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가로지르고, 채우고, 비우다 - 힉엣눙크 갈라콘서트 [공연]

클래식의 무한함
글 입력 2022.09.08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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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31일 롯데콘서트홀에서는 제 5회 ‘힉 엣 눙크! 페스티벌 -갈라콘서트’가 개최되었다.

 

이번 ‘2022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은 8월 16일부터 9월 6일까지 이어졌다. 총 6개의 메인 행사와 1개 사전 이벤트,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진 페스티벌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비전을 녹여낸 음악 축제다.

 

‘힉 엣 눙크(Hic et Nunc)!’는 영어 ‘Here and Now’를 떠올리면 이해하는 데 수월하다. ‘여기 그리고 지금’이라는 뜻을 가진 이 페스티벌은 비정형성을 특징으로 하는 차별화된 클래식 음악 축제이다. 클래식 음악이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꾸준히 해석의 역사를 써 내려가면서도 변화와 진화를 거듭하며 창작의 영역을 분명하게 넓혀가고 있다는 점에서, ‘힉 엣 눙크!’의 비전이 탄생한다. 일 년에 한 번, 해석과 창작의 세계를 수놓는 공연을 진행함으로써 그 의지를 드러낸다.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신곡 창작과 초연의 현장을 그대로 들여오기도 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음악가를 추천하며, 고전 음악을 주제로 테크놀로지와 타 장르 예술이 결합하는 현장을 발굴하기도 한다. 따라서 무정형성과 무경계성이란 단어로 ‘힛엑눙크!’를 정의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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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티벌의 하이라이트인 갈라 콘서트에서는 그래미 노미네이션에 빛나는 바이올리니스트 필립 퀸트와 뉴욕필하모닉의 악장 프랭크 황이 이끄는 세종솔로이스츠, 그래미 어워드 수상 첼리스트인 사라 산암브로지오와 네 명의 정상급 퍼커셔니스트가 함께했다.

 

세종솔로이스츠는 이번 페스티벌을 기획함과 함께 AI 네트워크와 협업하여 NFT 클래식스 소사이트를 출범하고, 첫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 NFT 출시를 통해 고전 예술을 우리 시대의 기술과 함께 발맞춤 하는 특별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갈라 콘서트는 혁신과 전통이라는 키워드를 완벽히 이끌어내는 한편, 세종솔로이스츠의 역량과 협업하는 솔리스트들의 탁월함으로 축제에 화려함을 불어넣었다.

 

총 세 개의 세션으로 구성된 갈라콘서트. 무경계 클래식에 다가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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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둔 ‘엘레지 : 6월의 눈’


 

탄둔은 1957년 중국 후난성 쓰마오 출신의 작곡가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클래식 작곡가라니.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클래식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탄둔은 클래식과 비클래식, 동양과 서양, 전위 예술과 토착 예술의 경계를 끊임없이 무너뜨리는 작곡가 겸 지휘자다.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영화 ‘와호장룡’으로 널리 알려진 그는 그래미상을 비롯해 ‘뮤지컬 아메리카’가 선정한 올해의 작곡가, 그라베마이어 작곡상 등 권위 있는 상을 다수 수상하는 영예를 얻었다.

 


‘엘레지 : 6월의 눈’은 13세기 극작가 관한칭이 쓴 희곡을 바탕으로 한다. 젊은 여성 두에가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일에 대해 억울하게 처형되자 자연마저도 세 가지 현상을 통해 그녀의 결백함을 호소한다. 그녀의 피는 땅에도 떨어지지 않고 하늘로 올라가며 6월에 폭설이 내리고 3년 동안 가뭄이 일어난다. 탄둔의 ‘엘레지 : 6월의 눈’은 연민과 순수, 미와 암흑을 노래하는 동시에 모든 희생자들을 위해 부르는 비가이다.
 

