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깜깜한 밤의 놀이터 [사람]

흔들거리는 그네 위의 굳건한 대화들
글 입력 2022.09.09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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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일정이 없어 하루종일 집에 누워 있던 날, 단 게 먹고 싶어 혼자 카페를 가기로 결심한다. 아무도 만나지 않은 하루가 못내 아쉬워 집 근처에 살고 있는 친구들과의 단체 메신저방에 나올 사람이 있는지 묻는다. 기꺼이 나오겠다는 친구와 카페에서 조각 케이크와 음료를 시키고 앉아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새 매장 마감 시간이 되었다.
 
초반의 가벼운 이야기들은 어디 가고 진지한 대화의 물꼬를 트기 시작한 우리는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워 놀이터에 가기로 결정했다. 어릴 때는 마트에서 쭈쭈바 하나씩 사들고 가곤 했는데, 그날은 패스트푸드점의 조금 비싼 아이스크림을 사갔다. 한 손에 아이스크림을 든 채로 집 근처의 놀이터에 찾아갔다. 어릴 적의 나에게 이 놀이터는 제법 컸던 것 같은데, 어쩐지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도 금방 그네에 도착했다. 마침 두 개 있던 그네에 친구와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았다.

친구 소개를 잠깐 해보자면,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어리다. 개인적으로 나이가 뭐 중요한가 생각하지만 친구라고 소개해놓고 나중에 가서 나보다 몇 살 어리다고 말하면 혼란스러워하는 사람을 여럿 봐왔기에 미리 밝힌다. 이 친구(이하 A)와는 초등학생 때 성당에서 만났다.
 
우리는 토요일마다 있던 어린이 미사를 위해 성당에 매주 나왔고, 자연스럽게 얼굴을 익히게 되었다.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이 되어 미사 시간이 일요일로 바뀐 후 몇 년 간은 내가 성당에 자주 나가지 않은 탓에 자주 보지는 못 했다. 우리 둘은 모두 입시를 마치고 중고등부 교사회에 들어갔다. 그 뒤로 약 3년이 흘렀다. 이 정도가 그와의 관계 설명이다.

몇 년간 성당에 가지 않은 내가 교사회를 해도 되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라면, 나도 무어라고 딱히 대답을 할 수는 없다. 다만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어쩌면 뻔한 것들이다. 모태신앙인 탓에 기억도 안 날 어릴 때부터 엄마의 손을 잡고 성당에 오는 것이 나는 익숙했다. 초등학생 때는 성당에 오면 반갑게 맞아주시는 어른들의 품이 마냥 좋고, 친구들과 노는 것이 재밌어서 열심히 다녔다.
 
중고등학생 때는 공부를 핑계로 한동안 성당에 나오지 않았지만 마음 한 켠에는 늘 성당이 있었다. 당연하게 밥을 먹기 전 기도를 드리고, 기쁜 일이 있으면 감사하다고 기도를 드리고, 힘든 일이 있으면 도와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사춘기를 지내며 어쩐지 불안정하고 붕 떠있다고 느낀 나의 마음은 이내 성당에 다시 나오면서 진정되기 시작했다. 나의 평생에 걸쳐 온 이 경험들이 나에게는 정말 소중했다. 감사한 인연들을 만나고 내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는 공간인 성당의 역할이 컸기에 조금은 당연하게 교사회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래서 그 뒤로 마냥 어릴 때처럼 행복했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하겠다. 성당이라는 특성상 그 부담이 학교나 학원같이 공부와 관련한 기관의 것에 비해 덜할 수는 있겠으나 책임으로 따지자면 그들과 다를 바 없다. 내가 그랬듯 인생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고 있을 학생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만 해도 정말 어려운 일이다.
 
