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4번 타자'에 대한 추억 [운동]

글 입력 2022.09.15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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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프로야구 시즌도 어느덧 막바지를 향해가고 있다. 국민 스포츠답게 이번 시즌도 볼거리가 풍성했는데, 그중 국내 프로야구 출범 40주년을 맞아 진행하고 있는 ‘프로야구 40주년 레전드 올스타 40인’은 특히 인상적이다. 7월 16일을 시작으로 매주 4인의 레전드가 팬들과 전문가 투표를 통해 선정되어 발표되고 있다.


9월 12일 ‘우타 거포 계보’ 타이틀로 김동주가 레전드 40인에 선정되었다. 김동주는 1998년부터 2014년까지 두산(입단 당시 OB) 베어스에서만 뛴 원클럽맨이자 붙박이 4번 타자로 활약한 팀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였다. 미리 말하자면, 나는 두산 베어스를 응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선정 소식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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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주의 '프로야구 40주년 레전드 올스타 40인' 선정 포스터

 

 

나는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야구 애호가이다. 어릴 적부터 취미 활동으로 야구를 해왔고, 쉬는 날에는 두산 베어스를 응원하기 위해 잠실야구장에 방문하기도 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릴 적 아버지가 응원하던 팀을 따라 자연스레 그 팀을 응원하고 있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두산을 응원하고 있다.


처음 야구장에 간 날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초등학생 때였으니 십여 년 전, 아버지와 함께 잠실야구장에 가게 되었다. 당시에도 취미로 야구를 하고 있어 경기 규칙은 잘 알고 있었으나, 그뿐이었다. 어느 팀에 어느 선수가 있고, 그 선수는 어떠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 야구장에 방문하면 가장 놀라는 것 중 하나가 응원 문화이다. 나 역시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에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열정적인 응원으로 유명한 롯데와의 경기를 보러 갔으니 더더욱 잊지 못할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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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이대호 (출처 : 구단 홈페이지)

 

 

당시 롯데의 4번 타자는 ‘조선의 4번 타자’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이대호. 그는 타석에 들어설 때부터 남달랐다. 롯데의 응원석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워지며 이대호의 응원 구호와 응원곡을 외쳤고, 특유의 풍채와 ‘4번 타자’라는 타이틀이 맞물려 당장이라도 무언가 일을 터뜨릴 것만 같은 긴장감이 야구장을 감쌌다. 경기 결과만 얘기하자면, 나의 인생 첫 직관 경기는 이대호의 활약으로 롯데가 승리하며 패배의 쓴맛을 보게 되었다.


한편, 두산의 4번 타자는 앞서 소개한 김동주였다. 그가 타석에 들어설 때면 야구장에 캐리비안의 해적 OST인 ‘He’s a pirate’가 울려 퍼지며 ‘4번 타자’의 위압감이 야구장 전체를 메꾸었다. 2할 후반대의 타율과 4번 타자로서는 아쉬운 홈런 개수로 상대팀 4번 타자 이대호에 비해 낮은 시즌 성적이었지만, 팬들은 연신 ‘4번 타자 김동주’를 외치며 그에 대한 자부심을 내비쳤다.


잠시 ‘4번 타자’라는 타이틀에 대해 얘기하자면, 팀에서 가장 잘 치는 타자가 4번 타자라는 것이 이제는 상식화되어 많은 사람들이 어떠한 느낌인지 대략적으로는 알고 있다. 3번의 아웃카운트로 공격과 수비가 교대되는 게임의 특성상, 1번과 2번 타자가 출루에 성공하면 4번 타자는 공격이 끝나기 전 찬스를 반드시 살려야 하는 타순의 핵심이다.


당시 이대호는 타격 부문 7관왕 수상을 바라볼 정도로 최고의 공격력을 바탕으로 커리어 하이 시즌을 만들고 있던 반면, 김동주는 전성기가 지나 선수 생활의 황혼기를 보내며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었다. 그럼에도 김동주가 선수 생활 막바지까지 4번 타자로 활약한 것은 ‘상징성’ 때문이다.