 

이 작품은 하나의 자유변주곡으로써, 분절된 프레이즈로 시작하여 온전한 주제를 구축한 후 다시 흩어진다. 무엇보다 독특한 요소는 종이와 돌, 캔을 이용해 음악을 끌어낸다는 것인데, 종이 찢는 소리, 돌과 캔의 거친 소리가 첼로와 대립하며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특히 종이를 찢으면서 끝나는 엔딩은 이 작품만이 줄 수 있는 파격과 신선함이었다. 동양풍과 서양풍을 넘나들며 ‘무경계 클래식’의 위엄을 보여준 이 작품은 단 1초도 놓치지 않고, 몰입하여 감상했던 매우 매력적인 작품이다.

 

 


피아졸라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계’


 

피아졸라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근교에서 태어났다. 그는 불협화음과 확장된 리듬 테크닉을 가미하여 전통적인 것을 지지하는 사람들로부터 비판받기도 했는데, 2차 세계대전 이후 탱고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 넣었다는 데엔 이견이 없다.

 

‘새로운 탱고’라 불린 그의 스타일은 비밥, 보사 노바와 유사성을 갖고 있었던 반면, 재즈의 즉흥연주 같은 요소는 대부분 배제했다. 그의 탱고는 깊은 감성을 담고 있고 표현적인 작품들이다. 가장 활기찬 패시지에서조차도 우수가 드러난다.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귀에 익은 구간이 나오는데, 이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겨울>에 편곡자 데샤트니코프가 비발디의 <여름 협주곡>을 곳곳에 심어두었기 때문이다. 여름은 지구의 남반구, 즉 부에노스 아이레스가 겨울일 때 북반구에서 짝을 이루는 계절이 된다. 이러한 치밀함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바이올린의 독주 방식과 현악기를 타악기 소리처럼 표현한 부분은 피아졸라의 표현적인 뉘앙스를 그대로 살려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차이콥스키 ‘현을 위한 세레나데’


 

차이콥스키는 1880년에 두 작품을 작곡했다. 하나는 유명한 ‘1812 서곡’이고, 또 하나는 ‘현을 위한 세레나데’이다. ‘1812 서곡’의 경우,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의 즉위 행사를 위해 작곡했는데, 차이콥스키는 명령 때문에 작품을 써야 하는 경우, 티눈 고약 광고 같은 음악을 만들어주면 된다며 조소했다. 반면 ‘세레나데’는 작품의 완성도, 예술성, 감정 등의 면에서 확신을 가지고 작곡한 작품이다. 흠잡을 데 없이 뛰어난 작품임을 자찬한 그는 ‘현을 위한 세레나데’를 통해 자기만족을 이룬 듯하다.

 

1악장 ‘소나타 형식의 소품’은 장엄하게 시작해 점차 간결한 스타일로 발전한다. 2악장은 우아함과 프랑스 발레곡 풍의 화려함이 느껴졌다. 3악장은 그 유명한 비가(elegy)인데, 부드러운 선율이 두드러졌다. 2개의 러시아 민속무곡을 사용한 4악장은 경쾌함이 주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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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세 개의 세션을 마무리한 연주자들은 두 번 입장하고, 퇴장하며 커튼콜을 진행했다. 앙코르 공연에는 ‘왈츠’가 이어졌다. 익숙한 선율에 이전까지의 몰입은 조금 내려두고, 편하게 즐길 수 있었다.

 

이번 페스티벌은 공연장을 가로질러 짙은 감동을 전하고, 선율로 가득채웠다. 또한, 작품 속 ‘정적’은 가득 채워진 공연장을 순식간에 비워내며 중력조차 존재하지 않는 듯한 無의 공간으로 이끌었다. 이어진 연주는 다시금 활기를 불어넣으며 몰입을 더했다.

 

클래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무정형성, 무경계성이란 키워드를 바탕으로 무한한 확장성을 보여주고 있는 ‘힉엣눙크! 페스티벌’. 이 페스티벌의 발자국을 따라가다보면, 클래식에 흠뻑 빠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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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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