거기에다 그들을 위한 활동을 기획하기 위해 결재를 올리고, 예산을 책정하고, 실행한 후 그를 평가하는 등의 일련의 과정은 계속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마라톤같아 숨이 찰 때도 많다. 그럼에도 내가 겪은 좋은 기억은 이를 버틸 수 있도록 해준다. 아이들이 열심히 참여해주는 모습을 보면 힘들었던 과정은 잊고 결국 그 아이들의 모습만이 결과로 남아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 과정을 함께하며 A와의 관계는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올해 내가 반 년간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직장인인 A와의 공통점이 하나 더 생겨 대화를 자주 나누게 된 탓도 있겠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회사이기에 낯선 것이 많았고 그 때마다 A에게 내 이야기를 하면서 많이 물었던 것 같다. A는 사회 생활을 먼저 해본 선배로서 조언을 해주기도 하면서 내 말들을 경청해주었다. 경험해보지 못하면 이해는 할지언정 공감은 못한다고 했던가, A의 회사 생활을 멀리서 바라볼 때에는 그저 신기하고 멋있어 보이기만 했는데 내가 그 입장이 되어보니 그가 참으로 존경스럽고 대단해보였다.

 

*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 역시 지인들과 두루 잘 지내지만 내가 내 마음 깊은 곳까지 문을 열어 둔 사람은 소수이다. 하지만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열 기회를 얻는 것이 쉽지 않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알게 된 사람(이하 K)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의 성격, 그가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가 살아온 이야기, 나와 잘 맞는 사람인지 등을 알기 위해서는 단 둘이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만큼의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나는 매일 학교를 가야 하고, 일주일에 몇 번씩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며 주말 중 하루는 성당에 할애해야 한다. K도 K의 생활이 있으니 우리가 깊은 대화를 하고 서로의 마음을 열어 갈 시간을 맞추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에 학교에 가는 날 겨우 만날 약속 한번 잡는 것이 곧 그 사람이 나에게 수많은 노력을 쏟은 것이며, 당연하지 않은 고마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관계가 대부분이 되어 버린 지금의 나에게 매주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으로 귀한 행운일 것이다. A를 비롯한 성당의 친구들과 항상 하는 말처럼,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당연하게 누군가와의 만남을 지속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서로 간을 위해 애쓰지 않는다는 뜻은 아님을 알아주길 바란다.
 
*

교사회에서 연수를 받은 적이 있다. 강의를 진행하신 선생님께서는 성당이 학생들에게 공동체 교육을 해줄 수 있다고 하셨다. 나와 교사회의 선생님들이 그랬듯, 어릴 적 성당을 통해 맺은 관계들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학교와 학원은 주된 목적이 교육이다. 공부를 하고 사회의 기본적인 규율을 배운다. 이에 비해 성당에서는 그 외의 것, 즉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 서로 사랑하는 법, 사회에서 요구하는 경쟁에서 벗어나 서로 조율하고 합의하는 법 등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항상 어릴 때 성당에 오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경험을 했다. 일주일을 보내고 주말에 성당에 오면 현실에서 벗어나 즐겁고 행복하게 있을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내내 했다.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는 어린 아이일 때 만나 10년이 넘도록 인연을 유지할 수 있음에 A에게 고맙다. 성당에서 매주 만나는 것에 그칠 수 있는 인연이 그 너머로 발전할 수 있게 나에게 마음을 쏟고 노력을 해주었으니 말이다. 미사가 끝나고 저녁으로 무얼 먹을지가 주된 대화인 건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하지만, 우리는 더욱 다양한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회사 이야기, 대학 이야기, 그리고 그 외의 것들. A와 깜깜한 밤 텅 빈 놀이터의 그네에 앉아 나눈 몇 시간 동안의 대화는 최근 며칠 간 내가 사람들과 나눈 대화 중 가장 고요했다.
 
큰 소리 한번 나지 않았지만 그 작은 데시벨은 끝없이 이어졌고 깊었다. 똑같은 소재라도 A와 나의 생각은 달랐고, 우리 모두 성장했기에 지금 우리의 관점은 어릴 때와는 또 차이가 있었지만 그 다름까지도 사랑스러웠다. 구체적인 내용은 이 공개적인 곳에 모두 내뱉을 수 없지만 그 다름에서 오는 A의 성숙함이 존경스럽고 부러워 닮고 싶었다. 그날은 유독 밤하늘이 뿌옇고 달조차 구름에 가려 희미한 빛만이 보였는데, 그 먹먹한 분위기가 우리의 소중한 이야기를 다 품고는 놓아주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고 감사했다. 맑고 또렷한 날이었다면 그건 그것대로 우리의 말이 선명해지는 것 같아 좋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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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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