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소시민들의 발버둥 - 영화 '썬더버드'

강원랜드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한 여름밤의 추격전
글 입력 2022.09.23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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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썬더버드를 보러 다녀왔다. 느와르 영화라는 것,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2관왕을 했다는 것 정도의 배경지식만 있는 채였다. 평소 느와르 장르는 남성향 영화가 대부분이라는 편견이 있어 멀리해왔던 터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왠지 그렇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한 줄 평을 이야기하자면 몰아치는 사건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캐릭터들에 정신없이 휘둘려 다닌 시간이었다. 정말 이런 인물이 강원도 사북 어딘가에 살고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했고 또 입체적이었다.

 

 

 

인물간 관계성


 

입체적인 캐릭터와 그 사이의 관계성이 영화의 백미다.

 

서울에 정착하는 데 실패하고 고향에 내려와 택시 운전 일을 하는 태균(형), 평생 고향에 발붙이며 보고 들은 게 도박이라 인생을 자꾸만 배팅하는 태민(동생), 그리고 고등학생 때부터 태민이와 사귀었고 지금은 ‘콤프깡’(카지노 고객에게 제공한 마일리지를 불법으로 현금화해주고 수수료를 떼어가는 것)을 하며 지내는 여자친구 미영. 이렇게 셋이 영화의 주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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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순서대로 태민, 미영, 태균)

 

 

세 인물의 과거에 대해 관객들에게 친절하게 알려주는 것은 없다. 뭐하던 사람이었는지, 왜 이 동네에 사는지. 그런 거 하나 제대로 말 안 해준다. 따라서 별다른 정보 없이 능동적으로 인물들의 정보를 수집해야만 한다.

 

인물의 말투와 바디 랭귀지를 관찰하고, 새로 등장한 캐릭터의 말에서 과거의 행적을 알아내 정보를 취합했다. “실제 세계에서 타인을 알아가는 과정과 유사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는 감독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어쩌면 모호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우리는 그렇게 타인을 파악하지 않는가.

 

인물 간 관계성이 독특하다는 점에서 또 한 번 차별화가 된다. 인물끼리 분명히 정은 있는데 애정보단 애증에 가까운 느낌이다. 태균은 청소년기에 학교에서 잘 나갔고 외모도 뛰어난 태민에게 묘한 자격지심이 있다. 태민은 그런 거 하나 의식하지 않고 형을 대하나 애매하게 함부로 대한다. 필요할 때만 이용해 먹는 느낌이다.

 

미영은 태민이 요구하는 걸 다 들어주며 덩달아 태균을 무시하는데 나중에는 둘 다 선택하지 않는다. 태균은 미영을 아닌척하지만 좋아해서 둘이 서울로 뜨자고 말하지만 결국 버려진다. 얽히고설킨 관계가 재미있고 그 안에서 해묵은 감정들이 살짝 비칠 때면 이로 인해 얘네가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이 안 되어 버린다.

 

조연들마저 재미있다. 사채업자인 준모가 등장하는데 걔의 말에 따르면 태민은 ‘악마 새끼'다. 태민의 괴롭힘 때문에 중고등학교 시절에 죽고 싶었고 여전히 걔를 극복하기 위해 애써 스스로 악인이 되려고 한다. 세 보이려고 한 번은 사람 몸에 불을 지르려고 했던 적까지 있다. ‘네가 강해져야 가족을 지킨다’며 가스라이팅 하는 삼촌의 세뇌 때문에 자신을 몰아붙이는 구석도 있다. 극단적이지만 또 어쩐지 찌질한 인물의 모습들에 새로움을 계속 발견하게 되었다.

 

 

 

강원랜드와 밤새 벌어지는 사건들


 

장소와 시간 배경의 독특함도 빼놓을 수 없다. 강원랜드가 있는 사북 지역 배경의 가을 밤을 배경으로 한다. GV에서 감독님이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호스트 덕분에 작품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실 정도로, 그 공간과 사람이 주는 임팩트가 영화에 많이 반영된 것 같다.

 

굳이 강원랜드여야 했던 까닭은 도박이 주 소재로 등장하는 것에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함도 있었겠지만, 서로에게 큰 관심이 없고 묘하게 건조한 영화의 분위기를 십분 살리기도 했다.

 

또, ‘콤프깡’을 해서 먹고사는 배경과 일상적으로 들르지는 않는 공간인 전당포를 자연스럽게 극 속에 등장시킨다. 도박을 하고 차를 찾으러 간 주차장에 비싼 차들이 주인 없이 먼지 쌓여있는 풍경들, 그런 것들이 쓸쓸함을 자아내며 이 곳이 얼마나 욕망으로 가득한 공간인지를 알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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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모든 사건이 하루 동안 벌어진 일이라는 점이다.

 

본격적인 사건이 해가 떨어질 무렵 동생이 형에게 전화해서 큰일 났다고 자신을 찾으러 오라고 하면서부터 시작되는데, 처음에는 평범한 행동을 하던 인물들도 시간이 흐를수록 자꾸만 충동적인 선택을 한다.

 

일명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새벽에 취한 것인지? 섣부른 행동은 일을 안 좋은 방향으로 흐르게 만든다. 인물들의 충동적인 면모를 보여주기에 이 새벽의 시간대는 유리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아주 막장은 아닌 이야기


 

앞서 말했듯 인물들은 점점 극단으로 간다. 처음에는 돈을 모아서 전당포에 맡겨진 차를 찾으려고 했으나, 돈을 구할 방법이 없자 웬 아저씨한테 콤프깡을 해 돈을 받아낸다. 겨우 돈을 구해왔는데 전당포 문이 닫혀 있자 강제로 유리문을 부수고 들어가다가 전당포 주인 할머니와 맞닥뜨리고 실랑이를 벌이던 중 할머니를 기절시키고 만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벌어지는 사건들 속에서 덜 최악의 선택을 하려고 애쓰다가 결국 욕망을 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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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균이는 돈을 잃고 태민이는 차를 잃었으며 미영이는 고향을 떠나고 전당포 할머니는 당장 지낼 집이 없어진다. 그런데도 최악까지 치닫지는 않는 게 인상적이었다.

 

미영이는 콤프깡을 할 때도, 사채업자 준모에게 인질로 잡혀 있을 때도 위험한 순간을 암시했지만 결국 성매매를 하지는 않는다. 준모는 삼촌의 충동질에 눈이 돌아서 태균이를 죽어라 패지만 불을 지르는 일을 피한다. 전당포 주인 할머니는 자신을 기절시킨 애들을 쥐잡듯이 잡지만 무리한 요구를 하지는 않는다.

 

누굴 의도적으로 괴롭히려는 게 아니라, 조금이나마 잘 살아 보려는 각자의 발버둥이지 않았나. 악인은 아닌 소시민의 면이 보이는 인물들 속에서 점점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대단히 악하지 않고 어쩐지 찌질하고 유쾌하고 슬픈 이야기였다.

 

*

 

모난 인물들 사이에 오가는 현실적이고 날선 감정들과 공간과 시간적 배경이 어우러져 한 편의 속도감 넘치는 영화가 되었다. 더 섬세한 감정선까지 잡아낼 수 있을 것 같아 한 번 더 보고 싶다.

 

만약 생생하고 입체적인 인물들의 느와르를 보고 싶다면 꼭 보기를 추천한다.

 

 

[고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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