4번 타자의 덕목으로 찬스 상황에서 가장 잘 칠 수 있는 파워와 컨택트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4번 타자에게는 팀을 대표할 수 있는 상징성과 정신적 지주가 되어 팀원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능력, 베테랑으로서 상대 팀에게 위압감을 줄 수 있는 힘이 필요했다. 당시 두산의 4번 타자 김동주는 그런 선수였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준결승전,

4번 타자 이승엽의 극적인 역전 홈런

 

 

이러한 4번 타자의 역할이 가장 필요했고, 가장 적중했던 순간은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찬란한 순간 중 하나였던 베이징 올림픽 때이다. 당시 이승엽은 팀의 고참이자 정신적 지주로 대부분의 경기에서 4번 타자로 출전하였지만, 부진한 성적으로 인해 4번 타자의 힘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럼에도 팀의 무게감을 위해 이승엽은 꾸준히 4번 타자로 기용되었고, 결국 준결승전 역전 홈런과 결승전 선제 홈런으로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 수상에 일조하였다. 4번 타자에 대한 믿음에 보답을 하지 못했던 이승엽은 이 홈런들로 마음의 짐을 덜어놓으며 눈물을 흘렸고, 그렇게 국가대표 4번 타자는 ‘국민 타자’가 되었다.


이승엽의 선수 생활 마지막 시즌이던 2017년, 그의 마지막 선수 시절 모습을 직접 보기 위해 삼성의 홈구장이 있는 대구에 방문했다. 나는 원정팀 두산을 응원하기 위해 원정팀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이승엽이 타석에 섰을 때, 원정 응원석에서 경기를 관람하던 한 삼성 팬분이 “마지막인데 함께 응원해 주시죠!”라고 외쳤다.


그렇게 나를 포함한 원정 응원석에 있던 두산 팬들은 상대팀 4번 타자의 응원구호를 외치는, 다소 낯선 장면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누구도 기분 나쁜 내색을 비추지 않았다. 삼성의 4번 타자 이전에, 국민의 4번 타자였기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국민 타자' 이승엽은 은퇴 경기에서도 연타석 홈런을 기록하며

마지막까지 '이승엽'다운 모습으로 그라운드를 떠났다.

중계방송 당시 캐스터의 홈런 콜

"우리는 이 선수를 어떻게 보낼까요"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었다.


 

이날을 계기로, 가급적이면 레전드 선수의 마지막 시즌에는 해당 팀과의 경기를 관람하러 간다. 2주 전에는 이대호의 선수 생활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야구장에 방문하였다.


십여 년 전, 나에게 처음으로 패배의 쓰라림을 남겨주었던 이대호는 여전히 자이언츠의 심장이었다. 당장이라도 일을 낼 것만 같았던 그 웅장함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였다. 그날 경기도 거짓말처럼 만루 홈런을 만들어내며 롯데가 승리하였고, 이대호는 나에게 마지막까지 무서운 상대 팀 4번 타자로 남게 되었다.

 

 

은퇴 시즌 이대호의 만루 홈런 (2022년 9월 2일)

 

 

2017년 은퇴한 삼성의 이승엽, 2020년 은퇴한 한화의 김태균과 LG의 박용택에 이어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는 롯데의 이대호까지, 팀의 상징과도 같은 4번 타자급 프랜차이즈 스타들이 줄지어 선수 생활의 마침표를 찍고 있다.


문제는 이들의 은퇴 이후 팀별로 이러한 상징적인 선수들을 보는 것이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은퇴를 앞두고 있는 이대호를 비롯하여, 현재 리그의 일부 베테랑급 선수들을 제외하고는 한동안 ‘영구결번’이 될 만한 선수가 없을 것이라는 게 대중들과 전문가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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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시절 하나의 소속팀에서 활동한 '원 클럽맨'이자 팀의 '4번 타자',

구단의 상징과도 같았던 김태균과 박용택.

이승엽의 등번호 36번과 더불어 이들의 등번호 52번과 33번은 해당 팀에서

그 누구도 사용할 수 없는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어있다. (출처 : 각 구단 홈페이지)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부쩍 늘어난 선수들의 몸값에 의해 팀을 이적하는 일이 잦아져 소위 ‘원 클럽맨’ 레전드 선수를 접하기 힘들어졌다. 무엇보다 프로야구의 인기와 명성이 점점 하락하고 있는 것도 큰 원인이다. 불법 도박과 승부조작, 방역수칙 위반 등으로 인해 수많은 간판스타급 선수들이 팬들에게 실망만을 안긴 채 그라운드를 떠났고, 국제 대회에서의 부진과 심판의 오심 논란 등으로 팬들은 더 이상의 드라마 같은 경기를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4번 타자와 함께했던 동화 같은 추억, 마음속 영웅들이 만들어 낸 기적. 어쩌면 지금까지 스포츠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존재의 이유이다. 비록 굵직한 업적을 남긴 스타들이 하나둘 유니폼을 벗고, 프로야구도 침체의 길을 걷고 있지만, 아름다운 승부의 세계 속 행복한 추억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오랫동안 남겨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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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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