없이 연예면 기사를 훑고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는 무력감 탓이었다. 평소 챙겨보던 드라마의 본방사수를 놓쳐 시간을 냈더라면 그도 그럴 수 있겠다. 자취생에게 퇴근 시간 이후의 시간은 자기 돌봄 시간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그 시간들은 '시간 죽이기'에 가깝다는 소견이다. 어떻게 하면 지루한 퇴근시간을 가능한 한 빨리 흘려보낼 수 있을지에 대한 몸부림 같았다.


물론 스스로에게 빠져버린 권태기에 대한 이야기다. 일에 치이며 반복적인 일상을 환기 시켜보려는 노력일 수 있겠다. 스마트폰 검색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약 4년 전의 일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미디어 시청에 대한 고정적인 시간 분배가 필요했다.


플랫폼 서비스가 대중적으로 자리 잡고 우리는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를 접하게 되었다. 숨 막히는 퇴근길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언제 어디서나 시청 가능했고 해야 할 일마저 멈추게 만들었다. 일상의 무력감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는데, 도리어 무력해지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독서가 취미라고 말했던 날들을 기억해 냈다. 활자 중독이거나 책 한 권을 완독하고 얻는 성취감도 있겠지만 책을 읽는 동안 평안을 되찾는 시간을 사랑했다. 에디터 활동을 시작하며 친구들은 나의 글쓰기 욕심에 놀라워했다. 글을 읽는 것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쓰는 걸 좋아하는지 몰랐다, 라며. 지하철 딱딱한 의자에 앉아 틈틈이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길게만 느껴졌던 4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고 아쉽기까지 했다. 한 정거장만 더 가면 완성할 수 있었을 텐데.


이후로 책 한 권씩을 챙겨 다니는 습관이 생겼다. 약속 장소로 향하는 지하철에서도 책을 읽었고 아직 남은 상영시간을 기다리며 책장을 넘기고 원고를 썼다. 이성을 되찾고 머릿속에 흩어진 생각들을 조각조각 모아 써 내려가니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했던 기분은 차분해졌다. 지상을 지나가는 짧은 찰나에 고개를 들어 노을이 붉게 물든 예쁜 하늘을 바라보았다.

 

벌써 2022년의 마지막을 100일 정도 앞두고 있다. 아직 시작도 못한 일들이 많지만 어떤 춤사위 마냥 일제히 흔들리는 지하철에서 오늘 하루만큼은 만족스럽게 마무리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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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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